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허의 일기예보 <바람이 불었어>
바람이 불었어.
화이트 씨의 우산이 바람에 날려
휙 뒤집혀 버렸어.
꼬마 프리실라의 풍선이 바람에 실려
화이트 씨의 우산이랑 같이 높이 떠올랐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어.
모자도 휙 하니 휩쓸려 갔어,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지.
「바람이 불었어」
팻 허친즈 그림 글, 박현철 옮김,
시공주니어(1997)
어제, 수능의 하루가 가고. 영하로 뚝 떨어진 날씨의 기운을 이어받아 비바람이 분다. 겹겹이 쌓인 가을 낙엽들이 촉촉하게 젖은 아침. 가을이 좀 더 머물렀으면 좋겠건만 비 온 뒤 하늘은 왜 그리 싸늘한지.
조금만 손 내밀면 겨울이 와락 끌어당길 것만 같다.
회색 하늘 아래 바람을 맞다 보니 문득 떠오른 「바람이 불었어」. 변덕의 끝을 보여주는 영국 날씨만큼이나 짓궂은 바람의 장난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는 책이다. 화이트 씨의 우산이 뒤집히고, 꼬마 프리실라의 풍선이 날아가고, 남일인 듯 구경만 하던 신랑도 모자가 날아가고...
이 그림책을 볼 때마다 영화 속 한 장면이 생각난다. 결혼식장에 비바람이 휘몰아쳐 드레스가 뒤집히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하객들도 빗물에 홀딱 젖어 생쥐꼴에, 컵케이크 장식도 무너진 데다가 빗물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천막이 찢어져버리는 영화 <어바웃 타임 About Time> 속 문제의 결혼식 장면. 그리고 나의 야외 웨딩도.
초여름이었다. 심상치 않게 우중충한 새벽의 틈이 열리고, 아침을 통과하는 하늘은 온통 먹구름 잔뜩 낀 그레이빛이 전부였다. 웨딩드레스를 입으러 단장하러 가는 길, 예보대로 보슬보슬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축축하고 저음 짙게 깔린 서늘한 기온마저 불안한 신부. 오늘 하루 무사히 잘 지나갈 수 있을까.
예식이 준비된 야외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 표정도 한결같이 걱정이 가득했다. 여기서 비가 더 오려나?! 정말?! 신부 메이크업 속에 가려진 난 그야말로 동공 지진에 나대는 심장 때문에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마음만 조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심장에 콕 , 아니 스크래치를 쫘악 남기는 한마디.
“이러다 아수라장 되면 어쩌노!!!”
불안한 마음을 더 불안하게 요동치게 만드는 말, 하객 맞이에 바쁜 시어머니의 말씀이다.
마지막으로 스태프가 우리 부부에게 묻는다. 예정대로 야외에서 진행할지, 아니면 실내로 옮길지 마지막 찬스란다. 당시 공군에서 복역 중인 나와 나이가 같은(!) 막내 외삼촌의 한마디.
“비 안 와. 걱정 마.”
한 시간 전, 가장 마지막 예보를 확인하고 왔단다.
남편과 나는, 눈빛 사인을 보냈다. 원래대로, 계획한 대로, 우리 갈 길 가기로. 다행히 식을 30여분 정도 앞두고 그림같이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면서 먹구름이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다행히도...!
그림책을 보다가 인생 영화도 떠올리고, 나의 결혼식도 재생하고, 또 하나의 반짝이는 기억을 저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