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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Jul 25. 2023

많이 읽어서 무엇하리


‘이렇게 읽을 순 없다...!’

뜬금없이 이와 같은 다짐을 하게 된 이유는 조금 전 일 때문이었다. 7월도 이제 거의 막바지라 읽은 책을 정리하고자 노션 앱에 책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며 읽은 전자책과 종이책을 합하니 총 11권의 책 목록이 만들어졌다. 6권에 그쳤던 지난달에 비하면 확실히 양호한 숫자였다. 하지만 문제는 읽은 책이 늘어나도 만족감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눈으로 나름 열심히 쫓은 문장들이 내게 조금도 머물지 않았으니까. 책의 메시지를 선명히 기억하느냐고 자문해 보면 솔직히 답할 수 없었다. 분명 시간을 들여 저자의 이야기에 몰입했음에도 책장을 덮은 지금은 왜 모든 것이 아득해진 걸까.      





‘계속 이런 식이라면 무슨 의미인가’

그러므로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금 TV광고처럼 책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접할 때만 순간적으로 흥미로울 뿐 책장을 덮으면 TV를 끈 것처럼 수신호가 뚝 끊기듯 책을 대하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건 필히 독서방법의 오류였다. 잘못 읽어도 한참을 잘못 읽고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나와 같은 독자를 위해 책 읽기 기술을 일러주는 책 또한 서점에 즐비하다는 걸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책은 거의 대부분 챕터별로 주제를 요약하며 읽으라고 조언하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요약만이 독서의 기억을 높이는 유일한 방식일 수는 없는 터. (내가 자주 읽는 에세이는 특히 더 요약이 어려웠다) 좀 더 나은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점차 커져가기 시작했다.




7월에 읽은 책을 정리하다 불쑥 딴짓을 하게 된 건 그 이유였다. 뭔가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선 도서 인플루언서의 블로그를 염탐하며 그들은 어떻게 책을 기록하는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배치 순서는 저마다 달랐지만 인상 깊은 문장을 나열하고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기록한다는 면에서는 다들 비슷한 양상이었다. 좀 더 신박하고 신뢰할만한 인물은 없을까 궁리하던 중 갑자기 머릿속에서 빨간색의 책 표지가 슬며시 떠올랐다. 바로 영화 평론가 이동진 님이 쓴 <이동진 독서법>이었다. 21년도에 읽은 책이었지만 좋았던 기억만큼은 선명했기에 그가 전해주는 독서 조언이 내가 찾는 방식과 맞닿아 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서둘러 밀리의 서재 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독서 노트 영역으로 들어가 21년도에 내가 밑줄 친 문장을 살펴보았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책을 내가 습득해야 할 무언가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그 내용이나 생각이 다운로드되듯 나에게 그대로 옮겨지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독서를 위해서는 책을 읽는 자체가 아니라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그것에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독서에서 정말 신비로운 순간은, 책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읽을 책과 나 사이 어디인가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것은 신비로우면서도 황홀한 경험입니다.



    




책을 읽음으로써 나에게 일어나는 어떤 것

여기서 잠시 멍해지고 말았다. 그간 너무 당연한 걸 간과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읽은 정보를 최대한 많이 기억하고 싶어서 그러면서도 다독가이고 싶어 읽은 권 수에 집착하느라 정작 책이 내게 준 감흥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던 것이다. 효율적인 독서법보다 중요한 건 독서 후의 나를 돌아보는 일이었는데...

독서를 하면서 내 속에서 일어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고 기록하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을 썼었던가. 하기 싫어서 또는 귀찮아서 감상과 발췌문을 대강 적기 바빴던 날들이 숱하게 떠올랐다.


 



아무래도 8월의 책 읽기는 속도를 늦춰야 할 것 같다.

'빠르게 많이'가 아니라 '느리게 깊이'의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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