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31화
코스트코에서 일하는 건 이상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재밌어지는데, 동시에 점점 더 지쳐갔다.
어느새 완전히 적응해 버린 나는 출근과 동시에 입이 쉴 틈이 없었다. 내가 속한 부서 사람들뿐 아니라 다른 부서 동료들과도 반가운 허그를 나누고, "야, 여기서 잤냐? 또 일하고 있네?" 같은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매장을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자주 발견하고는 했다.
하지만 반대로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이기에 언제나 손님들로 북적거렸고, 손 빠르고 눈치 빠른 한국인이라는 점과 최대한 일을 안 하려고 농땡이치는 사람들로 인해 나에게 들어오는 일은 점점 불어났다. 일감이 늘어날수록 책임감도 더욱 커져가기 시작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는 날이 갈수록 더 친해졌다. 눈빛만 스쳐도 같이 웃음이 터질 정도로 말이다. 매번 스케줄이 나올 때마다, 내 최애 동료들과 일하는 날이나 시간이 겹쳐 있는지 서로 확인하며 아쉬워하거나 기뻐했다. 내 최애 동료들은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일을 잘했고, 그들이 있으면 아무리 손님들이 많아도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든든함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Ardita라는 동료에게 정이 많이 가고 있었다. 그녀는 속히 '사람냄새가 난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성가실 법한 일도 적당히 웃어넘길 줄 알고, 필요할 땐 아니라고 단호해질 줄도 알았다. 제일 좋았던 건 짜증이 날 법한 상황에서도 분위기를 항상 유쾌하게 바꾸는 그 모습이 좋았다. Ardita는 세 딸을 가진 엄마였는데, 세 명의 딸들은 정말 하나같이 '그녀의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일할 때는 가끔 농땡이를 치긴 했지만, 눈치가 좋아서 티 나게 빠지는 법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막상 손을 대면 누구보다 빨랐다.
그날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내 최애 동료들이 모두 함께 일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서 평소보다 몇 배는 사람이 몰려오는 듯했고,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주문에 우리 모두 넋이 나가있었다. 몇 시간을 쉬지도 못하고 손님들을 쳐내고 있을 때쯤, 감자튀김 기계가 큰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멈춰버렸다. 놀람도잠시, 곧 슈퍼바이저가 될 준비를 하고 있던 야무진 Sanjay가 빠르게 기계로 다가가 손보기 시작했다. 다행히 두 개 중 하나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나머지 하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한 대의 기계로 코스트코 전체의 감자튀김을 감당해야 했다.
캐나다에 대부분의 음식에는 감자튀김이 들어간다. 캐나다에서 감자튀김은 거의 주식이자 종교다. 한 주문서에 3-5개씩 푸틴이나 감자튀김을 시키는 사람들이 꽤 있을 정도였다.
속도가 날 리 없었다.
손님들을 하나, 둘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매대 앞으로 자신의 번호를 들고 와서는 종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계속 소리치며 그들과 맞서야 했다.
"기계 고장이기에 사용할 수 있는 기계가 하나뿐이라 시간이 더 지체됩니다. 환불 원하시는 분은 저쪽으로 이동해 주세요."
그중에서는 우리에게 삿대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대놓고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그 삿대질과 욕을 들으면서도 "죄송합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라고 사과를 했겠지만, 이곳에서는 달랐다. 회사는 어떤 상황에서든 직원의 편이기 때문에, 진상이 있다면 오히려 진상에게 똑같이 해줘도 괜찮았다.
그래서 나는 내게 손가락질하며 “야, 빨리 가져오라고!”라고 소리치는 중년의 여성에게 눈을 제대로 치켜뜨며 말했다.
“당신에게 서비스할 생각 없어.”
그녀는 뒷목을 잡고 난리 치며 슈퍼바이저에게 달려갔지만, 그는 이미 상황을 다 보고 있었다.
나에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6시간을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코스트코가 문을 닫고 손님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매장은 갑자기 텅 빈 것처럼 조용해졌다.
바닥에는 하루 동안 쏟아진 전쟁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감자튀김 부스러기, 각종 비닐, 치킨 튀김, 빵가루 등.
우리는 생각조차 하기 싫을 만큼 지쳐 있었지만, 마감 청소는 해야 했다.
나는 Ardita와 함께 매장 중간 구역을 맡아 바닥을 밀고 있었고, 우리는 정신없이 수다를 떨며 피로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때, 주문 데스크 아래쪽에 지퍼백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것을 들어 올리며 소리쳤다.
"Ardita! 이게 뭐야?"
내 질문에 Ardita뿐만 아니라 같이 일하는 동료들도 슬쩍 모여들었다. 지퍼백 안에는 누군가 정성스럽게 만든 팔찌들이 들어 있었다. 알록달록한 비즈들이 엉성하지만 귀엽게 줄지어 있었다.
지퍼백을 열자, 종이 한 장이 더 나왔다.
-코스트코에게.
항상 고마워요. 우리의 수요일과 일요일을 행복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요.
사랑을 담아, 팀 Tigley.
우리는 편지를 돌려 읽으며 누가 두고 갔을까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그때 뒤쪽에서 다른 동료가 걸어와 말했다.
“아, 아까 어떤 아기가 엄마랑 와서 준 거야.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 고맙대.”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늘 하루의 고됨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우리는 팔찌를 들여다보며 “우리가 만든 음식이 좀 맛있긴 하지?” 하며 서로 놀리다가, 어느새 다들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나는 그 순간, 동료들의 미소와 함께 눈가에 조용히 떠오르는 뿌듯함을 발견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고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안아주며 말했다.
"함께 일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