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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Jul 15. 2023

마침표에 해방감만 있을 리 없다





오늘로써 정말 끝이 났다. 3월 초부터 수강한 출판 편집 디자인 과정이 끝이 난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이 되면 여느 때처럼 백팩을 메고 종로를 향해야 할 것 같은데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상하다. 4개월의 기간이 녹록지 않았기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 해방감만 느낄 거라 기대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생각보다 더 묘하고 복잡한 심정이 들어서다. 아마 이런 감정이 든 데에는 오늘 받은 묵직한 선물 때문일지도 모른다.  




1. 

펼쳐두고 바라보니 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수강생 모두가 함께 공유한 롤링페이퍼와 자신이 직접 그린 캐릭터로 제작한 스티커들이 식탁 위에 가득하다. 받은 선물의 무게는 가볍지만 여기에 동봉된 다정함만큼은 꽤 묵직하다.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나 같은 사람은 결코 생각할 수 없는 마음이라 신기해하면서 더 오래 바라보게 된다. 



손바닥 사이즈의 스티커 시트 한 장을 만들려면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할까. 친절한 옆자리 짝꿍이 말했다. 일단 원하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어야 하고, 제작 의뢰할 업체가 정한 종이 사이즈에 맞춰 캐릭터 이미지를 일러스트로 '몸소' 배치해야 하며, 제작된 커다란 시트를 받은 후 알맞은 크기로 '손수' 재단까지 해야 한다고. 내 손에 주어진 작은 종이들은 그렇게 탄생한 것이었다. 자신이 들인 시간과 공을 대가 바라지 않고 무작정 나누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토록 오밀조밀한 다정함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2. 

롤링 페이지가 채워지는 과정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누군가 롤링페이퍼란 아이디어를 낸 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편지 쓰기 시간이었는데, 비어있던 흰 종이가 장문의 글로 금세 채워지는 모습이 놀라웠다. 팔은 좀 아팠지만 덕분에 나도 홀로 품고 있던 속내를 여러 사람에게 고백할 수 있었다. 그런 내 편지에 진심 어린 답장과 눈물로 화답하는 이들이 나타나 막판에 또다시 뭉클하기도 했다.


역시 마지막이란... 용기와 진심이 넘실대는 시간이다. 











아마 수강생 중에 내가 가장 나이가 많을 것이라 추정이 되는데, 며칠 전 있던 포트폴리오 발표에서 또 한 번 깨달은 바가 있다.


스승은 도처에 있다는 것. 나이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는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수강생들의 작업물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작업물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특히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작업에 의연하게 다가가는 친구들을 볼 때면 정말 굳세다는 건 저런 거구나를 실감 했다. (나는 자주 미간을 찌푸렸던 것 같은데....) 




식탁 위를 말끔히 치웠는데도 작은 종이들이 한동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래서일까. 앞으로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것들을 보면 조금은 먹먹한 감정이 들 것 같다. 멀찍이서 디자인이란 새 꿈을 좇는 이들이 떠오를 것 같다.





4개월간의 편집 디자인 실무자 양성 훈련. 

디자인 스킬을 배우는 과정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겸허함을 익힌 시간이기도 했다. 


부디 이곳에서 만난 친구들이 모두 꽃길만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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