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초록, 노랑...
군데 군데 알록달록한 색상들이 알알이 박혀있다.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 강당에서 열리는 행사에 참여했을 때였다.
머리에 소음 방지용 해드셋을 쓴 여러 명의 학생들이 다른 아이들과 섞여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감각 이슈로 소음에 고통을 받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 측의 배려다.
<발달 장애 분야>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많은 아이들이 감각이슈를 갖고 있어서 사람이 많은 곳이나 소란스러운 곳을 기피한다는 사실쯤은 기본 상식이다.
아들이 다니는 멜버른 공립학교의 교사들은 부모가 아이들을 잘 파악하지 못해도, 굳이 전문가의 진단이 없어도 아이가 대중이 모인 곳을 기피하고 귀를 막으며 괴로워하면 바로 조치를 취해준다. 아동들이 큰 고통없이 다른 아이들과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도와주려는 시도다.
ADHD 진단을 받은 학생 중에는 가방 속에 항상 해드셋을 준비해 갖고 다니는 아이도 있다. 집중을 방해받아 과제에 집중할 수 없을 때나, 혼자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부모나 전문가의 조언에 따른 조치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 교사들이 이런 적극적인 지원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감각이 유별나게 다른 아이들이 존재한다'
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호주의 일반학교에서 초등교사로 몇 년 근무하면 이 정도의 상식은 기본적으로 갖춘다는 뜻이다.
특수학급이 따로 존재하지 않고 온전히 통합교육을 하는 이곳은 한 학년당 ASD(Austic Spectrum Disorder 즉 자폐성장애) 나 지적장애, ADHD 등의 진단을 받은 아이들이 공존한다. 당연히 교사에게는 그 아이들의 독특한 특성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특별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요구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아이들을 한 두해 만나다 보면 자동적으로 발달장애에 대한 이해와 성장이 덤으로 따라오게 되어있다. 해당 학부모가 계속해서 아이에게 요구되는 도움들을 요청해 올 것이고, 아이를 돌보는 전문가(상담사, OT 치료사 등)들이 직접 담임 교사와 소통을 하며 아이에게 필요한 지식과 지원 요령등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일반 교사가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정부가 아동에게 보조교사를 지원한다.
얼마전 한국에서 교직 경력 15년된 지인이 반문했다.
"세상에나, 귀가 아파서 강당에 들어 갈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고요? 우리반 아이가 강당에 갈 때마다 귀를 틀어막으며, 짜증을 내고, 아프다고 하길래 엄살인 줄 알았어요. 아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공부 좀 해야겠어요"
작년 4월에 한국을 잠깐 방문했을때 대형 마트에 들렀다가 화들짝 놀랐다.
한시도 쉬지 않고 흘러 나오는 시끄러운 음악과 마이크에 대고 외치는 각종 떨이 방송들.
'거기 누구 없나요?'
'제발 음악 좀 꺼주세요.'
'마이크에 대고 소리치지 말아주세요.'
<지금 이곳에 있는 누군가는 극심한 공포체험의 현장에서 덜덜덜 떨고 있을지도 몰라요.>
무지는 죄를 낳기 쉽다.
나도 교사를 하는 동안 감각이 유별난 학생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 알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으니, 도움을 줘야 할 순간에 책망과 비난을 쏟아내는 죄를 지었을 터였다.
'지금 아는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수도 없이 되뇌이는 때 늦은 후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