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가끔은 아이에게 배운다

by 루아나


멜버른에 살다 보면,

<다름을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

를 학교에 다니는 어린 아이들을 통해 배우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같은 반에 있는 산만하거나 충동적이고, 수업의 맥을 끊는 별난 행동을 하는 친구를 두고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선생님이 그 아이는 일부러 그러는게 아니라고 했어. 그렇게 하고 싶지 않은데, 뇌가 말을 잘 안 들어서 속상하대. 우리가 이해하고 도와줘야 같이 살 수 있다고 했어.”


아침마다 엄마의 손을 잡고 등교를 하는 티나(가명)는 학교에서 가장 예쁜 미소를 지녔고, 낯선 나에게도 불쑥 말을 거는 적극적인 아이다. 타고난 발달 속도에 맞춰 조금 느리게 성장하는 티나는 프렙을 이년간 다녔다. 호주에서는 교사나 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유치원이나 프렙 과정을 2년간 반복하는 경우가 전혀 낯설지 않다.


“아무도 너에게 티나를 좋아하라고 강요하지 않아. 단지 티나의 학교 생활을 존중해 줘. 너도 누군가에게는 잘 맞지 않는 아이일 수 있어”


하교 시간에 아들을 픽업하다 티나와 같은 반 친구인 제임스 엄마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제임스의 눈에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른 티나의 행동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아, 내 친구, 앨리. 저런 멋진 표현을 마구 발사하다니!

준비된 자세, 준비된 대사, 바로 무대에 올라가기만 하면 되는 배우 같다.



제임스를 도덕적으로 훈계하며 면박을 주지도 않고, 다름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라는 단순 명료한 문장. 심지어는 ‘다수의 무리’에 속한 사람도 언제든 타인에게 불편을 줄 수 있는 존재, 즉 권력의 관계가 때와 장소, 그리고 만나는 사람에 따라 시시각각 변할 수 있다는 자각.


‘나는 도대체 뭐하며 살았길래 저런 표현 하나 장착 못하고 살았나?’

싶은 게, 앨리는 집에서 애 셋을 키우는 나보다 한참 젊은 호주 엄마고, 나는 교육을 전공하고 대한민국 공립학교에서 10여년 넘게 일해 온 사람이다.


부끄럽기 짝이 없구나.

몇 달 전 이민 구력이 30여년 되어 간다는 분을 만났다.

“벌써 20여년 전의 일이야. 그 당시 한국 사회엔 ‘ 장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전무할 때였으니 내가 뭘 알았겠어. 그때도 이곳엔 이런 통합교육을 하고 있더라니까. 무지한 엄마를 (멜버른)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가르친 셈이지.”


그녀는 초등 자녀들을 키우는 젊은 후배들에게 말했다.

“이곳의 어울려 사는 교육과 문화가 내 딸을 건강한 성인으로 키운 거 같아서 고마워.”



오늘도 우리 집은 난리법석이다. 3분짜리 숙제 앞에서 매 초마다 딴짓을 하던 아들 앞에서 인내력과 싸우던 엄마가 폭발했다.


“미스 제이슨(담임교사)이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다고 했어. 엄마의 생각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아줘.”


아휴. <앓느니 죽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왔구나. 마음 속으로만 대꾸한다.

‘그래 너 잘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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