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난주를 회고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한 일요일. 직장인 신분으로 오래 일을 해서 그런지 일요일 즈음이면 나도 모르게 긴장의 끈이 툭 풀리고 만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느릿느릿 일어나 천천히 아침을 먹고, 굼뜨게 준비를 하다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이곳에 도착한 뒤에도 템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유 열람실에는 왜 하필 눕기 딱 좋은 소파가 있는 걸까. 그 자리에 냉큼 몸을 눕히며 '잠시 쉬고 해야지'라고 마음먹었다가 무려 3시간이 지나서야 노트북을 켜고 말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지나치게 이완된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 지난날의 기록을 살펴보았다. 업무일지를 써둔 플래너를 펼친 것이다.
다행히 그곳엔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려 애쓴 흔적이 남아있었다. 12월 첫째 주엔 외부 공유용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웠고, 지난주였던 둘째 주엔 디자인 수주가 뜻대로 되지 않아 가상의 프로젝트를 만들어 신규 로고와 명함을 만들기도 했다. 분명 결과물이 남긴 했는데..... 왜일까. 곱씹어봐도 만족스러운 마음은 잘 들지 않는다.
아마도 이 감정의 정체는 아무래도 내 실력의 한계와 프리랜서라는 세계의 냉혹함을 동시에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주중에는 출근하듯 공유 오피스로 향하고, 컴퓨터 앞에선 골몰하며 하루 일정을 소화하려 애쓰고 있지만, 이게 훗날 무엇과 연결될지 여전히 알 수 없다. 더구나 온라인에는 이미 실무 경험이 풍부한, 쟁쟁한 실력자들이 넘쳐난다.
매일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라는 문장 사이를 쉼 없이 오가는 기분. 이러다 보니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면 직장인 신분일 때보다 더 얼굴이 초췌해 보인다. 특히 이번 주는 두 가지 본질적인 의문이 꼬리표처럼 나를 괴롭혔다.
'남이 아닌 내 디자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에게는 나를 파는 능력이 있는가?'
재능 플랫폼인 숨고에서 만난 일부 고객들은 디자인결을 확인하기 위해 포트폴리오를 요구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도 급하게 외부용 PDF포폴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당연히 견적서와 함께 송부했다. 하지만 모든 고객들의 답은 늘 한결같았다. 애석하게도 묵묵부'답'.
포트폴리오를 첨부하지 않았을 땐 간간이 문의라도 왔었는데, 추가한 이후로 무응답이 이어졌다면 문제의 원인은 덧붙인 문서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50페이지의 PDF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다양한 품목을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전 직장의 기업 클라이언트 작업물까지 한데 그러모았지만, 문득 고객 입장에선 그것들이 모두 소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숨고를 주로 이용하는 소상공인 업종의 작업물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질문은 티스토리 블로그 통계에서 시작됐다. 공들여 기록한 디자인 후기들의 평균 조회수가 50을 채 넘지 못했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말았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모두 네이버에 집중할 때 나는 티스토리에서 홀로 구글 유입을 유도한다면 그것 자체가 차별화 아닐까?라고 (안일하게) 판단했던 결과였다. 또한 디자인이 필요한 고객들이 주로 어떤 검색창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노션 포트폴리오, 디자인 포트폴리오, 재능 플랫폼의 프로필까지. 내 이력과 작업물을 정리하는 데에는 몇 주의 시간을 쏟으면서, 정작 그걸 어떻게 보여줄 것인지에 대해선 너무 허술했던 것이다.
결국, 이번 주는 틀린 답을 고치기 위해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첫째,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프리미엄 헤어숍 사장님'이라는 가상의 클라이언트를 설정해 미용실 로고와 명함을 디자인했다. 로고를 만드는데 꽤나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해본 적 없는 스타일의 디자인을 완성하고 나니 낯선 영역을 한 단계 통과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둘째, 한동안 운영을 멈췄던 네이버 블로그의 카테고리를 개편했다. 티스토리에 있던 디자인 후기들을 네이버로 옮기기 위해서다. 다음 주부터는 이 작업에 시간을 더 투자해 볼 생각이다. 여기에 더해 당근비즈 프로필도 새로 개설했다. 범위를 좁혀 동네 사장님들을 위한 디자인을 작업하고 싶어서인데... 아직은 분위기를 익히는 단계다. 일단은 소식을 꾸준히 올리며 천천히 다가가 보려 한다.
12월이 벌써 절반이나 지났다. 이제 25년도도 보름 정도가 남은 셈이다. 프리랜서 지망생으로서 어느덧 1년 차에 접어들자 고민의 농도도 짙어진다. 이 도전을 계속 이어갈지, 아니면 방향을 수정해 다시 정비를 해야 할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최근 하나의 '데드라인'을 정했다. 현재 외주 포스팅 업무(이전 직장의 기업 블로그를 운영하는)로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고 있지만, 이 생활로는 솔직히 말해 안정감을 느끼지는 못한다.
공유 오피스 계약이 종료되는 2월까지도 디자인 의뢰가 여전히 미미하다면, 그때는 내 한계를 인정하고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9년 간의 직장 생활로 모아둔 돈이 야금야금 빠져나가는 걸 멈추고 싶기도 하고, 디자인 실력이나 나를 파는 능력 모두에서 더 단단한 내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점점 커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심을 똑바로 기억하고, 2월까지 계획한 일들을 하나씩 달성해 봐야지.
다음 주 일요일,
이곳에 무사히 또 한 번의 생존 신고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