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했던 하루

캐나다 워홀 도전기_37화

by 혜주

오늘은 원래 출근해야 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매니저에게 전화가 줄줄이 와있더라.

"시간표가 바뀌었는데, 너 오늘 출근 안 해도 될 것 같아."

험한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쉰다니 기분이 좋았다.

문제는 이 꿀 같은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였다.

막막하던 찰나, 눈여겨보던 레스토랑이 떠올랐다.

그 레스토랑은 일주일에 2-3일 정도만 문을 열었는데, 항상 내가 쉬는 날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오픈을 하는 날과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시간을 확인했다.

곧 점심 영업이 끝나고 브레이크 타임이 시작될 참이었다.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나 지금 1시간 안에 갈 수 있는데, 혹시 점심 먹을 수 있을까?

사장님은 고민하더니 말했다.

"30분 안으로 오면 가능할 것 같아."

“오케이. 당장 우버 타고 갈게요. 고마워요.”

전화를 끊자마자 가방에 돗자리와 아이패드를 던져 넣고 부리나케 우버에 올랐다.


20분 만에 도착한 레스토랑의 이름은 Chelsea.

영국의 오래된 동네이름을 그대로 쓴 레스토랑답게 내부는 따뜻하고, 조용한 아늑함을 풍겼다.

집이랑 조금만 더 가까웠다면, 매일 와서 단골이 되고 싶게 만드는 그런 공간이었다.

이곳은 점심, 저녁 메뉴가 약간씩 달랐다.

내가 먹고 싶었던 메뉴들이 점심, 저녁 메뉴에 각각 퍼져있어 고민이 되었다.

내가 메뉴를 고민하는 동안, 동네에 살고 계시는 백인 노인분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 이 동네 약간 부유한 은퇴층들이 많이 사는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점심 수프와 메인 메뉴로는 레몬 치킨, 그리고 화이트 와인을 한 잔 했다.

모든 게 맘에 들었다. 너무 만족스러워서 저녁에 또 오고 싶었다.

사장님은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로 다정했다.

식사를 마친 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한동안 눈여겨보던 곳인데, 이렇게 오늘 타이밍이 맞아서 너무 기뻐. 저녁에 또 올 거야."

내 말을 들은 사장님은 크게 웃으며 곧 보자고 했다.

레스토랑을 빠져나와 근처를 쭉 산책했다. 이곳은 Port Credit으로 사실 밤에 와야 더 할거리, 볼거리가 많은 곳이라, 낮에는 펍도 닫혀 있고 유난히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곳에 온 기분이 들었다.

살랑거리는 바람이 약간 알딸딸한 상태를 더 즐기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쭉 걸어 호수에 있는 큰 공원에 다다랐다.

커다란 바위들에 철썩 거리며 부딪히는 파도들은

이곳이 호수인지 바다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맑은 공기와 물소리, 그리고 저 멀리 끝이 보이지 않는 수면까지.

마음이 더없이 편안해졌다.


공원을 쭉 걷다 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구석구석 텐트를 치고 이곳에서 잠을 잔 것 같았다.

처음에는 홈리스인가 싶었지만, 텐트의 퀄리티가 달랐다.

나도 한쪽 위치를 잡아 가지고 온 돗자리를 펼쳤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하늘을 보고 누웠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백지처럼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내 머릿속이 평온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대로 잠이 들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적당히 따뜻한 햇빛, 그리고 마치 산 정상에 있는 것 같이 맑은 공기.

낮잠 자기 딱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자고 일어나, 맑아진 정신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돗자리 끝에 보이는 초록색 잔디밭과 그 틈새로 보이는 흙이 보였다.

만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마치 풀 내음이 나는 듯했다.

저 멀리 점점 해가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그리고 다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사장님은 날 보고는 환하게 반겨주셨다. 정말 올 지 몰랐다며.

궁금했던 저녁 메인 메뉴와 함께 레드와인 한 잔, 그리고 이번엔 디저트도 먹어보았다.

이곳이 집 앞에 있지 않은 것이 참 아쉬웠다.

그때 주방에서 간간히 한국말이 들려왔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리지는 않지만 한국말인 것은 확실했다.

음식이 어떤지, 점심메뉴가 좋은지, 저녁메뉴가 좋은지 물어보시는 사장님께 물어보았다.

"한국분이세요?"

사장님은 내 말에 놀라며, 주방으로 달려가 아내분에게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시는 듯했다. 나는 그렇게 그 귀여운 한국 부부와 한참을 대화를 나눴다.

재밌었던 건, 우리 모두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하도 영어만 쓰다 보니

한국말이 잘 나오지 않아 버벅거리다 결국 영어로 대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또 오겠다는 인사를 남기고 레스토랑을 나왔다.


돌아가는 길, 어둑어둑해진 Port Credit에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 밤을 시작하는 풍경을 구경했다. 저 멀리 떠오른 달이 호수에 비치고, 그 옆으로 신나는 노래와 밤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반짝거리는 예쁜 모습으로 보였다. 알딸딸해서 그랬을까.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오늘 하루도 잘 먹고, 잘 놀았다. 그걸로 충분한 그런 날이었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