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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혜진 Mar 30. 2017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

껍질 속에 깃든 영혼, 혹은 유령을 품은 아름다운 육체

K에게.


근데 왜 영혼을 고스트 ghost라고 하지? soul도 있고 spirit도 있잖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궁금하다.

고스트는 죽은 사람의 영혼을 가리키는 말 아닌가?

육체는 죽어버렸고 실험에 의해 새 육체에 이식됐으니 ‘고스트’라고 하는 걸까?

패트릭 스웨이지가 출연했던 영화 ‘사랑과 영혼’의 원제가 ‘GHOST’였던 게 떠오르네.  


껍질 속에 깃든 영혼, 이라고 적었다가

유령을 품고 있는 아름다운 육체, 라고도 적어본다.

그 유령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는 영화인 거지.

또 그것이 인간의 정체성, 실존과 어떻게 연결돼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거야.

동시에 그 아름답게 디자인된 인공 육체 또한 인간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해 주지.


화려한 간판들과 거대한 홀로그램 광고로 가득한 거리에서

‘당신 아이의 유전자를 바꾸세요.’

‘더 아름다워 지세요.’

광고의 목소리를 듣지.

거리에는 원하는 대로 업그레이드? 해주겠다는 꾼들도 있어.

인간 매춘부도 있지.


인간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네가 평소 어렵다고 말했던 문제지. 맞아.

그래서 영화를 보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이야기는 단선적으로 풀린 것 같아.

원작 애니메이션은 워낙 오래전에 봐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그때는 원작의 이야기를 어렵게 느꼈어.

아마 어렵다고 졸았던 것 같은데?


가출 청소년이었던 메이저와 쿠제.

메이저의 원래 이름은 마코토.

메이저와 쿠제는 마지막에 이르러 자신의 원래 이름과 기억을 되찾지.

근데 기억을 되찾아서 소명이 있어서 어떤 행동을 한다고?

잘 인식이 안 돼.


그리고 메이저 미라가 이름인 줄 알았는데 메이저 major가 소령이라는 뜻이라네?

영화를 보는 중엔 몰랐어.

근데 메이저와 짝지어 출동하던 바토는 사람이야, 로봇이야?


아... 나 이해를 못했나 봐...

K야, 댓글 좀 달아 줘. ㅠㅜ


기억에 남는 장면이라면,

딸을 잃고 유령처럼 살아가는 엄마가 떠올라.

메이저랑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면 엄마가 넋이 나가 있는 게 보여.

딸을 잃고 공허하고 유약해진 엄마.

단단하고 투철해져서 엄마를 찾아온 메이저.

인간 엄마와

인간이라고 해야 할지 로봇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딸의 만남.  


그리고 딥 다이브.

깊이 잠수하는 메이저 미라.

자신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물속으로 잠수한다고 했지.

차갑고 조용한 그 외로움이 ‘진짜’ 같다고.  


영화엔 전반적으로 이 잠수하는 이미지, 잠수했다가 떠오르는 이미지가 많아.

메이저가 테러를 진압하려고 유리창을 깨고 호텔에 들어오는 장면도

눕혀서 보면 마치 물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보이지.

높은 빌딩에서 메이저가 뛰어내리는 장면도 물속으로 잠수하는 이미지로 연결돼.

네트는 거대하다잖아.

마치 바다처럼.


또 다른 딥 다이브.

게이샤 로봇에 접속해 들어가서 해킹당하기도 해.  

누군가에게 깊이 들어가면 자신도 노출된다는 공식이랄까?

그렇게 해서 쿠제와 마코토는 서로를 알아채.


쿠제는 한카 로보틱스가 실험에 실패한 뒤 버린 존재.

어둠의 존재가 되어 자신만의 네트를 만들어.

인간의 뇌들을 연결해서 말이야.

마치 희한한 종교집단의 침묵 회합 같은 그 장면.

쿠제는 자신이 이용당한 방식 그대로를 활용해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네.

한카에 한을 품고 복수하는 거야.

과학자들을 하나씩 죽이고 있어.


위험에 처한 오우레(줄리엣 비노쉬) 박사.

오우레 박사의 차분하고 아름다운 표정과 눈빛.

자신의 아이를 살리듯 메이저를 살린다.

메이저에게 기억을 삭제하는 빨간색 약 대신 노란색 약을 주사하지.

과거의 기억을 돌려주는 노란 약.


메이저를 사랑하는 눈빛에서

죽은 아들을 기다리는 영화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 떠올랐어.

줄리엣 비노쉬는 거기서도 사랑하는 눈빛을 보여주거든.

고통에 찬 표정과 함께 말이야.


게이샤 로봇은 무섭고 징그럽더라.

목 뒤에 빨대?를 꽂고 해킹한 과학자를 끌고서

벽을 기어 올라가는 그 장면.

새롭고 징그러운 비주얼을 발견한 기분이야.  


우연히 신문에서 봤는데 말이야.

하버드대에서 뇌에 전자 그물망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대.

기사( [중앙일보 20170329수/ 이소아, 문희철 기자] 뇌+컴퓨터 결합한 인공지능 시대 열릴까…머스크, '뉴럴링크' 설립

http://news.joins.com/article/21415881#none )에서는

학술지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에 발표한 논문에서 실제로 구현했다는데

이론상으로 가능하다는 건지 실제 실험을 했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


테슬라모터스의 일론 머스크가 이를 바탕으로

뇌와 컴퓨터가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을 개발하는 뉴럴 링크를 세웠다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면 인간은 AI가 시키는 대로 하는 ‘애완 고양이’가 될 것”이라며

“전자 그물망을 두뇌에 삽입해야 인간이 AI에 지배당하지 않고 공생한다.”라고 말했다는 거야.


이게 뭔 말인가, 말인가 막걸리인가 곰곰 생각해봤는데 말이야.

영화 ‘고스트 인 더 쉘’에서

게이샤 로봇이 인간의 목 뒤 단자에 접속해서 정보를 캐내잖아.

그런데 메이저는 붙잡힌 게이샤 로봇에 접속해서 역으로 범죄의 배후를 또 캐내지.

AI가 독립된 개체로 진화를 거듭할 때

인간이 그에 자신을 자유롭게 연결해서 AI의 생각과 정보를 활용하고 통제할 수 있게 하겠다는 말 같아.


내 생각에 그렇게 ‘연결되면’

누가 인간이고 누가 인공지능 로봇인지

정말 헷갈릴 것 같아.

이제 그 구분에 따른 많은 사건들이 윤리적 논란을 낳겠지.  

또 그 구분에 대해 질문하는 게 거추장스럽고 낡은 것이 돼버리는 시대가 올 수도 있겠지.


아아아... 미래엔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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