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 아들이 초등 5학년이 될 때까지 일을 안 했고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경단녀가 되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할 정도의 체력과 건강을 지니지도 못했고, 근면과 성실에 대한 지고 지순한 숭배가 과도한 한국에서 노동자의 과도한 노동 따위에 인정사정 없던 인문계 고에서 일한 탓에 노동에 질렸고, 독박육아를 면할 비빌 언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 아들이 만 5세가 되기 전에 이민까지 왔으니 경단녀는 필연과 같은 것이었다. 태어나고 보니 내 몸에 손발이 달려있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아들이 어느 정도 자라면서 정신을 차리고 보니 가사 도우미와 육아 도우미가 되어 있었다. 좀 듣기 좋게 돌려 말하면 주 업이 케어러인 돌봄 노동자가 되어 있었다. 옆에 사는 남자는 호주에 이민 와서 경력을 쌓고 몸 값을 올리며 이직을 하고, 맘에 맞는 동료가 생기고, 사회생활이란 것을 잘도 하는데 나는 나날이 퇴보하고 있다는 절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성공은 나의 자신감과 비례하지 않았다.
10년의 경력 단절을 겪고 타국에서 다시 일터로 나가려고 결심하자 설레면서도 두려움이 앞섰다. 한국이 학벌과 스펙 위주의 채용을 선호한다면, 호주는 실무 경험 위주와 평판을 중심으로 한 채용을 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호주 같은 이민 국가에서 학벌 타령과 스펙 타령을 한다면 기괴한 일이기도 할 게다. 이민자가 인구의 절반 가량을 차지하는 나라에서 한국의 SKY 출신이 무슨소용이고, 한국에서 유행하는 각종 자격증이 뭔 상관이란 말인가. 호주에서 누군가 학벌과 스펙 타령을 한다면 우리집 세나가 웃을 일이기도 하다. 세나는 우리 집 숯 검댕이 수준의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검은 털의 에너자이저, 래브라도 리트리버 가족이다.
털가족, 세나
결국 오랜 기간의 경단녀이자 이민자들의 첫 구직 활동에서의 절박함이 뭐냐면, 나의 실무 경험을 증명할 자료와 근거가 없고 나의 평판을 전해줄 레퍼런스(호주의 대부분 구직에서는 나를 보증해 줄 레퍼런스가 필요하다)를 구하는 일이 너무 어렵다는 점이다. 이민자의 설움이고 경단녀의 비극이다.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번다.”
이슬아 작가의 발칙 반란 문란의 책, 가녀장의 시대에 나오는 문구처럼 나도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벌기로 작정했다. 10 년 간의 경력 단절을 재해석 하면 10년 간 돌봄을 “지속적이고 열정적이고 일관되게” 해 온 돌봄계의 중견 경력자의 다른 말일 게다. 내가 선 위치에서 나를 중심에 두고 나의 관점에서 세상을 읽기로 작정하니 이력서가 술술 써졌다. 돌봄이라면 자신 있다. 청소, 빨래, 다림질, 가드닝, 바리바리 장바구니를 채워 시장 보기, 정리하기, 우는 아이 달래거나 기다리기, 요리와 베이킹, 운전… 돌봄 분야의 경험이라면 이력서가 끝도 없이 이어질 기세다. 그러니까 경단녀의 다른 이름은 돌봄계의 마스터이다.
아니나 다를까? 막상 돌봄계에 진입하고 나니 여성들 천지다. 나보다 일찍 가장 잘하는 일로 돈을 벌기로 작정한 똑똑이 선배들이 넘친다. 동료 케어러들을 보면 동료 의식이 불끈 불끈 샘솟는다. 남성 고객들도 여성 케어러들을 선호하는 걸 보면, 그들도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나 보다. 우리 여성들의 몸에 철썩 달라 붙은 돌봄 노동의 질은 감히 대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아가 AI 가 쉽게 대체할 수도 없는 직업일 거라고 나는 장담한다. 돌봄의 전성 시대는 이미 도래했다.
“무용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기술과 경험이 모두 유용해지는 마법의 직업”이 케어러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내 생애의 모든 보잘 것 없고 너무나 사소하고 하찮아서 기억도 안 나던 노동과 경험들이 되살아나 돌봄이란 직업으로 집결되는 기분이 든다. 내 인생에 낭비와 게으름과 퇴보가 없었단 토닥임, 돌봄 직업이 준 선물이다.
아들의 기저귀를 갈던 경험은 기저귀를 차는 청소년 고객을 맞을 때 부담감을 낮춘다. 아들의 똥을 치웠던 경험은 어르신 고객들의 변을 처리할 때의 혐오를 낮춘다. 코로나 기술(코로나 락다운 때 고독함을 견디기 위해 누구나 한 개씩 익힌 새로운 기술을 일컫는 말)로 익힌 베이킹은 장애 고객들과 쿠키를 만드는 즐거움을 준다. 심지어 건강 약자여서 자주 아팠던 탓에 건강이 안 좋은 고객이 쏟아내는 짜증 뒤에 숨겨진 당사자의 심정과 고통을 읽어내는 사람이 된다. 세나를 산책시킨 경험은 고객들의 강아지를 산책 시켜주는 일을 즐겁게 수행하는 케어러로 만든다. 내 삶의 경험이 많으면 많을 수록 내가 맡을 수 있는 고객의 다양성이 증가한다.
물론 아직 배우고 익혀야 할 기술들이 많다. 그 중에 하나가 의료적 지원이 필요한 고객들을 위한 기술이다. PEG feeding training, 얼마전 장애 전문 에이전시에서 제공하는 연수에 신청을 했다. 어르신이나 장애인 중에는 입으로 음식을 씹거나 삼킬 수 없어서 위에 튜브를 연결해서 직접 위로 유동식을 주입해야 하는 고객들이 있다. 이 연수 과정을 거쳐 자신감이 생기면 PEG feeding 고객들을 받고 싶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배우고 싶은 의지와 정열, 너, 아직도 내 안에 살아 있구나!
한 지인은 지금도 충분히 고객을 받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공부를 하냐고 묻는다. 그러면 난 이렇게 답한다.
“난 진심으로 돌봄계의 마스터가 되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