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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혜경 Jul 11. 2024

아빠와 S오빠와 머리방울

복도식아파트에서 만나다. 

저녁 메뉴는 보통 생선이 많았어요. 고등어 삼치 갈치 같은 것들이 구워지고 김치나 나물도 많았어요. 어릴 때 소시지가 먹고 싶은데 잘해주시지 않으셨죠.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처음 먹어본 비엔나소시지는 충격적인 맛이었어요. 케첩의 달콤하고 짭조름한 맛도 강렬했고요. 심심한 나물의 마시나 고등어의 짠맛과는 다른 이국적인 맛이랄까. 이국적이란 말을 몰랐지만 어쩐지 그런 맛으로 느껴졌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빨리 드시는 편이기 때문에 엄마가 식구들 밥을 다 퍼주고 돌아서서 자리에 앉으면 이미 절반 정도는 다 드신 후였죠. 엄마는 아빠가 기다렸다가 같이 먹지 않는다고 서운해했지만, 식습관이 그런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그리곤 담배를 피우시러 밖으로 나가셨기 때문에 의자를 하나 덜 펴도 될뻔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렇게 식사가 끝나고 나면 다시 의자를 접어 한쪽 벽에 세워 두고 물병을 벽 쪽으로 밀어두면 제 할 일은 끝이 났어요. 저녁 풍경은 늘 같았어요. 매일 메뉴만 조금씩 달라졌을 뿐이었죠.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은 의자를 세 개만 펼쳐도 되니 식탁이 어찌나 넓어 보이던지요. 천천히 먹어도 되고요. 옆 사람이 급하게 먹으면 같이 불안해지잖아요. 속도 맞춰야 할 것 같고. 그러지 않아도 되니까 참 좋았어요. 그렇다고 아버지와 함께했던 저녁 식사가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에요. 엄마와 달리 아버지는 항상 음악에 관해 얘기하셨고 지금 읽고 있는 책에 관한 얘기도 많이 해주셨어요. 타고난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말씀도 잘하셨지요. 아버지 얘기에 빠져 듣다가 숟가락을 놓친 적도 많아요. 그러면 엄마는 다른 숟가락을 주셨고 저는 다시 밥을 먹었어요. 그런 저녁 식사를 다시 해보고 싶네요. 4인용 식탁에 앉아 접이식 의자를 차례대로 펴고 생선 가시를 발라내는 저녁 식사요.      


아빠는 은행에 다니셨는데 어릴 적에 살던 아파트는 옆집도 아빠 동료 윗집도 아빠 동료 아랫집도 아빠 동료가 사는 그런 아파트였다. 복도식으로 여러 집이 한 복도에 주르륵 있었는데 우리 집은 제일 끝에 있었다. 우리 집을 포함해 모든 집이 여름이고 겨울이고 현관문이 항상 열려 있었고 저녁이 되어서야 닫혔다. 가끔 여행을 가거나 명절 때 며칠씩 닫혀있는 현관문을 보면 이상하게 여겨질 정도였다. 옆집에 사는 가족과 특히 친하게 지냈는데 옆집이어서 그런 것도 같고 자녀의 나이가 모두 같아서인 것도 같다. 옆집의 오빠는 우리 오빠와 다르게 매우 잘 생겼고 그 동생은 나와는 다르게 큰 눈에 가녀린 몸을 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우리와 달랐지만, 옆집 오빠는 특히 달랐다. 항상 오른손 검지손가락을 펼치고 있었고 얼굴은 늘 웃는 얼굴이었다. 허공을 보면서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에 대답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지하철 1호선 역을 몽땅 외우거나 동생 이름을 부르면서 예쁘다고 하고 오빠 이름을 부르면서 똑똑하다고 했다. 내 이름을 부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간 서운했지만,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주 짧았기 때문에 길게 서운함을 느끼지 못했다. 계속해서 말을 하고는 있지만, 누구를 향한 말인지 몰랐고 대답이 필요한 말도 아니었다. 그저 우리는 듣다가 웃기도 하고 듣다가 그냥 집으로 오기도 하고 그랬다. 어느 날 오빠가 내 이름을 불렀다.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그날은 왜인지 모르게 피곤해서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가면서 우리 집은 왜 끝에 있을까. 멀다. 하면서 가고 있었다. 갑자기 집에서 불쑥 나오더니 내 이름을 불러 놀랐다. 응 오빠. 안녕. H야. H야. 이거. 응 뭐야. 아주 귀엽고 예쁜 동그란 구슬이 달린 머리끈이었다. 이거 가져. 예뻐. 너 머리. 내 머리에 묶으라는 건가. 내 머리는 짧은데. 그때 머리끝에 껌이 붙는 바람에 오빠랑 똑같은 길이의 쇼트커트를 하고 다녀서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을 무렵이었다. 그런 기분을 알기라도 하는 듯 위로의 예쁜 머리 방울을 준 것 같은데 고맙다고 해야겠다. 생각하는 사이 오빠는 엘리베이터 쪽 계단으로 이미 뛰어가고 없었다. 이쁘네. 당장 머리를 묶을 수는 없었지만, 머리카락은 자라겠지. 그때 하지 뭐. 우리 집 현관도 열려 있었는데 엄마는 없었고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데 문이 열려 있어도 되나. 싶었지만 너무나 피곤했던 나는 양말을 벗지도 않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양말을 벗지 않고 이불에 들어가면 안 된다고 했는데. 생각이 들었지만, 양말을 벗을 만큼의 힘도 없었다. 이내 스르르 눈이 감기고 잠이 들고 말았다. 방울을 손에 쥐고.    

  

어느 날 티브이에서 지하철역 이름을 외우는 개그맨을 보았다. 그때 그 옆집 오빠가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S 오빠 말이야. 그 오빠 지금 어디 사는지 엄마 알아? 아 S 엄마? 그 동네 아직 살지. 그 아파트는 아니지만. 그래? 그 아줌마랑 아직 연락하고 지내는 거야? 그럼. 얘. S 요즘에 돈 번다. 그래? 나는 아직 아르바이트도 구하지 못하는 신세라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 뭐 어떤 일 하는데? 왜 우리 서류 보낼 때 봉투 있잖아. 그거. 얼마나 잘 만드는지. 참 지난주에 나 찾아왔었다. S 오빠가? 엄마를? 왜? 몰라 생각이 났는지 전화를 해서 한참 또 지하철역을 막 얘기하길래 우리 집 올 거니? 했더니 응. 그러길래 알려줬지. 그랬더니 그다음 날 찾아왔더라. 진짜? 그래. 그 봉투 들고. 그래서 알지. 너도 줄까? 아. 아니. 근데 그 오빠 지금 어떻게 잘 살아? 얘. 연애도 하고 일도 하고 돈도 많이 모았다고 하더라. 너보다 낫…. 아니 근데 왜 갑자기 S 얘기는 묻는 거야? 아니 티브이 보다가 오빠 생각나서. 근데 S가 한참 앉아 있다가 울고 갔다. 왜 울어? 우리 집이 가난해졌다는 걸 알았나 봐. 어떻게 알았대? 집에 와보면 알지 뭐. 좁은 방 두 개에 거실이라곤 둘이 앉으면 꽉 차는데. 자기도 알겠지. 그 아파트보다 좋은 집이 아니라는 걸. 아빠가 은행을 그만두시게 되고 이런저런 사업이 잘 안 되면서 우리 집도 크기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나도 친구 집에 얹혀살게 되었고 오빠도 숙식 공간을 마련해 주는 어떤 기관에서 연구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 모두가 아주 간신히 살아가고 있었다. S가 우는 것을 보니 나도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둘이서 주스 마시다 한참 울었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끊어봐. 엄마 나간다. 으응. S 오빠는 왜 뜬금없이 찾아와서는 엄마랑 주스를 마시고 울었을까. 감정이 없이 매일 웃고 손가락을 들고 다니는 줄 알았는데. 오빠의 눈물이라니. 아. 맞다. 편견을 버리라고 했지. P는 나만 보면 편견 덩어리라고 핀잔을 주며 제발 편견 없이 살라고 충고한다. 자기는 뭐 편견 없나. 입을 삐죽 댔지만 나는 안다. 편견 덩어리가 맞는 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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