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wife's nagging-free holiday
주변 지인들 여럿을 놀라게 하고 출발한 여행이었다.
"크리스마스랑 신정 연휴에 엄마 혼자서 해외 여행이라구?"
"애는 남편이 본대?"
"남편이 허락했어?"
"가족끼리 가야 재밌지."
가족끼리 가야 즐거운 사람도 있고, 혼자 가야 즐거운 인생도 있다.
출산 전에는 모든 게 쉬웠다. 여행지를 고르는 것도 단지 나의 취향 위주로 검색하고, 여행 비용에 맞추면 되는 여행이었다. 준비물도 간소했고, 먹거리, 잘 곳 걱정도 필요없었다. 옷이 필요하면 싼 거 사입고, 대충 저렴이 숙소에서 자고, '남이 먹으면 나도 먹을 수 있다'란 철학으로 여행하던 사람이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해외여행 압박에 매년 뭔가 이벤트를 만들어야 할 거 같았다.
남들 해주는 '다양한 문화 체험과 경험'을 시켜줘야 할 것만 같아서 아들 용품만 바리바리 챙겨 떠난 여행에 '나의 취향' 운운은 쥐구멍에 볕들기 바라는 꼴이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매번 화가 났다. 모두가 만족스럽지 않으니 본전 생각도 나고 아이가 얄미워졌다. 차라리 집에서의 babysitting이 훨씬 수월했다. 특히 의식주가 모두 '까칠/예민 행성'에서 온 아들을 데리고는 갈 만한 곳이 별로 없었고, 어딜 가도 불만 투성이 여행이었다.
8년 동안 아들을 키우며 깨달았다.
여행을 떠난 것도 결국 부모의 욕심이었다고.
아들이 먼저 제안해 본 적 없는 해외 여행들이었다. 아들은 긴 비행과 불편한 음식과 잠자리 대신 호주 내에서의 캠핑과 짧은 여행을 선호했다.
실수 속에서 우리 부부는 '보통은 함께, 가끔은 각자의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엄마가 오랫동안 꿈꾸던 치앙마이부터 시작해 보기로 했다. 다음엔 남편이 언제든 '혼자 여행 몫'을 청구할 수 있고 내가 아들과 둘이 보내면 된다.
치앙마이 행 비행기 티켓과 에어비앤비만 예약해 놓고, 준비없이 날라왔다.
새로운 걸 더하기 위해 온 여행이 아니니, 배고프면 먹고, 심심하면 좀 걷고, 대부분은 카페에 앉아 글을 쓴다. 멜버른의 일상과 크게 달라진 건 없는데, 단지 기상 시간과 아이 픽업시간 알람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자체가 주는 여유가 좋다.
예쁜 카페에서 잘 내려준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왔는데, 한 커플이 인도 한복판에서 언쟁을 벌이고 있다. 엄마는 3살 정도로 보이는 여자 아이가 탄 유모차를 밀고 있고, 옆에는 5-6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가 서 있다. 여자의 잔소리를 듣던 남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는지 몇 백미터를 혼자 걸어가 씩씩거리고 있다. 익숙한 장면들이다. 더워서인지 화나서인지 낯선 남자의 벌개진 얼굴이 남편의 얼굴과 겹치고, 망연자실 서있는 여자가 나로 보이는 착시가 인다.
내 사랑 태국 음식을 배워가려고 쿠킹 클라스에 예약했다.
멜버른에 있는 호주 친구들에게 호언장담을 날렸다. 돌아가는 대로 '쏨땀과 팟타이 파티'를 열어주겠다고.
이탈리아와 미국에서 온 커플이 왜 혼자 왔냐고 물었다.
"모두가 윈윈하는 여행이야. 난 이걸 man-free holiday라 칭하고, 남편은 wife's nagging- free holiday라 불러."
쿠킹 클라스가 끝나고 귀가 길에 미국에서 온 제니퍼가 말했다.
"넌 내 미래 인생의 모범이야."
모범까지는 바라지 않고, 누군가에게 이런 종류의 여행도 있다는 것을 알려 줬으니 만족한다.
여행 패턴과 취향이 다른 가족과 기어이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만 내려 놓으면,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린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