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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Mar 21. 2023

어쩌면 한 묶음인지도 모르겠다


감사와 반성은 어쩌면 한 묶음인지도 모르겠다. 본가만 다녀오면 두 가지 감정이 늘 동시에 드니 말이다. 오늘도 그랬다. 엄마가 챙겨준 반찬과 옷들을 꺼내놓으며 참 복잡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  원을 마치고 본가에 가니 식탁 위 갓 지은 밥과 소담히 담긴 밑반찬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 충분할 것 같은데 엄마는 뒤돌아 선 채 부추전을 굽고 있었다. 주방은 음식 냄새가 가득했다. 자취 집에서 때우려고 '늘어놓은' 음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감지덕지 먹다 문득 엄마의 입술에 시선이 갔다. 오른쪽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모두 포진이 생긴 게 보였다. 피로를 알리는 신호였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어제도 결혼식에 다녀와 나와 조금 대화를 나눈 후 서둘러 저녁 준비에 나섰었다.   

아마 오늘도 자격증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가족들의 저녁 식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집이란 공간은 무엇이든 마치고 돌아오는 곳인데, 한 사람에겐 해야 할 일이 항상 남아있는 셈이었다.  



  

저녁을 먹고 반찬을 집어넣으며 맛있다고 연거푸 말했지만 촉촉한 입술로 전하는 감사가 어쩐지 깃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가벼워서 엄마의 거친 입술 위엔 스미지 못하는 것 같아서다.      

본가에서 가져온 반찬을 냉장고에 넣으면서도 혹시나 샐까 봐 비닐에 꽁꽁 싸매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뭐 더 줄게 없나 냉장고를 다시 샅샅이 살펴보던 모습까지도.      

국거리용 황태나 방금 한 밥까지 챙겨주려는 걸 겨우 거부하자 엄마는 대뜸 어제 산 옷 두 벌을 내게 쥐어주었다. 너무 어린 스타일이라 너에게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왜 그 순간 며칠 전의 내가 떠올랐을까. 우울과 무력감에 취해 일기장에 삐뚠 단어만 남겨놓던 모습 말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를 못마땅해하는데 온갖 애를 쓰는 모습이 새삼 부끄러웠다.       

관심의 시선이 외부가 아니라 늘 나 자신에 국한되어 있다는 점이 오늘따라 유독 창피했다. 한 사람으로부터 아낌없는 사랑과 돌봄을 받았으면서 그건 까맣게 잊고 늘 결핍감에 시달렸다는 의미일테니까.





아무래도  자라지 않는 이상,

감사와 반성을 떼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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