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불편하시죠?"
흰 가운을 입은 의사가 내게 물었다.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했다 "너무 불안해요" 이 말이 끝나자마자 의사는 언제부터였는지, 무슨 이유 때문이었는지와 같은 질문을 이어갔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다시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1년도 넘게 고민해서 결정한 퇴사였고, 무엇을 할지 일정까지 계획하고 나온 퇴사였다. 그런데 퇴사 직후 이 정도의 불안을 겪게 되다니. 9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떠난 지 겨우 이틀이 지난날이었다.
처음 느껴보는 기이한 감각. 마치 절망적인 뉴스만 나오는 라디오가 내 몸속에서 종일 떠드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음성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믿어버렸고, 거기에 온갖 상상을 덧붙여 최악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내가 만든 장면이 구체적일수록 심장의 두근거림은 심해졌다. 쿵쿵 거리는 소리가 제일 큰 순간은 언제나 잠을 잘 때였다. 눈을 감으면 내 안의 라디오 소리가 더욱 커졌고, 그에 따라 절망의 이미지도 훨씬 선명해졌다. 그러니까 내가 병원에 간 날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떠오르는 생각을 좇다가 꼬박 밤을 새운 날이었다.
눈물을 흘리며 여러 개의 검사지를 작성한 끝에 급성 불안 장애와 우울증을 진단받았다. 어떻게 집에 왔는지, 집에 와 무엇을 했는지는 흐릿하지만 처방받은 약을 먹고 나서야 비로소 깊은 잠을 잤던 것은 기억한다. 더불어 바로 다음 날, 홀린 듯 디자인 학원을 향했다는 것까지도. 사실 퇴사 후의 계획은 3개월 뒤에 개강하는 출판디자인 수업을 듣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혼자 작업하는 일을 찾겠다 마음먹고 뒤늦게 나 자신을 탐구하면서 알게 된 두 가지 사실 때문이다. 하나는 정보를 보기 좋게 시각화하는 일에 내가 꽤 흥미가 있었음을 자각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퇴사 전에 들었던 주말 수업을 통해 어도비 툴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는 것. 당시는 이 선택이 비용을 아끼면서 초보자가 실용적인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프리랜서 가능성도 있었기에 도전해 봄직하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세운 내 계획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안에 등 떠밀려 학원까지 도착한 나는 그 자리에서 충동적인 결정을 하고 만다. 그날로부터 개강일이 가장 빠른 수업을, 그것도 원래 들으려던 과정이 아닌 다른 수업을 무작정 등록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돌발적인 행동보다 나를 더 당황하게 만든 건 등록 직후 밀려온 안도감이었다. 무한했던 자유에 마감 시간이 생기자 주중과 주말이 뚜렷했던 직장인 정체성을 다시 부여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남은 기간이 1개월 정도이니 긴 휴가라 생각하자'라고 스스로를 타일렀달까.
그러고 보면 주중에 일을 하고 주말에 쉴 궁리만 했던 나는, 통째로 던져진 일주일을 온전히 내 기준으로 채운 적이 없었다. 인생 최초의 자유라고 할 수 있는 방학 기간에는 신분과 기간이 명확했으니 주어진 과제나 남들 다하는 스펙을 채우며 보냈고, 소속이 없던 취준생일 땐 불안해도 취업이라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기에 하루 하루 해야 할 일들을 정해두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30대 후반에 맞이한 자유는 전혀 달랐다. 취업 준비생 때와 동일하게 미래는 깜깜한데 이번에는 맡겨진 역할도, 분명한 목표도 없었기 때문이다. 회사를 나오던 날조차도 익숙한 속박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묵묵히 걸으면 프리랜서의 길이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 낙관했다.
하지만 퇴사 후 곧 깨달았다. 무한한 자유의 시간을 보내는 건 여러 갈래 길에 서 있는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망망대해에 빠진 상태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퇴사 직후 갑작스럽게 불안을 겪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 모른다. 수영은 못하는데 발은 닿지 않고 길은커녕 눈앞에 무엇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누구라도 패닉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내가 엉뚱한 수업을 등록한 뒤 안정감을 느낀 것은, 사색이 된 내 앞에 가장 가까운 부표 하나를 발견했다고 여겼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약의 효과였는지 아니면 수업을 등록한 여파였는지는 몰라도 다행히 나의 불안감은 빠른 속도로 가라앉았다. 병원에 다녀온 지 2주가 지났을 무렵에는 약 없이도 잠을 잘 수 있을 정도였다. 뭐든 읽고,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도 바로 그즈음이었다. 내 안에 있던 라디오 스위치가 꺼지고 심장 박동도 차츰 제 속도를 찾자 바깥의 소리를 받아들일 공간이 생긴 듯했다. 그제야 다이어리를 펼칠 수 있었다. 퇴사 후 하고 싶었던 목록을 적어 두었던 바로 그 다이어리 말이다. 다시 펼쳐 본 손글씨의 내용은 복합적인 마음으로 꾹꾹 눌러쓴 당시와는 다르게 단순하고 소박했다.
하루 루틴 만들고 실행하기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 마음껏 읽기
브런치북 발행하기
내일배움카드로 디자인 수업 배우기
그 시점 내게 가장 필요한 일은 루틴을 만드는 것이었다. 책 <퇴사학교>의 저자, 장수한 님의 조언처럼,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두려움을 줄이려면 매일 반복되는 행동 패턴이 필요했으니까. 나 역시 습관 형성 어플을 사용하거나 월력에 리추얼을 기록하며 하루를 통제하는 감각을 느껴본 경험이 있었다. 그렇게 첫 번째 과제가 정해지자, 기상 시간부터 아침과 저녁에 할 일들을 빼곡히 계획해 하나씩 지켜나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오전에는 모닝페이지를 작성한 후 독서를 하고, 점심을 먹은 뒤에는 산책 후 브런치스토리에 올릴 글을 쓰고 일기를 작성하는 식이었다.
모닝페이지 : 매일 아침, 의심의 흐름을 따라 3페이지를 손으로 자유롭게 적는 글쓰기.
솔직히 돌이켜보면, 다소 강박적으로 움직였던 것 같다. 비용을 치르고 얻은 자유이니만큼 시간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는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집착이 문제였을까? 애석하게도 과정은 순조롭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땐 잊고 싶은 과거가 불쑥 떠올라 울적해하다 일과의 절반도 끝마치지 못한 적도 있었고, 고심해서 글쓰기를 할 땐 체력을 완전히 소진해 다음 날 정오에 일어나기도 했다.
계획은 번번이 어긋났고, 그럴 때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후회의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망쳐버린 하루를 붙잡고 다시 계획을 조정하며 나아가는 과정에서 희미하게나마 내 삶을 돌보고 있다는 감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일정이 틀어진 채 잠들 때면 어쩔 수 없이 시무룩해졌지만, 다음 날 아침, 몽롱한 상태로 이런 말들을 끄적였다. '계획이 틀어져도 거기서 그냥 하면 돼. 그럼 어딘가로 나아가 있어. 적어도 제자리는 아니야.'
결국 나는, 노트에 적은 문장들에 의지해 약 2개월의 휴식기를 더 허용하게 된다. 홀린 듯이 등록한 수업을 취소하고 본래 계획했던 수업을 다시 신청한 것이다. 그렇게 보너스로 얻은 2개월은 여태 그랬듯 번번이 실패하지만 이상하게 손에서 놓지 못하는 행위들로만 다시 채웠다. 읽고, 쓰고, 걷는 시간들로.
(계속 이어질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