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조용히 시작되었다

캐나다 워홀 도전기_1

by 혜주

추위를 싫어하고 바다를 사랑하던 나에게,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는 건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이 제한에 턱걸이로 걸쳐 통과된 이 기회를,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결국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퇴사 한 달 전. 아이들과의 마지막 수업을 끝내며 부업도 병행하느라, 준비 기간은 생각보다 빠듯했다. 하지만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기에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 욕심에 여유로울 것 같았던 준비 기간이 회사를 다닐 때보다 더 빡빡했지만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 어머니들과 만나는 시간이 즐거워 더욱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도 틈틈이 한 사람들을 만나고, 마음을 나눴다. 마지막 인사와 포옹을 나누며 그들이 나에게 주는 마음과 내가 그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컸는지를 돌아보며 단조로운 내 삶에 이토록 많은 사랑이 있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내 첫 중고차, '할아버지'와의 작별. 그날에는 비가 내렸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더라. 꽤 오랜 기간 덜컹거리며 함께한 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을 만나 오래오래 달리길 바라면서도 할아버지는 이제 그만 쉬고 싶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차 안에서 마지막 인사를 할 때 보니 벌써 20만을 넘게 달렸더라.


출국하는 당일이 되었을 때도, 실감은 나지 않았다. 몇 주 전 갑자기 눈물이 터져 엉엉 울었던 날이 있었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니 점점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먼저 경험해 봤던 친구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길 그렇게 지내다가 공항에 가서 출발하면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점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도착하기 30분 전까지도 실감 나지 않았다. 심지어 중간에는 대한항공 기내식이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먹으며 잘 자고 잘 놀았다. 그리고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안내가 나오고 나서야 '내가 여기서 무엇을 하려고 왔는가'에 대한 의문이 떠올랐지만, 공항에서 유치원 때 이후로 보지 못한 이모를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의문은 금세 사라졌다.


입국심사장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렸다. 그들은 회사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일보다는 자신의 컨디션이 더 중요해 보였다. 내 앞 뒤로 줄줄이 서있는 사람들이 한 트럭인데 한 사람을 처리하고 간식을 먹거나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심을 먹으러 가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 순서가 오기 전까지 적어도 40분은 기다린 것 같았다. 그렇게 기다려 차례가 왔을 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한국에서 5장씩 프린트해 온 준비 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꺼내 손에 들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담당자 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예상과는 다르게 여권과 워홀 합격 레터를 확인한 후 "2년이면 되지?"라는 캐주얼한 말투와 함께 담백한 미소를 지었다. 잔뜩 긴장했던 내 모습이 그에게 보였던 걸까, 생각보다 쉽고 빠르게 일이 끝나 안도의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렇게 짐을 찾아 드디어 공항에서 나가는 길, 이모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Welcome to Canada."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 눈앞에 있던 안개가 걷히듯 모든 게 또렷해졌다.

아, 세상에 결국 일을 저질렀구나.


이모 차를 타고 달려 집으로 가는 길, 처음 본 캐나다의 모습은 넓고 크고 높았다. 전에 다닌 회사에서 만난 캐나다 사람이 5월까지는 눈이 온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파란 하늘과 맑은 구름 사이로 빨간 단풍 깃발이 펄럭이는 모습은 참 예뻤다. 이모가 사는 동네는 미시소거로 친구 말로는 부자 동네라고 하더라. 잘 모르지만 일단 근처에 시청이 있고 유명한 쇼핑몰도 있는 걸 보니 좋은 동네는 맞는 것 같았다.

새로운 내 방은 정말 아늑했다. 처음 마음에 쏙 들었던 건 푹신한 침대였다. 사실 나는 한 번도 내 몸이 꺼지는 듯한 푹신한 침대를 가져본 적이 없다. 침대나 매트리스를 살 일이 있으면 언제나 살짝은 딱딱한 느낌이 드는 아침에 일어날 때 쉽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침대를 선호했다. 호텔에서나 푹신한 침대에 몸을 뉘이며 '오늘은 진짜 쉬어야지.' 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짐을 정리하고 침대에 딱 누웠는데 몸이 쑤욱 침대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느낌이 앞으로의 걱정을 잠시 잊어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당시엔 인지하지 못했는데 이 침대에서 며칠을 지내며 생각해 보니 침대를 고를 때 취향이나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가를 염두하지 않고 다음 날의 생산성을 따졌다는 게 참 어이없게 느껴졌다. 아마 이곳에 도착해 이모와 함께 침대를 구매하러 갔더라면 또 똑같이 딱딱한 침대를 골랐겠지.


그렇게 잠깐 눈을 붙였는데 일어나 보니 밖은 캄캄했다. 시차적응을 위해 일부러 아침에 도착하는 비행기로 잡았으나 참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을 참고 버텼어야 바로 시차적응을 할 텐데 그것조차 참지 못한 것이 조금 한심하게 느껴졌다. 노트북을 켜고 워홀 카페에 들어가 도착해서 해야 할 일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이제 SIN Number를 만들고 은행 계좌를 만들어야 했다. SIN Number는 취직을 하거나 은행 계좌를 만들 때 꼭 필요하니 제일 처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얼른 만들어야지.' 위치, 가는 방법 등을 찾으며 다음 날의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내일 나갈 것이라는 것을 이모에게 알려야 할 것 같아 이모랑 대화를 나누며 짜고 있던 일정에 대해 이야기드렸다. 이모와 이모부는 "이제 막 도착했잖아. 좀 쉬어도 돼."라고 말하셨다.

그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방으로 들어와 푹신한 침대에 누워 생각했다.


'그래, 무엇이 급한가. 여태 살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 내려놓고 13시간을 날아왔는데 급할 일이 뭐 있겠나. 나도 좀 쉬자.' 그렇게 또 몰려오는 잠을 받아들였다.


새벽 내내 2시간 간격으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첫날밤을 보냈다. 이 시차적응의 끝이 언제일지 생각하며 핸드폰을 켜고 밀린 카톡과 DM에 답장을 하며 문득 그들의 새벽에 답장을 하고 있음을 인지했다. 이른 아침, 새로 생긴 15살 사촌 동생은 보통 7시 30분쯤이면 학교를 향해 출발한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 상황에서 낯선 사람과 화장실을 공유해야 한다는 건 사실 꽤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은 일이라 그 아이의 하루 루틴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미리 아침 스케줄을 대충 물어봤지만 다들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이야기했다. 감사하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더라. 그래서 새벽 5-6시쯤 먼저 일어나 샤워를 하러 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샤워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위로 올리고 옆으로 돌리고 잡아당기고 누르고... 아무리 해도 움직이지 않는 샤워기를 보며 헛웃음이 나왔다. 이 달밤에 발가벗고 뭐 하는 짓인가 하하하. 결국 나는 다시 조용히 옷을 입고 행여 잠을 방해할까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방으로 숨죽여 돌아왔다.


방으로 돌아오니 허기짐이 밀려왔다. 식탁에서 본 어제 먹다 남은 닭강정과 탕수육이 떠올랐다. 한국 같은 경우는 보통 음식이 남은 경우 밀폐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이모네는 그냥 그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거실에 나가서 먹는 것은 방음이 되지 않는 집에서 다들 자는데 방해가 될 것 같아 고민이 되면서도 저 음식을 내가 그냥 맘대로 가져와서 먹어도 되는지에 대한 고민도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한국 시간을 확인해 보니 정확히 저녁을 먹던 시간이 아닌가. 이 미친 생체 리듬.


그렇게 고민과 고민으로 가득 찬 새벽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모부가 일어났다. 이모부는 고민하고 있는 내 어깨를 툭툭 치시며 "괜찮아, 편하게 지내." 라며 따뜻한 커피를 내려 건네주셨다. 커피의 따뜻한 온도와 함께 이모부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참 감사하게도 오늘도 이모부는 새벽에 깨 배가 고플 나를 위해 늘 음식을 조금씩 식탁 위에 두며 나에게 이야기하신다.


"너의 새벽을 위한 거야. 즐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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