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맛, 사람의 맛

캐나다 워홀 도전기_28화

by 혜주

토론토의 많은 여름 이벤트 중에는 Summerlicious라 불리는 도시 전체 레스토랑 페스티벌이 있다. 이 페스티벌은 여름과 겨울 이렇게 두 시즌 동안 2-3주간 열리는데 거의 200곳이 넘는 곳이 참여해서 점심, 저녁 3코스 세트 메뉴를 할인된 가격에 제공하는 이벤트다. 언니들이랑 함께 이 더운 여름에 어디를 방문해서 먹을 것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위치도 고려해야 했고, 음식 코스도 고려하며 나름 신중하게 한 곳을 골랐다.


우리가 고른 레스토랑의 이름은 Adega. 여기는 토론토에서 가장 오래된 포르투갈 레스토랑 중 하나였다. 샛노란색 외관과 초록초록한 식물들이 반기는 외관과 앞쪽에 빨간 체크무늬 테이블보가 덮여있는 작은 테이블들은 아기자기한 맛을 더욱 살려주었다. 한껏 기대한 마음을 가지고 입장했다. 내부는 생각보다 어두웠고, 여기저기 조명은 많이 있었지만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눈이 침침하게 느껴졌다. 마치 저녁 데이트를 하러 온 느낌이랄까. 하지만 노란 조명들은 마음을 편안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줬다. 단 하나, 에어컨이나 펜이 없어서 실외보다 더운 게 문제였다.


이 페스티벌에 참가한 레스토랑들은 메뉴를 구성해서 고정 가격으로 오픈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정해진 코스 들 중에 점심 코스를 선택했다. 가격은 $48 정도였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가격으로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이 페스티벌의 큰 장점인 것 같다. 코스 요리는 starter, Main, Dessert 이렇게 3가지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선택을 할 수 있게끔 되어있었는데, 우리는 각기 다른 것들을 시켜서 나눠먹기로 했다.


Starter로 선택한 beet, goat cheese salad, Salmon Tartare on Avocado Mousse. 달콤한 비트소스랑 부드러운 염소치즈 그리고 피스타치오 크러스트가 올려져 있었고, 다른 하나는 생연어와 함께 아보카도 무스, 발사믹으로 마무리된 음식이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는 비트를 먹을 일이 잘 없었는데 캐나다에 와서 생각보다 여러 음식에서 많이 만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샐러드가 나올 때면 항상 촉촉한 비트가 한 두 개씩 나오고는 했다.


둘 다 꽤 맛있었고, 뭐 하나 불편하게 하는 맛은 없었다. 하지만 양이 너무 작아서 내가 방금 음식을 먹었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는 Starter가 나오자마자 1초 컷을 한 후, Main 음식이 빨리 나오기를 목을 빼고 기다렸다. 에어컨이 없어서 그런가 점점 내부가 더워지고, 가뜩이나 밖에서도 더위를 잔뜩 먹고 왔기에 숨이 살짝 막혀오는 느낌이 들었다. 한 언니는 결국 나시차림을 하고 더워하고 있었고, 다른 언니와 나는 더 이상 벗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우리와 한 두 테이블 정도의 손님만 있었기에 금방 나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나는 잠시 화장실을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캐나다의 화장실은 대체로 지하에 위치해 있고, 계단을 통해 내려가면 화장실과 창고 등등이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계단을 통해 내려가니 지하라서 그런지 벽에서 스며 나오는 냉기가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우리가 밥 먹던 장소보다 지하가 훨씬 밝았다. 눈이 떠지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한참을 더위를 식히고 올라왔지만, 그때까지도 아직 음식이 나와 있지 않았다. 언니들도 한 번씩 땀을 식히고 온 후에야 Main 메뉴가 나왔다.


우리가 시킨 Main 메뉴는 4개였다. 코스요리 이외에 궁금했던 음식을 하나 더 시켰었다.

첫 번째 메뉴는 Adega 레스토랑의 거의 상징적인 요리인 grilled sardines with tomato salsa verde. 이 음식은 정통 포르투갈식 정어리 구이로 위에 토마토, 피망 살사 그리고 향긋한 파슬리 오일이 함께 나오는 음식이었다. 모양도 예뻤지만 나온 정어리가 내가 생각한 사이즈보다도 한참 커서 놀랐다. 마치 큰 전어 사이즈였다. 정어리는 비리지도 않고 너무 맛있었고 함께 뿌려져 나온 오일이 입에 생선 맛이 남지 않게끔 마무리해 주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메뉴는 grilled squid with lemon garlic live oil.

이 메뉴도 레스토랑에서 가장 인기 많은 음식이라고 했다. 오징어가 통째로 나온 데다가 청경채, 애호박, 당근등이 함께 나와 익숙한 모양과 맛이었다.

세 번째 메뉴는 roasted fresh cod with plum chutney.

대구구이에 자두소스와 야채가 올라간 메뉴였는데 대구가 너무 부드럽고 맛있는 데다가 자두소스가 새콤달콤해 입맛을 점점 올려주었다.

마지막 네 번째 메뉴는 braised lamb shank with white beans and root vegetables.

고기를 사랑하는 우리에게 안 시킬 수가 없는 메뉴였다. 역시나 배신하지 않는 고기의 맛.

대체적으로 모든 음식들이 다 맛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배고팠다. 음식으로 향하는 손은 빨라졌고, 우리는 눈이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마음을 공감해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지막 dessert는 ssrradura라는 전통 디저트, 그리고 house-made sorbet trio, poached pear with berry coulis 이렇게 세 가지였다.

전통디저트는 비스킷 크럼블과 크림이 겹겹이 쌓인 무스였고, 부드럽고 달콤하고 입에서 살살 녹았다. 입이 너무 달달해질 때는 소르베로 상큼하게 입 안을 날려주었고, 마지막에 바닐라 시럽에 조린 배 디저트를 먹으면 삼삼하니 다시 달달한 무스가 당겼다. 디저트 3개는 세트로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마지막 디저트까지 싹싹 긁어먹었을 때, 우리는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하는 듯 보였다.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언니, 나 배고파.”

언니들은 깔깔 웃으며 공감했다. 우리는 근처에 음식점이 무엇이 있는지 찾아보았고, 한국식 치킨집이 1분 거리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곤 바로 전화를 걸어 주문을 했다.


치킨 한 마리-후라이드 반, 양념 반. 근처에서 치킨과 함께 먹을 레드와인 한 병과 포트와인 한 병을 구입해 우리는 석양이 예쁘다고 소문난 Riverdale Park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 온 치킨과 와인을 먹으며 바라보는 토론토의 석양은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CN 타워에서 토론토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 낯선 도시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끼고 내 것이 될 수 있을까 ‘를 기대감에 찬 뭉클함이 올라왔었는데, 지금 내 모습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더 많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내 옆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함이 느껴졌다.


“우리 참 잘 살고 있다. 이렇게 여유 있게 놀고, 즐길 수 있는 것도 우리가 잘 버텨오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간이 생기는 거야. 내일 또 열심히 일하고 조만간 또 놀자.”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하는 언니들의 모습을 바라보니 그때와는 다른 뭉클함이 올라왔다. 세상에는 참 아름다운 풍경이 많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건 사람인 것 같았다.

함께 보낸 이 Summerlicious, 여름의 맛 축제에서 나는 사람의 맛을 또 한 번 느끼며 마음 한편에 추억을 남겼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