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슥슥 Mar 11. 2023

계속 들여다보고 싶은 민낯

모닝페이지, 쓰다보니 어느새 200일. 




모닝 페이지를 쓴 지 200일이 훌쩍 지났다. 여기서 모닝 페이지일어나자마자 의식의 흐름대로 세 페이지 정도의 글쓰기를 하는 것이다. 사실 약간 부담스러운 행위다. 눈을 뜨기도 버거운데 이른 아침부터 굳이 책상으로 가 무려 글쓰기를 하는 일은 아무리 봐도 일반적이지는 않으니 말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비몽사몽 실눈을 뜨고 빈 노트에 날짜를 적을 때면 속에서 이런 문장이 튀어나오곤 했다. 


나 왜 이러고 있는 거지.....?  






다행히 이런 외침은 시간이 지날수록 옅어졌다. 여전히 만만치 않은 오전 루틴이긴 하지만 처음보다는 마음의 부담이 확실히 줄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우선, 쓰기 분량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줄인 덕분이다. 손으로 쓰고 있어 한 페이지를 채우는데도 족히 삼십 분은 걸리던 터라 세 쪽을 매일 쓰다간 유지 자체가 힘들게 뻔했다. 그리하여 여러 시행착오 끝에 스스로 타협한 분량은 A4 크기 노트의 한 페이지. 지속할 수 있는 적정선을 몰랐다면 분명 한 달도 유지하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다.     






모닝페이지가 ‘비공개 글쓰기’라는 점도 부담을 줄이는 데 한몫했다. 정말이지 의식의 흐름대로 써나갔다. 소재도, 문맥도, 독자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글쓰기였다. 거의 ‘낙서’에 가까웠다. 손이 조금 아프긴 해도 쓰기 위해 머리를 쥐어뜯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썼다. 다만, 딱 한 가지. 쓰면서도 이 질문만은 지울 수 없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효과가 있을까? 




책 <아티스트 웨이>에서 모닝페이지를 처음 제안한 저자 줄리아 카메론은 이 제약 없는 글쓰기에 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모닝 페이지는 일종의 명상하기이다. 그러나 당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명상훈련과는 다르다. (...) 모닝 페이지는 우리의 내부를 그려낸다. 모닝 페이지를 씀으로써 통찰력의 빛은 변화의 힘과 하나가 된다. 그렇게 되면 상황에 불평만 하기보다는 건설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모닝 페이지는 우리를 절망에서 벗어나게 하고,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해결책으로 안내해 준다.      



결국 요약하면, 오전에 하는 막무가내 글쓰기가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고 생활을 바꿀 수 있게 도와준다는 것이다. 메시지가 제법 희망적이다. 그렇게 그녀의 설득에 단번에 매료되어 무작정 아침 낙서를 시작한 지 어느덧 200여 일이 지났다. 그녀의 말대로 정말 모닝페이지가 나를 해결책으로 안내해주었을까?









 

뻔하고 흔한데

읽고 싶은 낙서

잠이 아직 덜 깬 채로 쓸 폼부터 잡고 있다 보면 가장 흔하게 떠오르는 건 간밤에 꾼 꿈이다. 막무가내로 그 내용을 옮겨 적은 뒤엔 슬며시 어제의 일로 의식의 초점이 이동한다. 그간 쓴 모닝페이지를 살펴보면 거의 이 순서다. 뻔하고 흔한 레퍼토리. 문맥도, 글씨도 엉망이다. 그런데도 종종 지난 글을 읽는다. 아니 염치없이 자주 읽고 싶어진다. 이상한 말이지만, 거기엔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민낯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김에 한 번 비교해 보았다. 막 시작한 무렵에 쓴 모닝페이지와 최근에 쓴 노트를 동시에 펼친 것이다. 상념이 두서없이 나열되었다는 점은 비슷해도 가만 보면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작년 4월의 기록이 거의 푸념과 넋두리였던데 반해, 올해 3월은 ‘다짐’과 ‘격려’의 문장이 제법 늘어나 있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여기서 (뻔뻔하게) 환골탈태를 인증하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나의 스프링 노트에는 하소연과 헛소리가 가득하다. 그럼에도 글의 봉합 방식이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는 점만큼은 분명히 느낀다. 반추보다는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말이다.   





아마 이건 ‘기록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말로 하는 불평은 금세 사라지지만, 글로 하는 불평은 고스란히 남으니까. 오전에 토해낸 낙서는 없어지지 않고 거울처럼 나를 비추므로 겸연쩍은 마음이란 게 있다면 하소연만 써놓는 자신을 계속 보고 싶지는 않겠지. 그러고 보면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노트를 펼치게 되는 것 같다. 보고 싶지 않던 마음의 안쪽을 직면하면 어떤 실마리를 얻는 기분이라서.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문장은 곧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니까. 뭐든 '보여야' 매무새를 다듬을 수 있는 법. 결국, 나에게 모닝 페이지는 내면의 푸석한 민낯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오늘도 어제의 낙서를 흘깃 둘러보았다. 그곳엔 브런치 글쓰기에 진전이 없어 괴로워하는 내가 있었다. '부자연스럽다', '괴롭다', '머리가 하얘진다', '배회하고 말았다' 등 여느 때처럼 푸념의 동사가 즐비했다. 그런데도 그 찡그린 문장들 사이에서도 한 대목이 눈에 띈다.

멈추고 싶고, 다시 뒤엎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그럼에도 꾸역꾸역 해보는 이유는 하나이다. 이 글이 다음 쓸 글의 연결점이 될 거라 믿고 있기 때문에. 

어제 오전을 떠올리면 수면 부족으로 해롱대던 기억만 나는데, 용케도 꽤나 건전한 생각을 남겨 놓았다.

하. 이쯤 되니 아무래도 줄리아 카메론에게 이 말을 해야 할 것만 같다. 







당신, 거짓말이 아니었구나. 
작가의 이전글 고명환 님처럼 읽을 수 있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