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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수업 중에 큐브 사용을 허용해 주세요!

by 루아나

“ADHD는 새로운 유행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애초에 ADHD 뇌들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은 체계 속에서 살아남으려 애쓰는 다른 방식의 뇌일 뿐입니다.” 익명의 한 성인 ADHD



아들은 운이 좋았다. 아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는 신경 다양인 가족과 사는 교사들이 여럿 있었다(아래 참고 1). 전교생이 300여명을 조금 넘는 작은 학교에 자녀들과 본인이 모두 자폐와 ADHD 진단을 받은 당사자 교사, 손자가 자폐와 ADHD 교장, 딸이 자폐인 교사, 아들이 자폐인 교사 등이 근무하고 있었다.


아들이 운이 좋았단 이야기는 단지 아들의 학교에만 유독 신경 다양인 당사자나 가족 출신의 교사들이 많았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면 대부분의 학교에는 신경 다양인 교사나 신경다양인 가족과 사는 교사들은 있지만 대부분은 본인과 가족의 정체성을 몰라서 진단을 받지 않았거나, 알아도 진단을 받지 않았거나, 아니면 진단을 받았어도 공개를 하지 않을 뿐이다. 우리 주변에 신경다양인은 아주 많이 존재한다. 본인이 알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 보통 사람들이 이를 알아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의차이일 뿐이다(아래 참고 2).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은 신경 다양인이 본인이 신경 다양인이란 사실을 모른다고 해서, 진단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신경 전형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내가 자폐나 ADHD 진단을 도와준 한국과 호주의 여러 가정들은 내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공식적으로 자녀나 당사자나 배우자가 신경전형인이었다가 나의 개입으로 신경 다양인으로 변했을 뿐인데, 내가 개입하고 나서 그들이 신경전형인이었다가 신경다양인으로 변한 게 아니라, 애초에 신경 다양인이었으나 아무도 알지 못했을 뿐이다.


아들이 억수로 운이 좋은 이유는 교사들이(심지어는 본인의 정체성을 공개해 주는 자폐당사자 교사까지 있는 학교라니!) 학교의 신경다양인 아이나 그 가족들에게 본인의 또는 가족들의 정체성을 공개해주기 때문이다. 호주에서 이런 교사들은 신경다양성 운동의 흐름을 이해하거나 이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들은 자폐나 ADHD, 난독 같은 신경 발달이 또래들의 발달과는 달라서 다르게 배우고 익히는 아이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이 아이들을 지원하는 법을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내 아이에게 수업 중에 종종 휴식 시간을 허용해 주세요!”

“내 아이에게 수업 중에 종종 큐브를 가지고 놀게 해 주세요!”


아들이 어릴 때 내가 의도적으로 손에 큐브를 쥐어 주었다(아래 참고 3). 첫째 이유는 몸을 움직여야만 집중이 잘되고 불안이 높은 내 아이의 뇌를 생각해서 학교에서도 적용이 가능한 손 장난감(fidget toy)을 찾았다. 여자애들은 보통 테디 인형을 많이 가지고 다니지만, 아들은 인형에는 눈길도 주지 않아서 찾은 품목이었다. 아들이 수업에 집중을 잘할수록 수업활동에 참여를 잘 할 수록 아들의 학교 생활에 만족도가 높아지고 자기 효능감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직업에 대한 전문성이 향상되고 수업이나 생활지도의 부담도 줄어든다.


두번째 이유는 긍정적으로 집중하고 몰두할 흥미를 제공하지 않으면 ADHD 아들은 너무 쉽게 스크린과 게임에 의존했다. ADHD 뇌들은 지루한 순간이나 기다리는 순간들이 너무 괴롭고 끊임없이 자극을 찾아 헤매니까 아들의 건강하고 균형잡힌 스크린이나 게임시간을 가르치기 위해서 엄마는 다양한 긍정적으로 몰두할 거리들을 찾아 나서야 했다.


“네 잘 알겠어요. ADHD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중간에 휴식 시간을 잠깐씩 갖는 일은 좋죠. 그리고 원하면 다른 아이들에게 큐브도 가르쳐 줄 수 있고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다행히 아들 학교의 교사들은 신경다양인 아이들의 뇌에 맞게 환경을 조정하는 방법들을 상당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특수학급이 따로 없이 완전통합을 하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 몇 년만 하면 다양한 지원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을 만나고 그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교실 안에는 다양한 환경조정이 필요한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게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내가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교사 경험에서 얻은 더 좋은 아이디어도 나에게 제공하고, 아들이 수업 중에 큐브를 어떻게 잘 사용하는지, 이 큐브를 매개로 다른 친구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또래 관계를 증진시키는지에 대한 피드백도 제공해 줬다. 가령 20분 정도 수업하고 나서는 5분 정도는 모든 학생들에게 본인들이 좋아하는 방식으로 자유시간을 갖게 하곤 했다. 그래서 아들은 엄마가 뒤에서 교사들과 어떤 물밑 작업을 했는지를 모르고 모든 아이들과 같이 휴식을 취했다. 본인의 "다름"을 다른 급우들 앞에서 드러낼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내가 원한 가장 최선이지만 차마 말로 꺼낼수 없는 부분들을 먼저 이해하는 교사들이었다.


충동성과 활동성이 과다한 호주 로컬 지인의 아들은 ADHD 진단을 받은 후, 학교측과 상의해서 하루에 몇 번씩 교내 복도를 걷다 오거나 행정실에 가서 심부름을 수행하는 것처럼 정해놓고 ADHD 아이의 뇌를 조절해 주고 있다고 했다. 진단받지 않았으나 본인이 ADHD 같다고 말하는 한 대학 교수 지인은 자폐와 ADHD 진단받은 아들의 작업치료사(Occupational Therapist)를 학교로 보내서 수업을 관찰하고 교사와 상의해서 아이를 위해 환경 조정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상의했다고했다.


물론 나도 아들의 작업치료사를 학교로 보내서 아들의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관찰하고 교사와 면담을 진행했다. 아들의 집중도가 어느 수준인지, 수업 중 어떻게 해야 지루한 과제나 활동에 참여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 사회-정서적 학습은 어느수준인지, 또래들과의 관계 맺기는 어떤지, 교사가 어떻게 아들의 학교 생활을 위해 환경을 조정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다. 진심으로 이렇게 손발이 척척 맞는 교사들과 함께 아이를 키우는 일은 신이 난다.


매년 초 나는 아들의 지능 검사 결과지를 담임에게 보내면서 이렇게 첨부한다.


“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저의 아이가 지닌 지능과 재능을 온전히 발휘하고 살기를 바랍니다. 지금 보내 드리는 지능보다 더 높은 결과를 원하는 게 아니라 보통 이만큼의 지능을 가진 또래 아이들의 성취만큼의 결과를 원합니다. 물론 저는 제 아이를 이해하고 지원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교육하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연락을 주십시요. 내 아이가 또래 아이들이나 교사를 귀찮게 하는 아이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제 아이의 뇌에 맞게 조정되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교실환경과 교사들의 수업 방식은 너무나도 신경 전형인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1.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자폐라는 또하나의 세계편 참고

2.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여는 글 참고

3.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 루아나 저, 가면을 벗어 던질 결심 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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