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마는 외계인 Jul 21. 2024

나의 돌봄 노동 해방 일지-호주편

나는 멜번의 케어러

“내 약 어디 있어?”

“(목청을 한 껏 높여) 방금 전에 드셨잖아요.”

“내가 벌써 먹었다고?”

“(손짓 몸짓을 다 동원하여) 총 11개의 알약을 세 개의 스푼에 나눠 담으시고, 그 중에 한 개를 드셨어요.” 


처음 방문하는 고객은 기대와 불안이 반반 섞이게 마련인데, 치매 고객은 후자가 크다. 치매 고객이 스스로 문을 열어주는 경우는 드물지만, 혹시나 해서 또는 예의상 현관 벽의 벨을 눌렀다. 아무런 응답이 없다. 순간적으로 불안이 엄습하며 망설여졌다. 


‘흠, 이 고객 잡지 말 걸 그랬나?’ 


청각 기능을 거의 상실하신 94세의 치매 할머니 고객. 벨 소리를 듣지 못하면 직접 문을 열고 들어가라며 에이전시에서 알려준열쇠 보관함의 번호를 사용하여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구부정한 자세로 워커(바퀴 네 개 달린 보행 보조기)에 의지해서 서성이시다 막 현관을 들어서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충혈된 눈에 강한 인상이다.

 

“왜 매일 오는 케어러가 아닌 거야? 왜 다른 케어러가 온 거야? 이러면 케어러가 어떻게 알아서 일을 하냐구?” 


같은 말을 무한반복 하신다. 케어러도 사람이고 가정이 있고 더군다나 대부분의 케어러는 가정주부들인데, 어떻게 매일 저녁마다 똑같은 케어러가 올 수 있겠나, 말씀 드리고 싶지만 이런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한 분이라면 애당초 “치매”란 단어를 달지 않았을 테다. 


어느 나라에서 이민을 오신 건지 영어 악센트가 너무 강하고 성격이 급하고 혼자서 화를 뿜어 내시며 한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시기에 그나마 어설픈 영어가 더 알아듣기 어렵다. 속으로는  ‘오늘 두 시간 지원 힘들겠네.’ 생각하지만 난, 프로페셔널한 케어러라 최면을 걸며, 


“에이전시에서 어떤 지원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서 알고 있어요. 먼저 차 한잔 드릴까요?”

“난 안 들려. 니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왜 낯선 케어러를 보낸 거야.” 


휴. 십 여분이 넘게 이러고 계신다. 도대체 대화가 안되니 뭘 해볼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라는 심정으로 차를 드리려고 물을 끓이는데 설탕을 한 스푼 넣으라 하신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부엌을 뒤져도 스푼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다. 불 같은 성정의 할머니는 또 나에게 버럭 화를 내신다. 


“거기 싱크대 서랍에 있는데 왜 못 찾아?” 


나도 이쯤 되면 슬슬 짜증이 올라온다. 내가 앞이 안 보이는 사람도 아닌데 서랍 안에 있는 스푼을 못 찾겠나. 한참 만에 찾았다. 냉장고 위에 스푼과 포크와 나이프가 감춰져 있는 것을. 필시 치매 할머니가 눈에 보이는 족족 숨길 게 뻔하니 다른 케어러들이 손에 안 닿는 곳에 감췄을 게다. 


“내 약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어? 누가 내 약을 주는 거야? 난 약을 어떻게 먹어? 약 복용이 얼마나 중요한데?”

“알고 있어요. 그런데 할머니 케어 플랜에 6시에 약을 드리라고 적혀 있는데 지금이 5시 30분이에요. 조금 있다 드릴게요.” 


이 대꾸를 하고 내가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들리지도 않고 영어도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분에게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이런 경험이 전무한 운 좋은 사람들의 이해를 돕자면, 한국어를 하나도 알지 못하는 프랑스인과 프랑스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통역사 없이 중요한 업무를 해결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답답함?

 

할머니의 약은 철제 금고 깊숙한 곳에 은밀하게 보관되어 있다. 비밀번호를 품고서. 인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할머니가 아무 때나 드실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30분을 이러고 있자니 나도 슬슬 두통이 몰려온다. 가족과의 즐거운 저녁 시간을 포기하고 돈을 벌자고 나오지 말았어야 했나. 두시간 짜리 지원이고 집에서 가까워서 나왔는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그래서,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케어러들에 비장의 권리인 “지원 거부” 카드를 쓰기로 했다.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었다. 일이 안 풀리는 날엔 여러 가지로 겹치는 게 인생사. 하필 에이전시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 다른 날은 따박따박 잘도 받더니만. 어차피 두 시간은 금방 지나가니까. 체념하고 비밀 금고의 문을 열어 웹스터 팩을 가지고 와서 저녁 약을 드렸다. 


할머니는 그 약을 세 개의 스푼에 나눠 담아 각각 5분간의 인터벌을 두고 드신다고 했다. 물론 할머니가 5분을 기억할 리는 없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물을 달라 해서 물을 드리면 왜 찬물이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고, 스푼의 약을 드시고선 내가 잃어버렸다고 역정이시고, 왜 약을 아침-점심-저녁 세번으로 나눠서 주지 않고 저녁에 몰아서 11개를  먹게 하냐고 분노하시고, 호주가 어르신들에 대한 존중이 없다며 호주를 몰인정한 국가로 내몰고, 정치권이 썩었다며 화를 내시더니, 갑자기 물으신다. 

webster pak, 구글 이미지




“넌 자가에 사니?” 


내가 말해도 어차피 알아 듣지도 못하시는데, 인간의 소통 욕구란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꽈리를 틀고 있나 싶다. 치매와 비치매를 가리지 않고서. 저녁 시간이라 배도 고프고 쓰나미처럼 수시로 밀려오는 할머니의 역정에 정신이 혼미해진다. 두 시간 지원이 마치 열 시간 지원처럼 고되다. 아, 파란 만장한 케어러의 직업이여! 끝날 시간이 되어 집에 간다고 하자, 


“오늘 내가 화 많이 내서 미안해. 니 잘못이 아닌데. 그런데 내일 또 올 거야?” 

“아뇨. 제가 아니라 다른 케어러가 올 거에요.” 


수많은 고객을 경험했지만, 이 할머니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캐릭터가 강한 분이다. 생각해 보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캐릭터 중에 대다수가 치매나 알츠하이머 고객이다. 


가정에서 혼자 지내시는 치매 고객은 다른 어르신 고객들에 비해 지원이 까다롭고 지원을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태반인데 가장 큰 어려움은 소통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내 고객들 중에 발달 장애인과 겹치는 부분이 상당하다. 자폐나 지적 장애 고객들이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운 경우, 가령 전혀 언어로 대화가 불가능하거나(non-speaking) 부분적으로 아주 제한적으로 가능한 (partially speaking) 경우, 또는 지능이 낮아서 보편적인 대화를 유지하기 어려운 경우처럼 대화가 수시로 단절되고 엇갈린다. 


어르신들을 돌보는 직업은 나이가 드는 일이 장애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수시로 깨닫는 과정의 연속이다. 예로 신체적으로 기능이 원만하게 작동하지 않는 경우는 신체 장애와 겹치고, 인지 기능을 잃은 치매는 발달장애와 유사하다. 어차피 큰 이변이 없는 한, 나 또한 그 환영 받지 못할 길을 걸어 내 인생에 “영원한 마침표”를 새길 것이다. 그래서 난 그들 곁에서 “돌봄(Care)” 과 “지원(Support)”이란 일을 하기로 결심한 멜번의 케어러다.  


*케어러(Carer): 멜번에서 장애지원사나 요양보호사를 칭하는 용어.

*케어플랜(Care Plan) : 장애나 에이지드 케어 분야에서 고객의 지원에 필요한 정보와 지원의 방법을 상세하게 기록한 문서. 서포트 플랜(support plan)이라고도 함.

*웹스터 팩(Webster Pak) : 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고객들의 약을 약사가 복용 시기(아침-점심-저녁-취침 전)나 요일별로분류 포장해서 주는 패키지를 일컫는 말.  케어러들은 고객이 혼자서 약을 규칙적으로 복용할 수 없을 때, 케어 플랜에 적힌 대로웹스터 팩에서 제 때 정확한 약을 드실 수 있도록 지원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