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실험만 10여년 째
거칠게 말하면 호주의 모든 학교는 한국의 혁신학교다.
한국은 몇몇 지정된 혁신학교에 교육 예산을 넣어서 실험을 한다.
나는 경기도에 처음으로 혁신학교가 들어서기 시작했을 때 혁신학교에서 근무를 해보고 싶었다. 혁신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경험담을 듣기 위해 연수를 쫓아다녔다.
행정업무를 대폭 감소하고, 매 차시 수업(50분)이 아니라 블럭형 수업(두 차시를 묶는 형태)으로 학생들에게 과제중심으로 수업을 해 볼 수 있는 학교, 학년간/동일과목간/전 교사 간 협의와 소통과 공유가 일어날 수 있는 곳, 단순 지식 전달과 암기가 아닌 과제를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경쟁이 아닌 그룹으로 수업을 이끌어 볼 수 있는 곳.
저런 학교에 가서 근무하면 영어 쓰기 교육도 가능해 보였다. 일반 중고등학교에서 영어 쓰기 교육은 전혀 일어날 수 없는 현실이다. 50분 수업에 진도빼기도 바쁘고, 다른 교사들과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영어 쓰기를 가르치는 일은 교사에게도 버겁고, 한국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쓰기가 입시에 별 도움도 되지 않는다.
결국 방과후 수업에 신청자 몇 명 받아서 에세이 쓰기를 넣어서 가르치는 수준으로 끝나야 했다. 모두가 처음으로 영어 에세이 한편 써 본다며 신기해했다.
나는 혁신학교에서 근무해 보지 못하고 교육계를 떠났다. 경기도로 간다고 해서 혁신학교에 발령이 나는 것도 아니고, 혁신 학교가 계속 유지 될지도 모를 일이고, 그나마도 교장이 바뀌고 교사 구성원이 바뀌면서 본래의 취지를 잃어가는 학교도 많다고 들었다.
그리고 증언하는 교사의 말에 의하면, 너무너무 바빠서 야근이 일상이라고 했다. 보람은 있다고 했다. 바빠도 원하는 일, 교사의 전문성을 살리는 일이라서 행복하다고 했다.
거부감이 들었다.
한국의 교육풍토에서 혁신학교가 갖는 한계라고 생각했다. 혁신학교라면 교사의 업무경감도 혁신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업무경감이 단순한 행정 업무로의 해방(실제로 완전한 해방도 아니고 조금 줄어든 형태였다.)이 아닌 교사의 웰빙에서도 혁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다. 교사를 쥐어짜서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오래 건강하게 유지하기 어렵다.
교사의 웰빙이 학생의 웰빙이다.
호주에 왔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
비행기 타고 하루 왔더니 이런 세상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교육자로서 그토록 염원하던 교육, 한번만이라도 교사란 정체성에 회의가 들지 않게 근무하고 싶다던 열정, 교사가 본연의 일을 하고 싶다는데 하지 못하게 막는 구조 속에서 매일 열패감을 느끼게 하던 교육만 알고 온 사람에겐 너무나 큰 괴리감이었다.
호주에선 아무 학교나 보내도 한국 혁신학교의 기본은 한다.
얼마나 슬픈 일인가. 어떤 나라에선 국민 모두가 자연스럽게 받는 형태의 교육을 나의 모국에서는 낯선 실험을 하겠다고 지정하고 예산을 붓는다. 그 근처에 살지 못하는 학부모는 원해도 보내지도 못한다. 공정과 공평을 좋아하는 한국 사람들이 왜 이 부분에서는 인자한 걸까? 혁신학교 시작한지가 벌써 몇 년째인가?
아직도 존재하는 걸 보면, 기본적으로 만족하는 수요층이 있는게 틀림없다. 이젠 이런 실험을 하지 말고 초등학교라도 전체를 혁신학교로 만들면 어떤가? 그리고 이제 '혁신'이란 단어를 빼자. 10여년 동안 해온 일을 아직도 '혁신'이라 붙이기는 낯간지럽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