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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혜진 Apr 01. 2017

히든 피겨스

백인을 설득하는 흑인의 언어

K에게..


‘Hidden figures’가 숨겨진 숫자, 숨겨진 영웅들이란 중의적 의미가 있대. 

숫자의 너머를 읽는 수학자 캐서린,

우주항공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 자신을 인정하는 메리 잭슨,

지하 사무실에서 팀원들을 훌륭히 이끌어 

지상 IBM 컴퓨터 담당부서로 팀원들과 함께 올라가는 도로시 본. 


맞네. 다들 숫자를 다루는 영웅들이야. 

근데 알지? 나 숫자에 약한 거 말이야. 

그래서인지 영화를 보고 났는데 나에겐 ‘말’이 기억되더라. 


백인을 설득하는 흑인의 언어 말이야. 


캐서린은 매일매일 내용이 업데이트되는 태스크 회의에 참석하고 싶어해.

왜냐면 아무리 숫자와 씨름하며 궤도를 계산해봤자 주요 인사들이 회의 한 번 하고 나면

상황이 변해서 자신이 계산한 건 다 쓸모없어지거든. 

그래서 차라리 회의에 참석해 즉석에서 계산하는 게 낫다는 거지. 

처음엔 직속상관이 회의에 들여보내주질 않아.

흑인 여자라 안 된다는 거지. 그런 전례도 없다는 거야.  


포기하지 않은 캐서린은 회의장 문 앞까지 쫓아가고

무슨 소란이냐며 나온 대장(케빈 코스트너)에게  

‘대장님답게 판단해 주세요.’라고 하지. 

자신이 회의장에 들어갈지 말지를 정하는 자는 직속 상관이 아니라 

대장 당신이라는 거야. 

상대방을 치켜세우는 동시에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언술이야.

그 언술은 성공해. 


메리 잭슨은 내심 엔지니어가 되고 싶지만 지레 포기해. 

불가능한 일을 꿈꾸며 다치기 싫다는 거야. 

하지만 이 경우엔 직속상관이 메리를 응원하지. 

“나는 부모님을 아우슈비츠에서 잃은 폴란드인이다. 

이 자리에 오기 불가능해 보였지만 지금 여기에 있다. 

메리 당신이 백인 남성이었다면 엔지니어가 되기를 원했을까?”

메리는 대답해. 

“원할 필요조차 없었겠죠. 이미 엔지니어가 되었을 테니까.” 

메리는 이제 알아.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하는 자신을. 

그런데 엔지니어 심사 매뉴얼이 그 사이 바뀌어서 

학교에 가서 소정의 수업을 들어야만 하는데 

또 그 학교는 흑인 여성을 입학시키지 않는다네?

역시나 전례가 없다는 거야. 

그놈의 전례.  


메리는 포기하지 않아. 

흑인여성을 입학시키지 않는 건 부당하다는 소송을 걸어서 재판을 하지. 

재판관 앞에서 이렇게 말 해. 

“가까이 가서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러라고 하자 다가가서)

존경하는 재판관님은 최초로 기록되신 게 많으신 분입니다. 

오늘 많은 재판들이 있는데

이중에 어떤 재판이 재판관님의 이름을 ‘최초’로 기록하게 될까요. 

저는 흑인으로는 처음으로 이 학교에 입학하고 싶습니다.”


재판관은 씨익 웃어. 그리고 야간 수업을 들으라고 허용하지. 

메리의 언술이 승리해. 


도로시 본은 또 어떻지?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팀장 역할을 하면서도 정작 팀장 대우도, 페이도 못 받는 도로시는 

새로 들어온 IBM컴퓨터가 기회라는 걸 알아채고 

컴퓨터 언어를 배우지. 

또 자신이 공부한 걸 팀원들에게 가르쳐.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말이야. 


IBM 컴퓨터를 제대로 작동하게 해놓고

백인들이 ‘함부로 만지면 안 된다’고 다그치자

컴퓨터가 작동하는 걸 보고 싶었다고, ‘돕고 싶었다’고 말하지. 

백인들이 이름을 묻자 

당당히 말해.

도로시 본이라고.


언어도 전략.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상대방을 치켜세워.

하지만 잃어버렸던 당연한 권리를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만이 내가 일하게 할 수 있고(캐서린)

당신에게도 좋으니까(메리)

당신을 돕겠다(도로시)는

언어의 전략은 조금은 서글프기도. 

동시에 세 여자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읽고 전략적 언어를 구사할 만큼  

뛰어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기도 해. 


그러니까 K야.

K도 말을 ‘잘’ 하고

나한테 말실수 좀 그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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