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오늘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박봉의 편집 디자이너로서 근무를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근무 조건을 따지자면 좋아진 것은 하나도 없다. 이전 회사에 비해 연봉도, 통근 거리도, 회사 규모도 모두 나빠졌으니까. 그럼에도 나조차 믿기지 않게 오전 내내 설레고 말았다. 다른 건 몰라도 적은 인원이 있는 장소에서 온전히 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다는 점은 지켜질 거란 생각에서다.
근무환경 딱 한 가지 만으로 만족을 운운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선 '새 일'이 주는 긴장과 활력이 반가운 것 같다. 애정이 차갑게 식어버린 일에 억지로 불을 지피는 걸 멈추고 마른 장작이 가득한 '새 터'에 불을 붙이는 느낌이랄까. 화력이 어떨지는 몰라도 불을 켜기 직전 들뜬 마음만큼은 감출 수가 없다.
사실 직원 3명의 영세 사업체라 좀 정신없이 업무가 진행되고 있긴 했다. 더구나 불시에 들리는 인쇄 소리에도 놀라기 일쑤였다. 그러나 언제 그랬냐는 듯 (연습 삼아 맡겨진) 브로슈어 표지 작업에 금세 몰두했다. 10년간 엑셀만 만진 사람이 전혀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학원 종강 후, 딴짓을 하느라 2주가 넘도록 디자인 프로그램을 열지 않았음에도 손이 알아서 단축키를 누르고 있을 땐 약간 놀라기도 했다. (물론 중요한 건 작업물의 퀄리티겠지만)
늦깎이 신입 디자이너에게 거는 기대가 클 리는 없겠지만 회사라는 공간에서 일러스트를 켜보니 더 확실해진다. 더 익숙해지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이라는 것을.
이 건전한 초심이 부디 최대한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