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은 나의 몫
"아, 이 어려운 걸 해내는 구나."
오늘 아이 가정학습 지도하다 온 가족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아이 학교 3-4학년 교사들 4명이 모여 역할극까지 해서 동영상 수업 자료를 올렸다.
이것은, 교사를 해본 사람이라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하지 않아도 안다. 더군다나 초등 저학년 온라인 가정학습 자료면 모든 학부모들에게도 공개다.
대단한 열정이고 전문성이다.
본인의 수업에 대한 자신감, 수업내용에 대한 확신,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 동료간의 팀웍이 없이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인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이번 텀 "설득하는 글쓰기"의 교재, <크레용이 화났어, The day the crayons quit.>
교과서가 없는 대신 이들에겐 도서관 전체가 교재다. 책만 쌓여있고 인적 드문 한국 학교 도서관과 달리 이곳 도서관은 매일 북적댄다. 아이들을 떠나 교사들이 학습 자료를 찾기 위해 수시로 이용을 해야하고, 모든 학급에 일주일에 30분씩 도서관 수업이 배정된다. 교사가 책도 읽어주고, 친구들끼리 좋아하는 책을 읽어주기도 하면서 일주일간 읽고 싶은 책을 빌려오는 시간이다.
크레용이 화났어! 이 책은 등장하는 다양한 색상의 크레용들이 불평불만을 얘기하는 책이다. 흰색은 역할이 별로 없다고 투덜대고, 빨강은 크리스마스 연휴에도 일을 해야해서 너무 바쁘다고 항의하는 내용이다.
이 책을 선두로 설득하는 글쓰기를 위한 다양한 활동들이 온라인 수업 3주차가 되도록 이어지고다.
교육과정의 기본 원리인 "확장과 심화"의 교과서적 모델이다. 4학년, 5학년, 6학년이 되어서도 이런 글쓰기를 계속 가르칠 테니 '확장과 심화'가 한텀 안에서만이 아니라, 초등 전체를 통해 일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일어나는 셈이다. 그뿐만인가. 읽기도 쓰기와 연관지어 non-fiction 장르다. 문법은 매력적인 문장만들기와 문장부호 훈련을 함께 교육한다. holistic/integrated (전인적이고 통합적인)교육의 절정체다.
오늘 교사들의 역할극은 '크레용이 화났어'를 응용한
"의자들이 화났어!"이다.
아이들이 의자를 흔들고, 함부로 대하고, 교사들은 밟고 올라가 벽에 포스터를 붙이고....적절한 대우를 받지도 못하고 과로로 지친 의자들이 결국 파업을 선언한 것이다.
과제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 학교에 돌아갔을 때 의자들이 돌아오도록 설득을 해야만 한다.
브레인 스토밍으로 의자를 설득하는 다양한 이유들을 생각해서 제출한 다음, 다음 차시에서 한 가지 이유를 선택해 문장을 확장시키고 매력적인 문장으로 다듬는 연습을 할 것이다.
이 모든 수업은 구글 슬라이드와 슬라이드 안에 삽입된 동영상으로 이뤄진다. 아이들이 수행한 과제를 바로 사진을 찍어 구글 슬라이드 안에 삽입시키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 온라인 수업을 듣다 보면 매일 한가지씩 컴퓨터 활용 능력을 자동으로 배우게 된다.
"배울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수준에 맞게 재구성해서 가르치고, 더 긴 시간을 주며 반복하면 배운다."
내가 배우고 있는 보조교사 자격증 과정에서 학생을 대하는 자세로 매일 귀에 딱지가 들어앉게 듣는 원리다.
호주의 한 텀은 보통 10주로 구성되고 일년은 4텀이다.
이번 텀 교사들이 올려주는 수업 자료와 동영상을 고스란히 모으면 훌륭한 교육자료다. 대한 민국 교실에 그대로 갖다 넣어도 쓰기와 읽기 교수활동 자료로 활용가능하다.
나는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이 궁금하다.
공교육 안에서의 온라인 원격수업, 전세계가 시행하고 있는 새로운 실험이 끝난 후 교육계에 어떤 변화를 불러 올지 기대가 된다.
중등이 된 아이가 수학이나 과학에 빠져 있다고 상상해본다.
학교의 수업만으로 아이의 지적 호기심과 열정을 채울 수 없는 순간, 하버드의 유명한 석학이 청소년을 위한 수학 강의를 온라인으로 한다면?
아이가 엔지니어링을 좋아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깊게 공부하고 싶어한다.
마크 주커버그가 IT 분야의 창업에 대한 온라인 강의를 연다면?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다보면, 호주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란 걸 안다.
오늘 아이 책상을 정리하다 2월 초 교사가 나눠준 일년간의 큼직한 행사나 교육활동에 대한 안내문을 보았다.
그 중 하나가 "구글드라이브 활용 배우기"이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무관하게 컴퓨터 활용을 교육과 접목시키는 교육 목표가 이미 설계되어 있던 것이다.
"교사들이여, 다 계획이 있었구나!"
대한민국 교사로서 한번도 목격하지도 실천해보지도 못하고 꿈만 꿨던 수업, 아.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