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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혜진 Jan 30. 2017

시간과 구원

영화 <가려진 시간>  <너의 이름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영화 속에서 인물들은 시간을 거스른다. 몸을 뒤바꾸어 다른 인물의 시간을 대신 살고<너의 이름은>, 유폐된 시간 속에서 남모르게 자라고<가려진 시간>, 지금은 곁에 없는 너를 보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간절하게 되돌리고 싶은 일 때문에 지금의 세계에는 틈이 생긴다. 갈라진다. 


말장난을 하자면 영화 속 인물들은 ‘가려진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너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슬퍼하다가 더 이상 시간의 파도에 휩쓸려 멀리 가지 말라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외친다. 왜 늘 중요한 것은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것 같을까. 



<너의 이름은>에서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을 뒤바꾼 사이. 몸이 바뀌니 가까운 사이인 것 같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살면서 몸이 바뀌기 때문에 결코 마주 볼 수 없는 운명이다. 거울로 마주하는 것은 내가 들어간 그의 몸일 뿐, 온전한 그가 아니어서 애달프다. 타키는 미츠하가 사는 이토모리 마을에 혜성이 떨어져 주민들이 죽었다는 걸 알고 다른 시간대의 미츠하에게 미리 알려주려고 한다. 잠에서 깰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며 일어나던 미츠하에게 예언은 그렇게 온다. 타키는 미츠하와 이토모리 마을을 살리고 싶다.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에서도 수현은 연아를 살리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 캄보디아 할아버지가 주신 신비한 알약을 먹을 때마다 연아가 살아있는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 연아를 살릴 수는 있지만 연아와 가까워져서는 안 된다. 연아와 결혼하게 되면 자신의 딸인 수아가 사라지기 때문. 그 말인즉슨 수아는 연아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이 아니다. 수현은 연아와 헤어졌다. 그러나 그 이별에는 연아의 죽음이 가로놓여 있었다. 연아와 헤어지더라도 연아가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수현은 연아를 살리고 싶다.

  

   

<가려진 시간>도 마찬가지로 시간을 다루지만 위의 영화들과는 좀 다르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아이들. 수린이만 혼자 살아서 돌아왔다. 그러다가 숲에서 몸이 다 커버린 성민이를 만난 수린. 눈앞의 남자(강동원 분)는 정말 성민이일까, 아니면 수린이를 노리고 성민이를 사칭한 범죄자일까. 바로 이 지점에서 <가려진 시간>의 ‘시간’은 두 갈래로 나뉜다. 성민이인 경우와 성민이가 아닌 경우.

 

수린이는 비밀 노트를 읽고 그가 자라 버린 성민이라고 믿지만 어른들은 수린 앞에 나타난 남자를 소아성애자라고 여긴다. 성민이의 손을 잡고 어른들의 세계에서 도망치는 수린. 동굴 위의 나무뿌리가 뽑히는 장면을 기점으로 수린의 심리적 시간은 통째로 뒤흔들린다. 수린이가 성민이라고 믿어주는 그 마음만이 성민(강동원 분)이 성민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근거인데 유괴범을 쫓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그 마음은 믿을 수 없는 이상한 이야기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너의 이름은><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과거의 시간을 되돌려서, 혹은 과거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서 소중한 사람을 구하는 이야기라면 <가려진 시간>은 비밀스러운 시간을 어떻게 해석하고 믿느냐에 따라서 수린이가 성민을 구하는 것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이 얘기를 네가 믿어줄까?

<가려진 시간>에서 성민과 수린의 빨간색 비밀 노트에 둘만의 언어로 적혀 있는 말이다. 비밀 열쇠, 나무뿌리, 동굴, 알처럼 생긴 돌멩이, 숲에서 수린이가 성민을 다시 만나기 전에 다치는 발, 바다, 덮쳐오는 파도……. 이 이미지들은 수린이의 심리적인 세계를 이루는 것들이다. 위의 대사를 성민이가 쓴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면 그건 범죄자가 몰래 익힌 ‘훔친 언어’가 된다.

   

관객들은 수린이의 세계를 믿어줄까?

그런데

믿고 안 믿고의 문제일까? 

수린이와 마찬가지로 관객도 어떤 세계를 선택하느냐의 문제는 아닐까? 

수린이가 선택한 세계를 아동청소년 심리학자(문소리 분)가 카메라를 통해 들여다보는 것을 

관객들은 스크린을 통해 들여다본다. 액자는 두 개. 

수린이의 시점에서 구성된 세계와 그걸 들여다보는 심리학자의 시선,

그걸 또 한걸음 뒤에서 들여다보는 관객. 

시간은 각기 다르게 흐른다. 


관객들은 여러 영화 속에서 변주되는 시간의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다시,

  “이 얘기를 네가 믿어줄까?”


물론 모두 다른 영화이지만 세 편의 작품에서 내가 찾은 공통점은 인물들이 모두 ‘잃어버린 것’, ‘잊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사람들은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바로잡고 싶어 할 것이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과 함께 시간 여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장에서 ‘현재’로 내던져진 나 같은 관객은 당혹스럽다. 현실의 시간 속에서 중요한 일은 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선명해지니까. 제시간에 맞게 자신을 구원하는 문제란 이렇듯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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