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 법조 단지. 처음 가 본 그곳은 건물과 상점이 빼곡한 곳이었다. 보이는 대부분이 지나치게 붙어있어 걸을수록 숨이 턱 막히는 곳. 자연의 색이라곤 길가에 듬성듬성 있는 가로수가 전부였다. 그곳을 거닐며 두 번 다시 오기 싫다고 생각한 건 밀집을 거북해하는 나의 체질상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일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법. 40분간의 대면 면접을 마친 나는 불쑥 이런 생각이 들고 만다.
아, 여기 다닐만하겠는데?
어이없게도 이유는 한 가지였다. 혼자 일할 수 있다는 것. 일을 배워야 하는 ‘신입’ 디자이너 주제에 업무 습득 기회보다 자유가 보장되는 ‘근무 환경’을 우선으로 본 셈이었다. 나도 알고 있다. 이건 새내기에겐 흔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고객과의 일대일 대면 상담이 필요한 업무가 아니고서야 신입 사원에겐 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러나 회사의 규모가 매우 작아지니 이야기가 달라졌다. 내가 찾은 그곳은 회사라기보다는 아담한 인쇄소에 가까웠다. 상주하고 있는 직원도 겨우 2명뿐. 그곳에서 ‘디자인실’이라 이름 붙여진, 더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 면접을 보았다. 그리곤 얼마 안 가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현재 발붙이고 있는 이 공간을 나 혼자 점유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 후로 들은 정보들은 모두 참고 사항이 되었다. MD로 일할 때 받은 연봉의 70% 수준, 단행본보다는 기업 브로슈어를 주로 취급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이 생각뿐이었다. ‘정말 혼자 일할 수 있다고?’
돌아오는 지하철에선 직방 앱을 켜고 송파 부근의 집을 알아보는 내가 웃겨 불쑥 실소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한 시간이 넘는 통근 거리를 상쇄할 방법을 면접 직후 곧바로 모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탐나는 단 하나의 요소를 얻기 위해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결점을 어떻게든 무마하려 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비합리적인 대응인지. 그럼에도 나는 집으로 가는 내내 자그마한 공간에서 포토샵을 켜고 홀로 작업할 모습을 계속 상상하고 말았다.
나는 왜 이토록 ‘고립’을 추구할까. 어쩌면 이러한 고집은 퇴사 직후 기록해 둔 한 문장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당시 읽은 한 권의 책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질문 하나가 기록되어 있었다.
당신은 무슨 일을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하고 싶은가?’
이 문항을 읽자마자 나는 기침을 하듯 다음 문장을 써내려 갔다.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결국, 혼자 창작하는 일을 하고 싶다.
단번에 프리랜서가 되지 못할지언정 돌고 돌아서라도 기어코 자신의 작업물을 만드는 독립 근무자로서 일하고 싶다는 욕망이 퇴사 시점에 득실득실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8개월 후, 뜻밖의 장소에서 별안간 기회를 얻었다.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 신분이라 꿈꾸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지만 일단은 이렇게 낙관해 볼 수 있다. 아득해 보이는 프리랜서 창작자라는 길목에서 반가운 우회로를 만난 것일지도 모른다고.
물론 비관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걱정도 든다. 갈수록 예민해지는 사람의 대인 기피 초기 증상이 아닐까 하는 우려. 괴로운 장소나 상황을 그저 피하려고 하는 회피적 대응은 아닐까 염려가 되는 것이다. 사실 모르겠다. 이 선택이 날 어디로 데려갈지 출발점에 선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잦은 소통과 대면 업무가 어떻게 내 일상의 생기를 앗아갔는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할 뿐이다.
입사일까지 남은 기간은 앞으로 12일.
낙관과 비관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나의 마음은 벌써부터 소란스럽지만,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마음의 신호를 따라간 결과가 나 또한 궁금하니까.
+덧.
그러고 보면 몇 가지 다행인 사실도 있다.
재택근무 중인 선배 디자이너가 내방해 실무 교육은 대면으로 받을 수 있다는 점과 인센티브 기준이 마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칼퇴를 보장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아무래도 앞으로의 무탈함은 이 약속이 지켜지느냐에 따라 달려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