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한국어란 무기가 있다고!
이번엔 도저히 참아지지가 않았다.
아니, 어쩌면 계속 참으면 안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이민자 여성들도 옳고 그름을 판단 할 수 있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루에 사계절이 공존한다는 멜버른에서 오늘 같이 완벽한 날씨를 만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람은 살랑 거렸고, 하늘은 파랬고, 흰 구름은 둥실둥실 떠다녔다.
이런 날은 뭔가 특별한 일을 해야할 것 같아서 고작 택한 딴짓이 하교하는 아들을 걸어가서 픽업하는 것이었다. 차로 가면 7분, 천천히 걸으면 30분 쯤 걸리는 거리다.
모든 게 완벽했다.
보행자 신호를 무시하고 좌회전을 하던 꼰대 호주 운전자를 만나기 전까진.
보행자 신호등이 파랑 불로 바뀌었을 때 걸으면서 핸드폰 시계를 확인했다. 순간 검은 물건 앞에서 본능적으로 멈춰 보니 커다란 SUV 차가 내 코 앞에서 멈춰 있었다.
“운전 좀 똑바로 하세요! 보행자 신호잖아요!”
소리치고 싶었으나, 굳이 영어로 따질 일도 아니고 덩치 큰 호주 남자가 무섭기도 했다. 집에 가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할 게 뻔했다.
무시하고 걸음을 떼는데, 머리가 훌렁 벗겨진 몸 견적이 운전석 의자 밖으로 삐져 나오는 백인 남성이 창문을 내리고는 나에게 소리질렀다.
“길에서 핸드폰 보면서 다니지 말라고!”
순간 심장에서 뜨거운 것이 확 올라왔다. 한국에서부터 오랫동안 응어리져 있던 억울함, 분함, 수치심 등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신호를 무시한 당신 잘못이잖아.”
얼떨결에 맞받아쳤다. 운전자는 내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시아인이 영어를 한다는데 놀란 것인지, 아니면 여자가 감히 남자에게 대드는 것에 흠칫한 것인지 엑셀을 밟았다.
“F@#$%%”
가슴 속이 뻥 뚫렸다. 까스 활명수를 먹고 나면 나오는 트림 같았다.
“너나 눈 똑바로 뜨고 운전해!” 란 말을 하지 못한 게 못내 속상했다.
이것은 비단 멜버른에서만의 불운한 경험은 아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산 기간이 더 길었으니 더 다양한 억울하고 수치스러운 순간은 많았다. 한 여름에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는 내게 굳이 차를 멈추는 수고를 하면서 까지 간섭하는 한국 남자들도 있었다.
“그만 좀 쳐 먹어. 그러니까 살찌지.”
과체중도 아니었고 살이 빠진다 해도 그들과 연애할 생각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집에 와서 베개를 내리치며 온갖 저주와 욕을 해댔을 뿐이다. 어렸고 무서웠고 눈물이 항상 앞섰다.
3년 반 전에 멜버른에 처음 왔을 때 거리로만 나가면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차장에서 후진으로 차를 빼던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청년을 칠 뻔했다. 그 때 청년은 바로 눈알을 굴리며 할아버지에게 따졌다.
“당신 나랑 붙어 보자는 거야?”
할아버지는 당장 사과를 해야했다.
횡단보도 위에 차가 걸치기만 하면 지나가는 행인들이 항의를 하니 운전자들은 횡단보도에서 멀리 정차하는 경우가 흔했다.
남녀노소를 떠나 보행자가 차량에 우선한 처신과 대우를 받는 나라에 살면서 오늘 같은 경험은 두 세번 있었다. 만일 내가 아시아 이민자 여성이 아닌, 건장한 백인 남성이었다면 ‘미안하다’란 말 대신 날 가르치고 훈계하려 했을까?
오늘 내가 만난 남성은 인종주의자인가, 여성 혐오주의자인가, 둘 다 소유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감정을 자제 못하는 다혈질인가.
씩씩거리며 집에 오다 앞집 사는 레베카를 만났다. 나의 하소연을 들은 그녀가 위로했다.
“무시해 버려. 그나마 지금은 많이 좋아졌지. 우리 부모님이 그리스에서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너네 나라로 돌아가 버려!’ 란 말을 수시로 듣고 살았어.”
본인도 억울한 경우 많이 겪었다며 덧붙였다.
“너는 자격을 갖춰 비자를 받아 호주로 들어왔고, 그들 조상 대부분은 범죄자로 이 나라에 이송되어 왔어. 우린 고귀한 영혼의 소유자라고 생각하면 맘이 좀 편해.”
오늘도 난 비슷한 상처를 경험한 또 다른 여성의 위로로 힘을 얻는다.
생각해 보면, 호주란 나라에 원주민 아보리진을 제외하면 모두가 이민자다. 누가 좀 더 빨리 이 나라에 정착했는지가 다를 뿐이다.
이민자로 살면서 서러운 순간은 나와 내 가족의 억울함을 알면서도 정당하게 방어하지 못할 때이다. 첫째 이유는 언어의 장벽이고 둘째는 문화/사회적 장벽인데, 이는 하루 아침에 극복할 수 없는 문제니 나를 비롯한 주변의 이민자들이 알면서도 손해를 감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경험이 자꾸 쌓이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수동적이고 자신감이 결여된다.
밤새 나를 보호하기 위한 <멜버른 꼰대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이제 멜버른 적응 기간은 끝났고, 내 나이 사십 대 중반이다. 존재를 무시당하는 순간에 눈물 먼저 뚝뚝 흘리던 어린 시절은 갔다.
굳이 내가 손해보는 룰에서 싸울 필요가 뭐가 있나. 어차피 그들도 한국어를 이해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당신이 나를 모욕하고 불쾌감을 주는게 목적이라면, 나에게도 한국어 욕과 저주란 질펀한 무기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