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워홀 도전기_36화
그날은 출근하자마자, 내가 쉬던 날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었다.
어떤 손님이 자신의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자 “저주를 받을 거다”라며 욕을 하고 갔다는 이야기였다.
다들 놀랐지만, 팀의 시니어가 그 상황에서 웃으며
"응, 고마워. 좋은 하루 보내."라고 했다는 말에 우리는 "역시 그녀답다."는 말과 함께 놀람과 웃음이 섞인 수다를 떨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의 농담에 올라왔던 건 그 욕을 했던 손님의 인종이었다.
이런 좋지 않은 상황이 생겼을 때, 우리는 꽤나 인종을 물어보고 확인하고,
마음속 어딘가에 나와 같은 인종이 아니길, 나와 같은 나라 사람이 아니길 바랐다.
코스트코에도 은근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많았는데,
매번 들을 때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고, 이 많은 CCTV가 존재하는데도
'왜? 도대체 왜?'라는 의문이 들면서 충격을 주고는 했다.
저번주에도 일이 있었다.
우리에게까지 그 가십거리가 넘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나온 질문은 인종이었다.
나와 같은 인종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고, 같은 인종이었던 직원은 꽤나 짜증을 내고는 했다.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고 같은 사람은 아니기에 신경 쓸 일도 짜증 날 일도 아니지만, 마음은 괜히 그렇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생각들이 더 이상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나 역시, '아, 이 상황이 나를 꽤나 민망하게 만드는구나.' 하고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 날이었다.
그날은 평소와 같은 날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출근 준비 후 회사에 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같은 시간에 많이 배치된 날이어서 꽤나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매니저가 갑자기 허겁지겁 달려와 나를 불렀다.
"당장 사무실로 와. 너 도움이 필요해."
무슨 일 생겼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유니폼을 벗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그곳엔 한 아주머니가 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국말로 말했다.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잘못했어요."
직감적으로 느꼈다.
'아, 오늘이 그날이구나. 내가 한국말 사용을 한다는 것에 민망함을 느끼게 되는 날.'
매니저는 당황하는 내 얼굴을 보며 상황을 설명했다.
아주머니는 역시나 물건을 훔치다 걸렸고, 이 상황이 벌써 2번째라 더 이상 경고로 지나가지 못해 경찰을 불러 기다리는 중인데, 영어를 하지 못한다고.
근데 바닥에 엎드려서 저렇게 있으니 무릎이 다칠까 봐 의자에 앉았으면 좋겠는데,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내가 통역해 줬으면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나는 아주머니에게 향했다. 그리고는 쪼그리고 앉아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곧 경찰이 올 거예요. 그전까지는 아주머니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바닥에 있으면 무릎이 상할 수 있으니 의자에 앉아주세요."
하지만 아주머니는 내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나는 아주머니 손을 내 팔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의자에 앉으세요."
내 말은 듣지 않고 엎드려 생떼만 피우는 아주머니와 그 앞에 서서 의자에 앉으라고 이야기하는 나, 그리고 우리가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저 우리를 둘러싸고 쳐다보고 있는 직원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도 어찌나 얼굴이 화끈거렸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랬을까, 점점 언성이 올라갔다.
나는 화를 내며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이미 물건 훔쳐놓고 어떻게 도와달라는 거예요. 이렇게 될지 모르셨어요?
잘못된 행동이라는 거 모르셨어요?
제발 더 이상 저를 창피하게 만들지 말고, 의자에 앉으세요.
여기서 이렇게 엎드려서 이야기하셔도
여기 사람들, 아무도 이해 못 해요.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요.
애초에 훔치지 말았어야죠!"
아주머니는 우는 소리를 내며 나를 붙잡고 늘어졌다.
"나 좀 도와줘. 나 잘못했어. 지금 돈 낸다고 말해줘."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매니저는 나에게 고맙다고 말하며, 나를 돌려보냈다.
일터로 다시 돌아온 나를 본 친구들은 후다닥 달려와 무슨 일인지 물었고,
나는 넋이 나간채로 한국말로 번역해 주고 온 상황을 이야기했다. 다들 나를 꼭 안아주면서 말했다.
"네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저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뿐이야. 원래 어느 나라든 이상한 사람은 다 있잖아."
우리 모두 다 아는 말이지만,
타지에서는 더욱 불끈거리는 애국심 때문인지 우리 모두 내 마음에 깊은 공감을 했다.
그렇게 한참 뒤,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쯤, 경찰들이 방문했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호출을 받았다.
경찰들의 말을 통역해 본 적이 없다 보니,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무장한 경찰 두 명이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한테 설명할 테니 잘 이해시켜 줘."
나는 대답했다.
"나 좀 긴장되는데,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 줘."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캐나다에서 훔치다 적발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기본적인 상식도 없던 탓이었는지,
경찰이 하는 말을 듣고 또 들으면서, 나는 다시 경찰에게 내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되묻고 또 되물었다.
한치도 실수도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주머니는 여전히 내 팔 한쪽을 붙들며 속삭이듯 잘못했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경찰이 전달하고자 했던 건, 더 이상 모든 코스트코에는 출입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법원에 출석해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거기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
출석해야 하는 날짜, 시간에 나타나지 않으면 바로 잡혀간다는 것 등이었다.
아주머니는 그 와중에도 나를 잡아당기면서 물었다.
"내가 지금 돈 낼게. 지금 이거 돈 낼게. 그거 물어봐줘."
그 말에 어이가 없었다. 나는 되물었다.
"왜 돈 낼 수 있는데 안 내셨어요? 왜요? 저 지금 한국말 통역하는 거 너무 창피해요."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경찰에게 물어봤다.
경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미 늦었습니다."
나는 똑같이 아주머니에게 전했다.
아주머니는 내 팔을 붙잡고는 다시 '죄송합니다. 봐주세요.'를 반복했다.
경찰이 관련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할 때, 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그러셨어요?"
아주머니는 넋이 나간 눈빛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남편이 풍으로 쓰러졌고, 아들은 정신이 안 좋아. 돈이 나올 곳이 없어. 도움 받을 곳도 없고."
그 이야기를 듣는데 순간 마음이 짠했다. '아 힘든 상황이구나. 쉽지 않은 상황이구나.'
아주머니 손을 살짝 붙잡으며 나는 말했다.
"아주머니 여기 사신지 오래되셨잖아요.
정부한테 도움 받을 수 있는 거 많다고 들었는데, 한번 찾아보세요.
이번에 법원에 출석하실 때 한번 여쭤보시고요. 계속 이렇게 사시면 안 돼요.
이건 옳지 못한 행동이잖아요.
도움 받으실 곳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리고는 다시 한번 꼭 출석해야 하는 날 잊으면 안 된다고 당부를 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 마무리를 한 후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친구에게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친구는 그 아주머니 분명 영어 알아들었을 텐데, 괜히 못 알아듣는 척해서 빠져나가려고 했던 걸 거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일리는 있었다. 그렇게 오래 산 사람이 어떻게 여태 영어도 못하는 상태로 살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돈이 없는데 코스트코 블랙 멤버십 카드는 어떻게 가지고 있었겠는가.
집에 와서도 찝찝한 기분이 계속 이어졌다.
정말 어떤 상황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이렇게 알게 된 그 아주머니의 모습이 쉽게 잊히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