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조금 느려졌다는 것

캐나다 워홀 도전기_2

by 혜주

소녀 같은 엄마와 무뚝뚝한 아빠를 둔 K-장녀로서 어릴 때부터 무언가에 기대는 걸 잘 못했던 나. 우리 집은 조용했고, 나는 늘 혼자 해내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런 내가 친척들과 함께 산다는 건 꽤 낯선 일이었다. 모든 것이 항상 조심스러웠다. 방안에서도 최대한 큰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하고, 얼마나 일상을 공유해야 하는지도, 뭘 도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혼자 해결할 기회도 놓치는 것 같아 답답했다. 이 아리송한 마음을 친한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하게 되었을 때 친구는 크게 웃으며 “너 마음은 이해하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혼자 하며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하며 “널 아껴주는 사람에게는 좀 기대도 된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간질간질 머릿속 근처를 맴돌았다. '어쩌면 나도 조금은 기대 보는 것을 바랐던 건 아닐까? 여태 기회가 없어서 못해봤던 것은 아닐까? 내가 모르는 내가 진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오전 10시쯤, 혼자 가겠다는 나를 차로 태워주시겠다는 이모와 함께 밖을 나섰다.

SIN Number를 만드는 곳은 서비스 캐나다라는 곳인데 워홀 카페에서 항상 사람이 많으니 꼭 오픈 전부터 가서 미리 줄을 서야 한다는 글을 보았던 상황이라 느지막이 출발한 상황이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혼자 기다리는 거면 괜찮은데 이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가는 길 내내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이 다 들었던 것 같다. '만약 사람이 많으면 기다리는 동안 차에서 쉬고 계시라고 할까? 먼저 가셔도 된다고 할까?' 조용히 흔들리는 내 눈동자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은 조용히 하고 밖이나 감상하라는 듯이 위압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다행히도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리고 가족 이름이 영문으로 필요하기 때문에 바리바리 챙겨간 서류가 드디어 빛을 발했다. 너무 긴장해서 뭐라고 하는지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데 참 재밌게도 담당자가 예전에 대구에서 영어선생님을 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그의 짧은 한국말에 얼굴에 다시 미소가 올라왔다. Lucky me!

그분은 나에게 절대 함부로 이 번호를 공유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이 번호를 가지고 계좌도 만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 영국에서 오랜 목사생활을 하고 온 친구가 한국에 교회를 세우며 이민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던 것이 생각났다. 당시에는 머리로만 이해하고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던 것 같은데 단 며칠, 초 긴장 속에 있던 나에게 사람들이 보여주는 이 작은 호의들이 얼마나 크게 다가오는지 느끼며 그 부부가 오랜 타지 생활을 하며 겪었던 이런 순간순간이 크고 작게 얼마나 많았을까.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냈을 그 마음이 생각나 보고 싶었다.


이어진 은행계좌 개설. 사실 나는 이 때도 속으로 '집에서 온라인으로 한국인 서비스를 예약했었다면 내가 더 알아듣기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별 차이 없었을 것 같은데 모든 게 낯설고 긴장돼서 더욱 한국어에 의존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모가 있기에 '내가 혹여나 놓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모가 잘 들어주겠지'라고 생각하며 애써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는 총 3군데를 돌아다녔는데 모두 문은 열려 있었지만 일하는 사람이 많이 없었다. 평일 오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곳은 단 4명이 일하고 있더라. 이걸 여유롭다고 해야 하는 건지, 그냥 서비스가 엉망인 건지, 아니 다들 어떻게 일을 하고 살고 있는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갔다. 마지막 도착한 은행에서 다행히 가능하다고 해서 은행 계좌를 만들 수 있었다. 담당해 주시는 분이 캐나다에 온 걸 환영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정말 천천히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캐나다에서 처음 계좌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조금 특별하게 좋은 서비스가 많이 들어있었다. 이런 프로모션 저런 프로모션, 계속 놓치면 안 되는 것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입으로 한 번씩 되뇌며 머릿속으로는 '노트도 안 가지고 오고 잘한다'라고 날 꾸짖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잘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모는 살면서 한번 도 못 받아본 혜택이 많다며 너무 좋다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러게, 한번 잘 살아보라고 주는 선물일까.'


아직도 해가 중천인 낮이었지만 시차적응이 안 돼서 그런지 졸음이 밀려왔다. 모두들 나에게 빠르게 시차적응을 하려면 이 졸음을 참고 버티고 밤에 잠을 자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우리 이모와 이모부는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쉬다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시간을 좀 더 가져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내 몸이 적응할 수 있도록 고통을 주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 여유로운 말이 참 몽글몽글하면서도 잔잔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시간도 요일도 잊은 채 진하게 낮잠에 취했다. 매일을 30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 살던 나의 마음 한편에 불안감이 아직 콕 박혀 두 눈을 뜨고 쳐다보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순간에 강한 행복감을 느꼈다.


저녁이 돼서 이모는 내 방에 서랍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이케아를 함께 가보자고 했다. 옷을 챙겨 입고 이모부, 그리고 사촌동생과 함께 이케아로 출발했다. 편안한 침대에 옷장, 책상까지 있어 사실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내가 더 편하게 있을 수 있도록 서랍장까지 보러 가주는 이모가 감사했다. 우리 4명의 의견을 모으고 모아 서랍장 하나를 골랐다. 피곤해서 벌겋게 충혈된 눈을 하고도 이모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어딜 가든 손을 꼭 잡고 따라가는 이모부와 이모의 사랑스러운 캐미와 그 속에 파고들어 가는 더 사랑스러운 사촌동생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의 삶이 그들에게 얼마나 행복함을 가져다주고 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부럽고 소중했다.


이모부가 손에 쥐어준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빠른 속도로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사소한 웃음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이들처럼 삶에 대한 마음의 여유와 가족 안에서의 행복함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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