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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의 재구성(1)

내가 굴복한 여성들에게

by 재jae

고백하건대, 내가 늘 사랑받고 싶었던 대상은 여성이었다. 내가 이성애자 시스젠더 여성이었 음에도 그랬다. 그러나 내가 사랑받길 원하는 여성들은 대개 나를 싫어했고, 그것이 나를 더 집착적으로 만들었다. 나를 왜 싫어해? 나를 좋아해. 좋아하라고. 나를 인정하란 말이야. 그 미친 욕구와 결핍 속에서 그녀들은 점점 멀어졌다. 말하자면, 이건 구애의 역사이자, 처절한 항복의 서사이기도 하다.


*


그녀는 6학년 담임 선생님이었다. 삼십대 초반, 단정한 단발머리에 근엄한 표정을 했던, 예 쁜 여자 선생님. 학기 초가 되면 나는 늘 조용한 ‘인정 투쟁’을 시작했다. 숙제를 빠짐없이 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발표를 잘하며, 선생님이 시키는 건 절대 까먹지 않는 것. 그 작은 노력들이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때 성적으로 소급되면 게임 셋. 선생님들은 그렇게 맥 없이 모두 나의 편이 되었다. 초등학교 내내 이 공략법은 단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었다.


“주혜원, 입 내밀지 마.”


그때 나는, 배식 당번에게 ‘미역줄거리를 주지 말라’고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굳은 얼굴로 미역줄거리를 주먹만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 지만, 모두가 나만 쳐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입을 내미는 게 왜.. 그렇게 모두의 앞에서 지적 당할 만큼 큰 문제였나? 억울했다. 내가 성실히 쌓아왔던 공부를 잘하고 착하고 성실한, 그 모든 수식어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그녀를 저주하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그 녀는 너무나 멋진 여성이었다. 무엇보다 얼굴이 예쁘며 키가 컸고, 성적으로 아이들을 차별 하지도 않았다.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나를 예뻐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녀가 성적으로 아이들 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었고, 바로 그것이 더 그녀에게 반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시골의 어린이들은 입학 때부터 대부분의 자리가 정해졌고, 1학년 때 정해진 그 위치는 6학 년 졸업생이 될 때까지 전복되지 않는다. 외모, 성적, 재능 모든 것이 그렇다. 한 학년에 100명이 채 되지 않는 아이들은, 반전을 꿈꾸기 어려웠다. 1학년 때 반장을 했던 아이들이 그대로 6학년 반장을 했다. 서열은 그렇게 반복적으로 세습되었다. 나 또한 그런 세습의 특 혜를 받은 아이었고, 때문에 6년 동안 반장-부반장의 간헐적 보직들을 거쳐오기도 했다. 그러나 6학년 때는 신체와 정신을 강타한 사춘기 덕분에 나대는 것을 가장 혐오하게 되었고, 그래서 반장으로 추천되었지만 스스로 그 직을 포기하기도 했다. 어차피 그런 보직들이 없어도, 선생님이 나를 알아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성가신 보직들을 내려놓는 편이 더 멋진 선택이라 믿었다. 작은 학교였기 때문에, 이미 쌓여진 과거의 평판이 빠르게 그들(선생님)에게 전달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시골 학교에 새로 부임한 선생님이었고, 불행하게도 그 이전에 있었던 업적 들을 소급적용 시키지 않았다. 그녀는 모든 판을 새로 짰다. 모든 포지션 에는 1학년 때부터 그들이 쌓아올린 작고 단단한 명성이 있었다. 게으른 선생님들은 신인을 발굴할 의지 없이, 이미 나온 답을 그대로 답습하곤 했다. 그런 까닭에 학교에서 열리는 백 일장이나 사생대회, 체육대회에서 추천되는 아이들은 철밥통들이었다. 그들이 재능을 더 발 전시킬 필요없이 매년 같은 자리에 소환되었다. 그 역사를 짓밟고 그녀는 모든 자리에 새로운 이름을 발굴해 넣었다. 말하자면 재능계의 신-구교체가 일어난 것이었다. 성적도 마찬가지였다. 답이 틀려도 창의적으로 접근하거나, 문제를 해석하는 관점이 새로우면 그녀는 아낌 없이 박수를 쳐줬고, 반 아이들에게 이 어린이가 성취한 것이 무엇인지 그녀의 권위를 통해 낱낱이 증명되도록 했다.


그건 담임이 진두지휘하는 초등학교 교실의 특성상 엄청난 영향력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식 속에서도 작고 큰 개혁이 일어나는 듯 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거기에 척결 1순위로 이름을 올린 아이였다. 나는 성실했지만, 창의적이지 못했고, 어른들 앞에서 예의바르게 굴었지만, 같은 학급반 아이들을 무시하곤 했다.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입을 내밀었고, 아이들을 얼어붙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런 기류를 선 생님이 눈치챘을까봐 불안해했다.


그녀에게 미치도록 잘보이고 싶었다. 그녀는 내가 만난 선생님들 중에 가장 시시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으로 들은 말이 ‘입 내밀지마’라니. 세상이 내게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왜 나를 인정해주지 않지? 그날 이후, 노력해도 끝내 마음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를 물러서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필사적으로 그녀의 사랑을 얻고 싶어졌던 것이다.


다른 선생님들이 모두 상찬했던 내 글도 그녀에게는 먹히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너무 “꾸며낸” 이야기를 쓴다고 했다. 그녀는 문학 전공이었고, 아주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학교에 부임된 것이었다. 그것을 안 이후로는 더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러나 좀처럼 쉽지 않았다. 내가 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녀는 나를 더 싫어하는 듯 했다. 간헐적으로 ‘이번에는 좀 괜찮네?’하는 말을 들으면, 내멋대로 어떤 희망을 발견하고는 집에 돌아오는 길 내내 껑충껑충 뛰어다녔다.


나는 단지, 잃어버린 내 명성을 되찾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했지만, 이제와 돌이켜보면 그건 분명한 구애였다. 내가 선택한 여성에게 사랑받고 싶은 욕망.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녀들은 더 대단해야 했고, 어쩌면 그 굴레에서 그녀들의 사랑을 더 갈망해왔는지도 몰랐다. 때로는 그녀들이 나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 사실 자체가 그 대단함의 증거이기도 했다.


이게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구애다. 그것도 여성을 향한 강렬한 욕망. 여성에게 구애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웠고, 어려웠기 때문에 더 간절했다. 왜 멋진 여성들은 나의 구린 부분들을 더 빨리 알아채는 걸까. 숨기려 할수록 그것들이 더 진하게 번져나와 결국 항복해야 했다. 차라리 납작 엎드려 빌고 싶었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나를 인정해달라고, 곁에 있게 해달라고. 그런 무너진 마음으로 그녀들에게 구애했다. 어쩌면 지금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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