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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혜진 Jan 13. 2017

영화관에서 단 둘이 <패신저스>를 보았다.

아발론호에 둘만 깨어있는 짐과 오로라처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월요일 저녁 6시 즈음. <패신저스>를 보려고 극장에 들어갔는데 나와 남친, 둘 밖에 없다. 설마 사람이 더 들어오겠지, 했는데 큰 극장에서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둘 뿐이었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러 간 나는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니까 다른 우주 영화들처럼 심리적이고 우울할 거라고 예상했다. <그래비티>의 광활한 우주 공간이나 <인터스텔라>의 블랙홀도 떠올랐다. 광활한 검은 공간만큼이나 고독한 마음... 뭐 그런 얘기 아닐까? 


<패신저스>에서 절대 고독이 묻어나는 장면은 우주복을 입고 함선 아발론호의 바깥 난간에 나와 끝없이 펼쳐진 암흑을 바라보는 짐의 모습이다. 짐은 우주선 안으로 들어온 후 우주복을 벗고 안전장치 없이 우주로 몸을 던질까 고민한다. 버튼을 누르려는 떨리는 손. 짐은 그런 자신이 두려워 도망가듯이 동면기들이 모인 곳으로 달려간다. 


미래를 기대하며 ‘지금’ 잠들어있는 승객들. 원치 않는 때에 깨어나버린 짐에게 우주선의 바깥도 안도 죽음이다. 90년은 더 가야 하는데 당연히 짐은 그 안에 혼자 죽게 될 것이다. 

 

아발론호는 슬슬 고장 나기 시작하고 1년간 인공지능 바텐더 하고만 지낸 짐은 미치기 일보직전이다. 동면기에 누워 잠들어 있는 오로라를 발견하고 그녀를 뒷조사(?)한다. 작가라는 걸 알았고 그녀가 잠들기 전에 남긴 영상 인터뷰도 본다. 매력적인 여자다. 짐은 오로라를 깨워서 둘이 함께 지내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하지만 자기가 외롭고 힘들다고 오로라를 깨우면 그녀가 계약한 미래를 빼앗는 거니까 짐은 괴롭다. 하지만 결국 오로라를 깨운다. 어떻게? 손재주가 좋은 엔지니어니까 동면기 매뉴얼을 보고 기계를 조종해서.

  

낙원을 찾아 식민 행성으로 향하던 5000명 중에서 짐과 오로라만 깨어나 사랑에 빠진다. 아담과 이브 같다. 짐은 오로라에게 자신이 깨운 걸 비밀로 하지만 눈치 없는 인공지능 바텐더 아서 때문에 들키고 만다. 오로라는 짐을 증오한다. 자고 있는 짐을 찾아가 침대 옆에 놓여있던 공구로 짐을 내려치려고 한다. 커다란 뼈다귀처럼 생긴 이 공구를 보고 나는 아담의 갈빗대로 이브가 지어졌다는 대목이 떠올랐다. 그 갈빗대로 도로 짐을 죽이려고 하지만 이미 사랑해버린 짐을 차마 죽이지 못하는 오로라.  


‘누가 누구를 깨우는가’하는 문제.  

짐은 아발론호의 고장 때문에 깨어났다지만 하필 왜 그였을까?    

하필 왜 엔지니어인 짐이 깨어났을까. 우주선에 심각한 결함이 생긴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인공지능 아발론이 일부러 선체를 고칠 수 있는 짐을 깨운 건 아닐까? 직접적인 단서는 영화에 드러나지 않지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영화 포스터에도 ‘찾아야 한다. 깨어난 이유를.’이라고 적혀있다. 우주선 고치려고 짐은 깨어난 거다. 그리고 짐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주선을 같이 고쳐보려고 오로라를 깨운 거다. 사랑과 구원의 이야기구만. 


  “우주에서 사랑 찾기네.”

극장에 둘만 있으니 남친이 영화를 보는 사이, 소리 내어 추임새를 넣는다. 

  “내 감상을 망치지 말아줄래.” 


영화 속 상황과 똑같이 정말로 우주선에 둘만 있는 것 같다. 극장에 둘만...... 

우리도 서로를 선택하면서 서로의 미래를 빼앗는 건 아닐까. 그 미래는 어차피 가보지 못한 암흑. 

같이 탄 우주선 고쳐서 힘내서 살아가 보자고. 


서서히 오류를 일으키는 아발론호. 오로라는 짐이 일부러 자기를 깨웠다는 게 충격이었다. 그런데 짐이 아니었더라면 동면기 안에서 그냥 잠만 자다가 죽을 뻔한 상황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사이 관리자용 아이디 패스를 가진 거스가 깨어난다. 그는 이미 동면기 오류 때문에 잠든 중에 죽어가고 있었다. 거봐, 왜 하필 또 아이디가 있는 승무원이 깨어나냐고. 짐이랑 오로라가 우주선을 고치려면 아이디가 필요하니까.

     

로봇 바텐더 아서는 짐에게 ‘지금’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즐기라고 조언했었다. 오로라의 친구도 지구에서 헤어지기 전에 꼭 특별한 일을 해야만 행복한 건 아니라고, 그곳에서는 꼭 맘 맞는 남자를 만나서 행복하길 바란다고 인사를 전했었다. 90년을 더 잠들어 있다가 지구의 식민 행성에 도착해 다른 삶을 살길 기대하는 대신 '지금' 단 둘만 깨어나 있어도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 짐과 오로라.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간다.

  

앞서 깨어난 짐과 오로라의 이야기를 예정대로 90년 후에 깨어난 사람들이 알게 된다. 작가인 오로라가 써놓았으니까. 사랑으로 서로를 구원하는 이야기다.  


 우주선을 고치라고 아발론호가 일부러 엔지니어인 짐을 깨운 거지?

아발론호의 선택이 신의 선택과도 같은 것이라면?

<패신저스>는 종교적 서사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 

 
극장에 남친과 단 둘만 있으므로 화면에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나도 큰 소리로 외쳤다. 

  “네가 나 좋다고 쫓아다니면서 깨운 거잖아!”

  “네가 맨날 늦잠 자서 일어나라고 깨우긴 하지. 일찍 일어나서 글 좀 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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