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30화
날씨가 여전히 푹푹 찌고, 선글라스 없이는 눈도 뜰 수 없는 햇빛이 계속되고 있을 때쯤, Canada’s Wonderland가 여름을 맞아 워터파크를 오픈했다고 해서 출발했다. Canada’s Wonderland는 토론토 근교 본(Vaughan)에 있는, 온타리오에서 가장 큰 놀이공원이다.
우리 집에서는 GO버스 한 번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편리했지만, 그래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리는 곳이기에 아침 일찍 움직였다. 버스가 온다고 말하는 시간까지 꽤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매번 자기 멋대로 운영되는 캐나다 버스 시간 때문에 혹시나 버스를 놓칠까 걱정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오기까지 20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바로 앞에 있는 스타벅스로 들어가 간단한 샌드위치 하나를 주문했다. 그렇게 주문과 동시에 샌드위치는 데워지고 있었고, 버스가 온다고 한 시간까지는 아직 10분 정도 남아있었다. 충분한 시간이라 생각했다.
혹시 몰라 창 밖으로 계속 버스가 오는지 확인했지만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내 샌드위치는 아직 오븐에 있는데, 버스가 나타나고 있었다. 지도를 다시 확인해 보니 갑자기 버스 도착시간이 'now'로 바뀌면서 9분 일찍 도착한다고 바뀌더라. 그렇게 내가 타야 하는 버스는 눈앞을 지나갔다.
나는 그대로 40분의 여유-혹은 벌칙 같은 여유-를 손에 쥐게 됐다. 괜히 아침부터 그렇게 급하게 움직였나 싶었지만, 덕분에 샌드위치로 아침을 챙길 수 있었다.
그렇게 예상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늦게 도착해 다급한 걸음으로 언니들을 만나러 갔다.
입구로 향하는 길에 보니 사람들이 길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점심을 먹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음식이나 음료, 물 등을 가지고 들어갈 수 없어서 가지고 온 음식은 입장 전에 먹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배가 불러 음식을 나눠주기도 하고 있었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32달러에 수수료와 세금이 붙는데, 언니들이 시즌권을 가지고 있어 나는 반값인 15달러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런 순간마다 언니들과 함께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언니들과 함께 워터파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수영복을 입은 사람과 일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로 섞여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에 젖은 머리로 걸어가는 사람, 햇빛 아래 반짝거리는 젖은 수영복, 그 옆을 스니커즈 신고 지나가는 사람, 묘하게 자유로운 풍경이었다.
한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워터파크 갔다가 그냥 바로 놀이기구 타러 가도 돼. 옷 안 갈아입어도 돼.”
하지만 그렇게까지 놀 수 있는 체력이 있을까 싶었다.
워터파크에 도착해 사물함을 하나 빌리려고 하니, 실물 카드가 필요했다.
우리는 아무도 실물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없었기에 잠시 난감했지만 결제하는 곳 근처를 보니 QR코드가 있었다. 온라인으로도 구매가 가능했다. 작은 사물함을 하나 빌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모든 짐을 욱여넣었다.
워터파크는 크지 않았다. 탈 수 있는 놀이기구가 꽤 있었지만, 다양하고 많다는 느낌보다 '있을 건 있구나' 하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우리는 먼저 튜브를 타고 둥둥 떠다니는 유수풀을 타기 위해 줄을 섰다. 생각보다 줄은 길었고, 자세히 살펴보니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 사이로 일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도 서있었다.
처음엔 정말 놀랐다.
"진짜 그냥 팬티랑 반바지, 티셔츠를 입고 들어간다고?"
문화충격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우리 콘도에 있는 수영장에서도 보지 않았는가!
그래도 여전히 궁금했다. 왜 굳이? 수영복이 더 편하지 않나?
나중에 같은 문화권 친구에게 물어보니, 그쪽에서는 ‘수영복’이라는 개념이 딱히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어디 호수나 바다에 놀러 가도 그냥 입고 온 옷 그대로 들어가고, 햇빛에서 말리고, 다시 차 타고 집에 간다고. 찝찝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무 생각이 없다고 했다. 심지어 양말 신고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그 말을 듣는데 괜히 또 한 번 세계의 넓이에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그렇게 우리 차례가 되어서 드디어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우리는 모두 놀라서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물이 꽤나 차가웠기 때문이다. 차갑다는 말로는 부족한, 진짜 “이건 너무한데?” 싶은 온도였다. 순간 물러서고 싶었지만, 뒤에서는 사람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어서 그냥 그대로 튜브에 올라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을 맡기고 몇 분 지나니 차가움은 금세 사라졌다. 둥둥, 물에 떠서 장난도 치고, 햇빛도 받고, 수영도 하 너무 즐거웠다.
우리는 그 외에도 다른 워터파크 놀이기구를 탑승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꽤나 높이가 있는 놀이기구들이 많아서, 돌이켜보니 내 최애는 유수풀이었다.
물에서 한참을 놀고 난 뒤, 우리는 놀이기구 있는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수영복 차림으로 그대로 가도 되나 잠시 고민했지만, 축축한 반바지를 입고 지나가는 사람도, 비키니 그대로 롤러코스터로 향하는 사람도 많아서 곧 신경이 사라졌다. 그리고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놀이기구를 타러 가는 중에 수영복과 머리카락 등 모두 말라버렸다. 몇 개의 롤러코스터를 타고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내려올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멀미가 나는 것 같았다.
슬프게도, 30대의 체력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이었다.
체력이 바닥나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역시 음식이었다. 언니들은 미리 맛집과 가성비 정보를 다 찾아두었다며 자신 있게 식당으로 나를 이끌었다. 이런 순간마다 든든했다. 혼자 왔다면 분명 아무 데나 들어갔을 테고, 그리고 아마 후회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도착한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고 우리는 동시에 숨을 삼켰다. 고기 한 조각과 감자 몇 개가 거의 30달러. 거기에 물 하나, 음료 하나만 더해도 금세 50달러가 넘어갔다. 순간 원더랜드가 왜 ‘시즌 음료 패스’와 ‘다이닝 플랜’을 따로 판다는 말을 알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음료 무제한이 37달러, 식사 두 번 제공되는 플랜이 105달러라니, 계산을 해보면 어쩐지 납득이 되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피곤한 몸으로 먹어서인지, 음식은 놀라울 만큼 맛있었다. 값이 조금 비싸도, 놀고 난 뒤의 한 끼는 언제나 특별하다.
다시 워터파크로 돌아와 한참 더 물에서 놀고 난 뒤, 샤워를 하려고 사물함을 열어보는데… 문이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힘으로도, 요령으로도, 온갖 시도를 해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내데스크에 도움을 요청할까 싶었지만, 모두 핸드폰을 사물함 안에 넣어둔 상태라 그럴 수도 없었다.
우리는 문 앞에서 낑낑거리다 웃었다가, 또 약간 울컥했다가, 다시 포기했다가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별다른 예고 없이 ‘덜컥’ 하고 문이 열렸다. 알고 보니 짐을 너무 꽉 채워 넣어서 내부에서 걸린 상태였던 것 같다.
짐을 챙겨 샤워실로 향했는데, 샤워기 상태는 다소 극단적이었다. 물이 얼음처럼 차갑거나, 아니면 바늘처럼 강하게 쏟아지거나 둘 중 하나였다.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다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씻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뜨겁다고 투덜대던 햇빛이 그 순간만큼은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언니들은 치맥 한 잔 더 하고 가자며 아쉬워했지만, 나는 다음 날 출근이 있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 하늘에는 노을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묘하게 가벼웠다. 오늘 하루, 정말 알차게 놀았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날이 또 하나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