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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가 무작정 디자인을 배우면 벌어지는 일

by 슥슥





디자인도 글쓰기처럼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금세 적응하겠지?




이 생각이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 빈 페이지와 마주한다는 점만 같을 뿐, 디자인은 글쓰기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일단,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았다. 페이지의 크기를 정하는 일에서부터 색채, 폰트, 그리고 레이아웃까지 신경 써야 했고, 작업자의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 어떤 오브젝트를 활용할지, 또 무엇을 강조할지도 작업 내내 고민해야 했다. 다시 말해, 시작과 동시에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나마 초반엔 강사님이 제공한 예제의 규격을 그대로 따르면 됐지만 강의가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가 문제였다. 전체적인 콘셉트와 스타일을 결정하는 일이 오롯이 나의 몫이 되고 말았으니까.




당연한 말이지만, 파워포인트로 정보를 도식화하는 작업밖에 해본 적 없는 내가 디자인 설계에 익숙할 리 없었다. 당시 내가 하던 작업을 한 줄로 묘사한다면, '아이디어를 시각적인 요소로 이미지화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 첫 단어인 '아이디어'조차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핀터레스트나 이전 수강생들의 포트폴리오 등 다양한 레퍼런스를 참고했으나, 다른 사람들의 휘황찬란한 결과물은 가뜩이나 부족한 자신감을 더욱 쪼그라들게 만들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디자인은 전공보다 센스가 더 중요하다고 강사님이 재차 강조했다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그놈의 센스가 나에게 없다는 의심이 갈수록 커져간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때 느꼈던 심리적 압박은 당시에 쓴 모닝페이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벅차다, 머리가 아프다, 지친다, 부족하다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노트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힘든 상황이 나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던 걸까? 개강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내 바로 옆자리에 앉던 남학생이 어느 순간 보이지 않았다. 강사님께 슬쩍 물어보니, 놀랍게도 수강 포기를 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의 부재에 단순 결석이라 여기며 '저 사람도 적응이 쉽지 않나 보네'라며 생각하고 있었는데, 한 달 만에 완전히 배움을 단념했던 것이었다.

게다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 되지 않던 남자 수강생 전원이 내 옆자리의 학생과 같은 길을 걷고 말았다. 보통 이렇게 연이어 이탈자가 나오면 학습 의지가 꺾여 집중력도 흐트러지기 마련인데, 뜻밖에도 나에게는 그럴 수 없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역시나 경제적인 이유였다. 내일 배움 카드제로 신청한 국비 전액 지원 수업에서는 취업지원금이란 명목으로 약 75만 원의 수당이 지급되었는데, 그 혜택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9년 동안 번 돈을 쉽게 소비하지 않으려면 금전적 지원이 꼭 필요했기에 수업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나는 그 지원금으로 3년 만기 적금을 납입하고 있었다. 혹시 포기의 유혹이 찾아오더라도 '적금을 위해' 마음을 다잡을 생각이었다. 실제로 만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은 내게 버텨야 할 충분한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보다 내 마음을 추스르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 건 의외로 다른 곳에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기록'이었다. 그것도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기분을 여과 없이 쏟아낸 기록.




앞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학원을 다니면서도 나는 늘 뭔가를 끄적이곤 했다. 그리고 당시 쓴 노트를 들춰보면 마치 안전하게 발설할 곳을 찾은 듯 변화무쌍한 감정들이 숨김없이 드러나 있었다. 문장의 끝맺음은 우습게도 이런 모습이었다. 어떤 날은 "하기 싫다"였다가, 또 다른 날은 "할 수 있을까"였다가, 그다음 날은 "못해 먹겠네"로 마무리되는 식. 누군가에게 털어놓기엔 몹시 사소한 감정들이라, 아마 혼자 보는 공간에 넋두리를 늘어놓았으리라.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내면의 민낯을 거듭 드러내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점이었다. 말로 하는 불평은 금세 사라지지만, 글로 하는 불평은 고스란히 남기 때문이었을까? 마치 거울처럼 나를 비추는 문장을 조금 떨어져 응시하다 보면 내가 써놓은 서술어를 수정할 방법이 이따금씩 떠올랐다. 예를 들어, '내일은 아무래도 서점에 가야겠다'와 같은 식으로 말이다.




마침 내가 다닌 학원 위치가 종로였기 때문에 교보문고와의 거리도 가까운 편이었다. 힘들 때마다 책을 찾던 습관은 사실 영업직으로 일하던 직장인일 때부터 비롯된 것이었는데, 딱히 다독가가 아니었음에도 서점에선 언제나 마음이 정화된 기분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개강 후 꽃샘추위가 있던 3월, 유독 수업이 어려워 날씨처럼 마음도 쌀쌀할 때 발걸음이 자연스레 서점으로 향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책을 발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이 책, 저 책을 부지런히 오가며 발췌독했을 뿐인데도 시끄러웠던 속이 차츰 진정되곤 했다. 책의 문장들이 혼란스러웠던 감정을 가라앉혀 주었다면, 흐트러진 일상의 균형을 찾도록 도와준 건 아니나 다를까 산책이었다.





퇴사를 고민할 무렵, 나에게는 두 세 정거장을 먼저 내려 걸어가는 습관이 있었다. 퇴사 후에도 점심을 먹고 조금씩 걷다 보니 어느새 산책이 매일 하는 취미가 된 상태였다. 사실, 평소 운동을 잘하지 않던 터라 부족한 신체 활동을 보완하려 시작한 것이었는데, 체력 증진을 기대했던 내 예상과 달리 걷기의 이로움은 의외로 여기에 있었다. 고여있던 생각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는 것. 앞으로 전진하는 행위는 단순히 내 몸만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발걸음에 따라 보이는 풍경이 달라지듯, 걷다 보면 멈춰있던 고민들도 점차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그 시기, 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지나치게 압박을 느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책을 하며 '걷듯이 무사히 지나가기만 하자'고 되뇌던 말이 그 부담을 덜어주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작이 두려운 건 서툴기 때문이고, 미숙함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저 해보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다리를 움직이며 새삼 깨달은 셈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후의 학습이 순탄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수업 일정은 여전히 빡빡했고, 디자인 과제는 릴레이 하듯 끊임없이 이어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행위로 스스로를 달랜 덕분인지, 머리로 고민하는 시간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날들이 서서히 늘어갔다. 예를 들어, 디자인 콘셉트가 떠오르지 않아 진도가 막힐 때면, 주말을 이용해 색상과 레이아웃이라도 미리 정해두고 학원에 가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렇게 작은 변화들을 조금씩 적립하다 보니 문득, 글쓰기와 디자인에는 빈 백지에서 시작한다는 점 외에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바로, 마쳤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이었다.




2년이 넘은 일이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순간들이 있다. 색감과 레이아웃을 다듬느라 여러 차례 테스트 출력을 반복했던 전단지를 마침내 완성했을 때, 그리고 주말을 반납한 채 작업했던 리플렛 디자인을 인쇄소에서 실물로 마주했을 때. 빈 백지 앞에서 막막해하던 기억이 선명한데, 스크린 속에서만 보던 결과물이 구체적인 형태로 손에 잡힌다는 사실이 마냥 신기했다. 동시에, 그동안의 수고가 한순간에 보상받는 듯한 짜릿한 희열도 느꼈다.




디자인 작업도 글을 쓸 때와 마찬가지로 마쳤을 때의 보람이 유독 또렷했다. 차이가 있다면, 글쓰기는 엉켜 있던 감정과 생각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하고 나열하며 얻는 만족이었고, 디자인은 흩어진 요소들을 조화롭게 배치해 가며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오는 감격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두 작업 모두 자기 생각과 감각에 깊이 몰두해야 얻어낼 수 있는 결과라는 점에서는 닮아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부터는 일러스트의 백지 앞에서도 한결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나를 발견했다.




어도비 프로그램과 서서히 친해지는 사이, 벚꽃이 만개하던 학원 주변에 녹음이 짙어졌다. 어느새 벌써 6월.

수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더 이상 엑셀을 만지는 영업직 근로자가 아니라 기초 자격증과 포트폴리오를 갖춘 디자이너 취업준비생이 되었다는 사실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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