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와, 나를 이끌었던 날 EP.1

캐나다 워홀 도전기_34화

by 혜주

차를 빌리고 소도시들을 다녀온 후 나는 캐나다에서의 운전에 자신감이 붙었다. 그 이후로 며칠 동안 차로 출퇴근을 하면서 내가 운전하는 걸 꽤 좋아한다는 사실, 그리고 사람들 틈새에 있는 것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얼마나 편안한지에 대해 자주 생각했다. 한국에 있을 때처럼, 잠시 차를 주차해 두고 한두 시간씩 차 안에서 멍하니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차를 빌린 김에, 그리고 자신감도 붙은 김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하나 더 떠올렸다. 그렇게 나는 오타와를 예약했다. 2박 3일.

더 오래 머물고 싶었지만, 출근하지 않는 날에 맞춰야 했기에 낼 수 있는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저녁에 퇴근하자마자 밤길을 달려 오타와를 하루 반 동안 짧게 여행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운전하고 돌아와 바로 출근하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내 계획을 들은 친구들은 미친 짓이라고 왜 혼자 가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미 저지른 일 돌이킬 수 없었고 후회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날짜가 가까워질수록 걱정은 하나씩 늘어갔다. 한국처럼 편한 휴게소는 없을 텐데, 도로는 좁고 거대한 트럭이 많다던데, 편도 다섯 시간을 혼자 운전할 수 있을까. 걱정은 계속 쌓였지만, 결국 답은 하나였다. 해봐야 알지.


여행 당일, 내가 바로 출발한다는 걸 아는 친구들은 준비는 다 했는지, 가서 뭘 할 건지 질문을 쏟아냈다. 아무런 계획도 없다는 내 대답에 그들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같이 가던지!" 하고 웃으며 말하자, 친구들은 각종 변명을 늘어놓다 머쓱하게 웃었다.

나도 안다. 우리 사이의 상황 차이.

조심히 다녀오라는 그들을 뒤로하고 차에 올라탔다. 5시가 조금 넘은 저녁 시간, 아직 늦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해는 빠르게 저물었다. 토론토를 가로질러 나올 즈음, 하늘은 빛 하나 없이 까매졌고 도로는 두 개의 차선으로 줄어들었다. 말로만 듣던 거대한 트럭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출발한 지 3시간 가까이 지나가자 노래도 슬슬 지루해지고, 어둠 속에서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미리 알아보았던 휴게소로 들어갔다. 한국처럼 풍부한 음식이나 휴식 공간은 없었지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팀홀튼에서 달콤한 음료 하나를 사고 편의점에서 과자를 몇 개 집어 들었다.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 모를 홈리스들이 여기저기 있었기에 나는 빠르게 차로 돌아왔다. 그래도 잠이 깨지 않아 모든 창문을 열고 허벅지를 때리며 남은 거리를 운전해 가고 있을 때, 내 뒤에 있던 차가 쌍라이트를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더 빨리 달리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앞차도 있었고, 속도도 느리지 않았다. 계기판은 이미 120을 가리키고 있었다. 적당히 무시하려고 했으나, 내 뒤의 차는 쉬지 않고 라이트를 깜빡거렸다. 가뜩이나 어두운 데다가 라이트로 인해 눈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마침 옆 차선 트럭들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그 차는 재빠르게 차선을 바꾸더니 거대한 트럭을 바짝 따라붙었다. 순간 잠이 확 깼다.

나도 차선을 옮겨 그 차 뒤를 따라붙었고, 똑같이 쌍라이트를 깜빡였다. 아드레날린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그 차는 속도를 줄였다가 다시 올리며 나를 피하려 했지만, 나는 끝까지 따라붙었다. 어느새 도로 위에는 그 차와 나뿐이었다.

다음 휴게소로 들어가기 위해 그 차가 속도를 줄였을 때, 얼굴이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이길래 이렇게 무례하게 운전을 할까. 창문을 살짝 열었고, 백인 배불뚝이 중년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때, 아시안 젊은 여자한테 똑같이 당해보니.'

휴게소로 들어가는 차를 보며, 한껏 솟구쳤던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오타와에 들어와 있었다. 나는 예약해 둔 숙소로 이동했다.

예약할 때쯤 괜찮은 숙소들이 거의 예약마감이라 난감해하고 있을 때, 운 좋게 가성비도 1박에 7만 원을 주고 예약한 곳이었다. 비즈니스로 출장을 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보통 숙소들이 비즈니스호텔이 많았고, 교통이 편한 곳 근처는 빈 숙소도 잘 없는 것 같았다. 오타와는 교통이 토론토보다도 안 좋다고 해서, 운전할 계획이 없었기에 무조건 교통이 편한 곳으로 잡아야 했다.

그렇게 도착하니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무난한 한국 모텔 같이 보였다. 체크인을 하자 직원이 미안한 얼굴로 내가 예약한 방에 문제가 생겨 다른 방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어디든 괜찮다며 웃었다. 눕기만 하면 된다고.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나는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너무 넓었다. 이건 나 혼자 이틀 묵을 수준의 방이 아니었다. 내 키만큼 커다란 TV, 점프해도 될 만큼 커다란 소파, 그리고 그 뒤로 6명이 앉아 회의를 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우드 테이블과 의자, 있을 건 다 있고 없어도 될 것까지 있는 주방, 컴퓨터가 놓인 책상 뒤로는 긴 복도가 이어졌고, 그 끝에는 화장실과 침실이 차례로 나타났다. 너무나도 당혹스러운 수준의 방 모습에 나는 한참을 방 안을 걸어 다녔고 쉽게 앉지 못했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깔깔거리고 웃고 나서야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침실에 누우면서 갑작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와, 내가 정말 오타와에 와있네. 내일 뭐 하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아있었다.


준비를 하고 문 밖으로 나섰다. 아직 무엇을 할지 정해지 못했지만, 낯선 곳에 와있다는 설렘이 나를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게 만들었다. 캐나다의 수도,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오히려 시골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널찍널찍한 도로, 높지 않은 건물들, 그리고 조용하고 평온한 그런 분위기 속에서 찬찬히 바람이 불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광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한 여성이 굉장히 경쾌한 발걸음으로 나를 스쳐갔다. 어딘가 낯선 복장, 마치 동물원에서 일하는 사람인 것 같은 그런 복장으로 얼굴에 한가득 행복과 설렘을 가지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우리는 눈을 마주쳤고,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어딘가로 급히, 하지만 경쾌하게 걷는 그녀의 발걸음을 바라보며 나도 그쪽으로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길을 건너 광장에 다다르니 빨간색 버스가 눈에 띄었다. 투어 버스 인듯했다. 가까이 다가가니 버스는 보트와 합쳐진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이 버스는 거리를 한 바퀴 돌고는 호수에 점프해 들어가 호수도 한 바퀴 도는 그런 투어였다. 티켓을 구입해 탑승을 기다리고 있을 때, 버스 운전사 할아버지가 쓱 내려와 버스 앞에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나를 쳐다보시더니 버스에 탑승하라고 손짓하셨고, 나는 버스 뒤편으로 움직여 운전석 바로 뒷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핸들 옆에는 할아버지가 키우시는 강아지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강아지와 함께 살았던 순간이 있던 나는 마음이 따뜻해져 왔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우리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는 그 버스에 탑승한 사람들이 친구, 가족, 커플이 함께 있지만 나만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게 마음이 쓰이셨는지, 운전석에 앉으시자마자 나를 한참 곁눈질로 쳐다보셨다. 나는 그 눈빛을 느끼며 환하게 웃어드리고는 오타와 투어에 집중했다. 오타와는 정말 도로가 꽉 막혀있었다. 우리는 한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거리에 붙들려 있었다. 가이드가 영어와 불어를 섞어 사용하며 기다리는 이 순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사람도 워킹 홀리데이를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나는 오타와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과 가을바람, 그리고 살살 흔들리는 나무가 오래된 역사적 건물들, 그리고 반대편에는 현대 건물들로 빼곡한 그런 거리였다. 출근하는 사람들과 관광을 온 사람들이 뚜렷하게 구분되는 것이 재미있었고, 내가 이 도시에 살았다면 나도 이 사람처럼 관광업에 종사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을 때 옆통수로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할아버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할아버지는 씩 웃으시며 사탕을 건네셨다. 먹고 싶지 않았지만 혼자 있는 내가 꽤 많이 신경 쓰이시는 듯해서 받아먹었다. 세상엔 참 따뜻한 사람이 많다.

그렇게 우리가 탄 버스는 다리를 건너 호수로 풍덩 뛰어들었다. 앞에 앉아있다 보니 물속에 풍덩 들어가는 느낌이 더욱 실감이 났다. 역사에 관한 내용을 가이드가 계속 설명해 주었는데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지만, 반짝거리는 호수가 너무 예쁘고 내 눈에 닿는 풍경 하나하나가 너무 아름다워서 더욱 집중할 수가 없었다. 아마 한국말로 했어도 귀에 잘 안 들렸을 것 같았다. 사진에 10분의 1도 담기지 않는 이 아름다운 풍경을 모두 눈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투어가 끝이 났다.

할아버지는 마지막에도 나를 쓱 보시며 미소를 지으시더니 어땠는지 물어보셨다.

"너무 재밌었어요.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이 짧은 투어 시간에 느꼈던 따뜻함을 전하기에는 내 말이 한참 부족했지만, 전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버스에서 내려 근처에 있다는 마켓으로 향하는 길, 꿀벌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늘 오픈했다는 푯말을 들고는 홍보를 하고 있었다. 노란 간판과 귀여운 꿀벌옷을 입은 사람들의 홍보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이렇게 귀엽고 아기자기할 수가!

그렇게 가게로 발을 들이자마자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거리에서 만났던 그 행복해 보이는 발걸음의 동물원 유니폼을 입고 있었던 여자가 이곳에 있었다. 동물원 유니폼이 아니라 양봉하는 사람의 유니폼이었다. 가게 안은 다양한 꿀들과 제품들이 있었다. 몇 개 샘플을 시식하면서 생각보다 '꿀 맛이 이렇게나 다양하고 다르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그녀가 다가와 설명을 시작했다.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아침에 네가 걸어가는 모습을 봤어."

놀라며 되물어보는 그녀에게 나는 다시 말했다.

"요 앞에 신호등에서. 너 행복해 보이던데 오늘 가게를 오픈하게 돼서 행복한 거였구나."

내 대답에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맞아. 오래 준비했거든. 오늘 정말 행복한 날이야."

그때 꿀벌 하나가 가게로 들어왔고 나와 그녀의 주위에서 날아다녔다. 나는 벌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라 온몸이 긴장하고 굳었는데, 그녀는 검지 손가락을 살짝 꿀벌에게 내밀며 말했다.

"바로 이 뒤에 양봉장이 있거든. 거기서 꿀 냄새를 맡고 날아왔나 봐. 괜찮아."

그녀의 편안한 모습을 보니 나도 덩달아 괜찮아졌다.

그곳에서 한참을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양봉장을 오픈하고 가게를 준비하면서 했던 걱정들, 주변 사람들의 응원, 결국 해냈다는 뿌듯함. 꿀 제품을 여러 개 구입하며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너의 이야기, 너에게서 나오는 행복한 에너지, 너무 보기 좋고 만나게 돼서 너무 기뻐. 고마워."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제 왔지만 대부분의 곳을 걸어서 갈 수 있는 위치에 숙소가 있어서였을까, 딱히 지도를 보지 않고도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맥주 한 잔과 치킨 한 마리를 사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크기의 TV 앞에 앉아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 도시에 도착한 첫날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