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국가에 따라 차별 받는다

by 루아나

<장애 발병은 계급/부/국가를 구별하지 않고 나타나는데, 당사자에 삶의 질은 국가에 따라 차별 받는다>


“특수 교사는 부모와 함께 투사가 되곤 해요.”
몇년 전 지인인 특수교사 노랑이 한 말이다.

내가 한국에서 근무했던 학교는 보수적인 지역이어서 전교조 교사가 정원의 10%도 안되는 때가 많았다. 근데 이상하게 특수학급 교사는 항상 전교조였다. 난 그게 항상 신기했지만, 알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알 여력도 짬도 없었다.


가끔 내 영어 수업에 아동을 투입시킬 때면, 특수 교사는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했다. 솔직히 내가 미안했다. 그 학생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그냥 방치하고 수업만 했다. 그나마 몇 번 내 수업에 들어오다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아 알아보면, 영어수업에 참여시키면 일반 학생들의 수업을 방해한다는 민원소지가 있어서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어이없는 일이었다.


'절반 정도가 엎드려 자는 수업에 방해라굽쇼??'


내 수업 중 최대 미션이 자는 애들 깨우고, 멍 때리는 애들 집중시키고, 대들고 반항하는 애들 진정시키는 건데, 특수 학급 학생 한명이 더 들어왔다고 뭘 어떻게 더 수업을 방해하나?


법대로 하는 통합교육인데 왜 ‘미안하단’ 말을 하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인문계고 교사로서 하루를 살아 내기도 버거운 나는 더 이상 알고 싶지 않았다.


작년 7월에 한달간 멜버른에 놀러 온 노랑이 말했다.
“너무 부러워요. 우리 아이들도 이런 나라에서 살면 기 좀 살고, 눈치 좀 덜 보며 살텐데요. 교사들도 투사까지는 안 되도 되고요.”


이게 내 입장에서는 얼마나 황당하냐면, 겨우 볼링장에 애들하고 볼링 한 게임 치러 갔다가 노랑이 놀라 한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다리는 레인 앞에는 발달 장애인 청소년들이 단체로 와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야외 활동 보다는 실내 활동을 선호하는 겨울 방학, 점심을 먹고 난 시간이니 예약을 걸지 않으면 게임을 할 수 없는 피크 시간대다.


두 레인을 차지한 그들의 게임이 끝나는 동안 누구도 눈길을 고정시키지도, 그들이 신나서 소리치는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소리들도 누구하나 신경쓰지 않는다. 신발을 갈아 신는 시간이 오래 걸려도 누구 하나 와서 간섭하는 이가 없다.


이게 멜버른 사람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상인데, 노랑의 말은 가슴이 아프다.


“우리 아이들은 볼링장 한번 가려면 사업주에게 미리 전화해서 허락을 받고, 그것도 일반인들이 오기 전에 미리 문을 열어 줘서 게임을 하고 오던지 아주 한가한 시간 배정 받아서 가요.”


일반인들과 분리시키지 않는 교육과 사회, 함께 섞이지 않으면 영원히 배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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