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편견들을 읽어 내는 일

by 루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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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를 읽고, ‘암 걸리겠어.’ 란 말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된다는 걸 배웠다. 암에 걸린 사람 입장에서 들으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말이란 걸 한번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다. 다양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아들을 키우며 힘들 때마다 자조적으로 그 말을 자주 사용했었다. 이제는 이런 표현은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산다.


정희진 님의 책을 읽곤, ‘정희진 선생님처럼 차별 감수성’이 높은 분도 실수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래 전에 읽어서 책 제목도 정확한 워딩도 가물거리지만, 어떤 강연에서 다리가 불편한 참석자에게 일상적인 인사말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말하고서는 얼굴이 화끈거리셨다는 자기 고백이었다.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계속 차별의 표현들을 일삼겠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아무리 공부하고 노력해도 어느 순간 실수를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란 걸 인식하게 됐다. 내 안에 자리잡고 있는 무의식적인 편견과 차별의 말과 행동들을 죽는 순간까지 경계하고 돌아보며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한 정치인이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란 발언을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처음엔 화도 나고 어이도 없었지만,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장애에 대한 편견에 가득찬 무식한 시절이 있었다.


내가 장애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그들의 삶은 존재 자체로 도전의 연속이고, 일상 자체가 의지를 계속해서 불살라야만 살아낼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형인들이 너무 쉽게 얻어내는 것들, 당연하게 배우고 익히는 것들을 이해하고 얻기 위해 그들은 온갖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정형인들이 익숙한 것들과 다르고, 속도가 다르다고 해서 그들의 의지가 약한 것은 아니다.


진짜 제대로 그들의 삶을 이해한다면,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학교에 가서 앉아 있는 자체가, 장애를 지닌 성인들이 일터에 나가는 자체로도 그들은 이미 '챔피언'이란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나도 이 사실을 이해한지가 몇 년 되지 않았다. 수시로 ‘그들을 나의 기준에서 대상화 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의 언행을 점검하며 산다.


'장애인은 의지가 약하다.'라는 문제적 발언을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 사회의 장애에 대한 인식의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는 분명히 장애인을 차별을 하고자 이런 발언을 하진 않았을 테니까.


차별과 혐오와 배제는 항상 그렇게 쉽게 온다. 위로하는 말, 격려하는 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예쁜/착한 말에도 묻어서 온다. 그래서 차별과 편견을 감지하는 일은 때로 너무 어렵다. 이런 부분을 지적하는 사람을 '예민한, 까다로운 사람'쯤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참에 한국 사회에 더 많은 논의가 이뤄지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결국은 사회적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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