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와, 나를 이끌었던 날 EP.2

캐나다 워홀 도전기_35화

by 혜주

이틀째 날이 밝았다. 근처를 계속해서 걷다가 마켓을 발견했고,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그쪽으로 향했다. 지도를 확인하니 오타와에 관광으로 오면 한 번쯤은 꼭 들른다는, 그런 마켓이었다.

마켓 앞쪽에는 사람들이 물건을 줄지어 늘어놓고 판매하는 것들이 보였다. 그중에 내 눈을 사로잡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돌을 깎아내 그림을 그린 작품들이었다. 맘에 드는 작품 앞에 쪼그리고 앉아 구경하고 있으니 사장님이 쓱 오셔서 말을 걸었다.

"내 아내가 만든 거야. 어때?"

푸근한 인상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굉장히 세심한 작품이야. 아내분의 상상력과 센스가 작품에서 느껴져. 나 되게 맘에 들어."

그 말에 사장님은 컬컬 크게 웃으며, 내가 보고 있는 작품에 멋진 이야기가 있다고 들어보겠냐고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에게 사장님은 간이의자를 건넸다. 나는 거기에 앉았다.


사장님과 아내분은 캠핑을 하러 가서 이 돌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장님이 보시기에는 그냥 평범한 돌이었는데 아내는 이 돌을 보자마자 눈이 반짝하고 빛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고 했다.

“이 돌에서 꽃이 보여. 당장 돌아가고 싶어.”

사장님은 그 눈빛에 다시 짐을 챙겨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 이후로 아내는 이틀을 작업했고, 이 평범한 돌에서 꽃을 발견해 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이셨다.

"그녀는 특별해."

별일 아닌 이야기일 수도 있었지만, 그 이야기를 하는 사장님에게서 느껴지는 순수함과 아내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특별하던지. 잠시 그의 아내분이 부럽기까지 했다.


그와 한참을 떠들다 배가 고파 인사를 나누고 마켓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들어가기 전 내게 말했다.

"여기서 밥 먹을 거면, 들어가자마자 자리부터 잡아.”

안으로 들어가니 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가 갔다. 관광객으로 넘쳐 앉을자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혼자니까 어디든 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일단 샌드위치 하나를 구입했다. 뱅글뱅글 돌다가 한 젊은 여자애들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의자가 비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 여기 앉아도 돼?"

"당연하지!"

그들은 불어를 사용했다. 불어를 못하지만 조금 알아들을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다행인 듯했다.

그들의 옆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었다.


이후 미술관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커다란 거미 조형물이 있다며 거기서 사진을 꼭 찍어야 한다고 아침에 읽은 블로그들이 말했다. 가을바람이 불었지만 춥지도 않았고, 오히려 햇빛이 너무 뜨거워 걸으면 걸을수록 더워져만 갔다.

미술관에 도착하니 재밌게도 한국인 작가인 윤진미 님의 특별전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를 볼까 했지만 그다지 끌리지 않아 그만두었다. 다만 미술관 내부를 돌아다니며, 유리를 통과한 햇빛이 바닥과 벽에 반사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며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굿즈 숍에 들렀을 때, 호박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손가락에 딱 껴보니 너무나도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본 판매하는 젊은 직원이 다가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저번 주에 딱 내 모습이랑 똑같아."

나는 깔깔 웃으면서 답했다.

"내 마음소리 들려?"

그녀는 자기도 엄청 고민했는데, 결국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것 같아서 샀다며 손에 낀 반지를 보여줬다.

나는 호박을 좋아한다. 그 안에 담긴 따뜻함과 햇살, 그리고 시간을 머금은 역사까지. 하지만 가격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반지를 내려놓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혹시 5시간 정도 고민할 시간 줄래? 숨겨놔 줘."

그렇게 미술관을 빠져나와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걸어가는 길 자꾸만 반지가 눈에 밟혔다. 바로 발길을 돌려 다시 돌아갔다. 직원은 나를 보자마자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정말로 반지를 숨겨두었다고 했다. 없으면 내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그랬다고. 그렇게 나는 반지를 손에 넣었다. 노란 호박. 손에 쥐자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다시 반지와 함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은 푸르른 잔디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사람들이 벌러덩 누워 햇빛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뒤쪽으로는 거위들이 모여 소리를 내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도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잔디밭에 앉았다. 눕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몰려왔지만, 흰 옷이었고 더럽히고 싶지 않았고, 벌레에 물리고 싶지 않았고, 뭔가 찝찝했다. 근데 벌러덩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자 '나는 왜 눕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좀 더러워지면 어떻고 벌레 좀 물리면 어떠하리. 나도 누워보자!


그래도 이 찝찝한 마음을 아예 저버릴 수는 없었기에, 잠바를 고이 벗어 잔디밭에 예쁘게 깔고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누웠다. 어디선가 거위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았지만, 일단 눕고 보니 내 눈에 들어오는 나무들과 하늘이 어찌나 예쁜지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그곳에서도 한참 햇빛을 받고 바람을 느끼며 누워있었다. 그리고 반지를 요리조리 햇빛에 반사시키며 바라보았다. 몇 시간을 누워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슬슬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벌써 점심시간이 지난 지 한참이 되어있었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했지만 막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음식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관광지를 먼저 돌아보기로 했다. 오래된 역사 건물들 뒤쪽으로 올라가면 오타와의 멋진 풍경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고 해서 그쪽으로 향했다. 안타깝게도 건물들은 공사를 하고 수리 중이었지만, 그 위에서 내려다본 풍경은 묘했다.

역사와 현대가 섞여있는 그런 동네,

그리고 그 안에 반짝거리는 호수가 정점을 눌러주는 그런 동네.


그렇게 또 한참을 걸어 다니면서 도시를 구경했다. 그러다, 김밥집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지내는 미시소거에도 김밥 파는 곳이 있는데 맛이 없었고, 토론토에도 김밥 파는 곳이 당연히 있지만 멀었다. 신나는 마음에 길을 나섰다. 부녀가 일을 하고 있었고, 가게에서 직접 김치도 담그고 각종 반찬도 만든다고 했다. 김밥 종류도 다양하고 냄새도 너무 좋았다. 불고기 김밥을 포장해 숙소로 가서 먹기로 했다.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열어보니 모양도 예쁘고 너무 맛있었다. '하나 더 사 올걸.'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다시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소파에 누워 조금 더 쉬다가 숙소 근처를 구경하기 위해 한번 더 나왔다. 내일 아침 일찍 다시 5시간을 운전해서 토론토로 넘어가야 하기 때문에 무리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숙소 바로 앞에는 정확하게 무슨 가게인지 알 수 없게 생긴 가게가 있었는데, 항상 문이 닫혀있었다. 근데 딱 내가 밖으로 나간 타이밍에 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각종 사퀴테리들을 판매하고 와인과 맥주, 그리고 사이다들을 판매했다. 위층에는 예약제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이 있었다. 나는 이 가게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신기해 보이는 맥주와 사이다를 구매해 숙소도 돌아왔다. 굴이 들어간 맥주와 과일과 허브가 들어간 소다였는데 둘 다 내 예상을 깨는 맛이었다. 굴이 들어간 맥주는 짭짤하고 살짝 굴 비릿함이 올라오면서 너무 맛있었고, 소다는 맹맹한듯하면서도 인위적인 맛이 없이 너무 맛있었다. 나는 다시 가게로 돌아가 굴 맥주를 하나 더, 그리고 그 소다 브랜드의 다른 맛 소다들을 구매했다.

그렇게 짐을 챙기며 다음 날 돌아갈 준비를 마치고 잠자리에 누워 생각했다.


이 여행의 시작은 우울이었다. 누군가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뤄주길, 나를 이끌어주길 바랐던 내 모습과 충족되지 않았던 기대들. 기대고 싶었던 나.

기대고 싶다는 내 마음을 모른 척하지는 않겠다. 나도 힘드니까. 다만 그 기대를 남에게만 맡기는 건 무모하다는 것도 안다. 내 욕구를 알아차리고, 이해하고, 스스로를 이끌어갈 수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렇게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해 또 이렇게 조금 무모했지만 해내지 않았는가.


오늘도 한번 더 생각한다.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괜찮을 수 있을까?


나는 나니까, 괜찮을 거다.

그렇게 오타와에서의 여행을 마무리했다.


목요일 연재
이전 04화오타와, 나를 이끌었던 날 E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