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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션 포트폴리오 하나 만드는 데 5년이나 걸린 이유

# 04.

by 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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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포트폴리오만 구경하던 직장인

지금은 노션(Notion)이 조직 내에서는 협업 툴로, 개인에게는 생산성 도구로 자리매김했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나에겐 어쩐지 범접하기 어려운… 새로운 메모장에 가까웠다. 에버노트보다 좀 더 세련된 낯선 도구 정도였달까. 느긋하게 관망했던 나와 달리 변화에 민감한 이들은 이미 재빠르게 적응해 노션으로 자신을 어필할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었다. 아마 그때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전통적인 방식의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보다 직접 구성한 노션 포트폴리오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이가 점차 많아졌던 것은.




그 무렵 데이터 홈쇼핑 회사에서 8년 차 직장인으로 일하던 나는 맹한 눈으로 타인들의 포트폴리오를 자주 구경하곤 했다. ‘이 사람은 심플한데도 인상 깊네’, ‘자신을 엉뚱한 키워드로 표현했네?’, ‘이런 이미지들은 어떻게 넣은 거지?’와 같은 순진한 질문을 가득 품고서. 이직을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노션 포트폴리오를 요구하지도 않는 업계에서 일하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그 웹페이지들에 시선을 뺏겼다.




내가 본 포트폴리오에는 어느 대학교를 나왔고, 토익이 몇 점이고, 자격증은 무엇인지와 같은 소위 ‘있어 보이는’ 정보는 대부분 사라져 있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모든 이들이 근사해 보였다. 타이틀이나 수치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이력의 과정을 구체적인 단어와 이야기로 풀어냈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여전히 정형화된 이력서로 사람을 채용하는 곳에 머물러 있던 나는 그 표현 방식이 몹시 부러웠다. 개성이 드러나는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업계에서 일하는 건 어떤 모습일까, 막연히 선망했던 것이다.






5년 만에 지운 위시리스트 한 줄

부러워하다 보면 닮고 싶어지는 걸까. 어느샌가 나는 [노션 포트폴리오 만들기]란 목표를 마음속 위시리스트에 조용히 포함시켰다. 그리고 바로 지난주, 드디어 그 항목을 지울 수 있었다. 나만의 노션 포트폴리오를 드디어 완료… 아니 작성했기 때문이다.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하므로 ‘완료’라고 하긴 어렵다)




그러고 보니 자그마치 5년이나 걸렸다. 전직을 결심하기까지 2년, 편집 디자인이라는 새 직무에 적응하기까지 2년, 그리고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프리랜서를 연습하는 현재까지. 햇수를 세어보니 꽤나 오래 묵혀둔 바람이었지만, 사실 실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생존’이었다. 디자인 프리랜서를 결심하고 재능 플랫폼(숨고)에 프로필을 작성한 뒤에야 비로소 부족한 경력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많고 많은 디자이너 사이에서 나를 구별 짓는 방법은 ‘나만 갖고 있는 이야기’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전달할 도구는 지금으로선 노션뿐이었다.





스토리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싶어서

그렇게 작성한 노션 포트폴리오는 [모노그로브]라는 정체성을 충분히 담고 있다. 모노그로브가 어떤 의미인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역량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시작하고 발전시켰는지를 가능한 한 문장으로 보여주고자 했다. 구체적인 구성은 다음과 같다.





#00. 한 줄 소개

모노그로브는 ‘하나’라는 뜻의 모노와 ‘작은 숲’을 의미하는 그로브가 만나 완성되었다. 디자인과 블로그 마케팅, 그리고 콘텐츠 제작이라는 세 가지 역량이 숲을 이루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네이밍했고, 이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포트폴리오 상단에 최대한 짧은 문장으로 설명했다.

스크린샷 2025-11-30 195746.png 최상단 소개글





#01. 스토리

두 번째 항목에선 세 가지 역량을 쌓게 된 출발점을 이야기했다. 어떻게 홈쇼핑 MD에서 편집 디자이너가 되었는지, 또 편집 디자이너로 입사한 회사에서 어떻게 블로그 운영자가 되었는지, 마지막으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왜 계속 온라인에 무언가를 발행하고 있는지까지. 이 부분에선 문장이 다소 길게 느껴질 수 있어 가독성을 위해 글머리 기호를 활용해 목록 형태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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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너를 클릭하면 스토리가 보이도록 구성했다





#02. 작업물

세 분야에서 진행한 각 대표 작업물을 정리했다. 그간의 작업을 선별하고 요약하는 데 특히 신경 썼다. 디자인할 수 있는 모든 품목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개인적인 기획력이나 기여도가 높은 프로젝트만 골라냈다. 블로그 마케팅은 현재 진행 중인 업무라 내 역할 중심으로 작성하다 보니 내보이고 싶은 성과도 자연스레 정리되었다.


문제는 역시 콘텐츠 제작 분야였는데, 꾸준히 발행하고는 있지만 뚜렷한 성과라 할 만한 게 없어 고민스러웠다. 생각이 많아져 위축되려던 차에 AI에게 하소연을 했더니, 성과가 아니라 간헐적으로라도 ‘글 발행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라는 탁월한(?) 조언을 해주었다. 덕분에 3가지 주제로 내용을 채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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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별로 대표 작업물을 정리한 모습






#03. 커리어

아무리 스토리 중심의 포트폴리오라도 근무 이력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대표 경력 두 가지를 토글 형태로 정리했고, 상세 내용은 배너 이미지를 클릭했을 때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스크린샷 2025-11-30 200309.png 토글로 열기/닫기가 가능하다





#04. 일하면서 들은 말

마지막 항목에선 타인이 말하는, 일할 때의 내 모습을 솔직히 보여주고 싶었다. 소소하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했다는 보람을 느껴 개인적으로도 인상 깊었던 피드백을 추려 짧게 소개했다. 구체적인 상황을 더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지만, 이 항목의 목적은 나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지 완전히 이해시키는 게 아니니 축약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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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포트폴리오가 필요하지 않은 업종에 오래 몸담았던 사람이 작성한 첫 웹 포트폴리오 제작기다. (이 뒤로는 다룰 수 있는 프로그램과 자격증, 컨택 포인트 같은 사실 정보들이 이어진다.)





포트폴리오 만들기의 진짜 의미

웹상에 공유하기로 마음먹고 만들었으면서 막상 노출하니 걱정스럽기만 하다. 누군가에게는 지나치게 심플하거나, 혹은 장황하게 보일 수도 있으니까. 몇 주에 걸쳐 만들었음에도 나조차 여전히 무언가를 더 채우거나 수정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든다. 게다가 이 페이지가 정말 필요한 누군가에게 닿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나를 홍보할 구체적인 서류를 하나 완성했지만, 일상은 달라진 게 없으니 여전히 ‘프리워커 지망생’이라는 사실만 실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작업은 분명 나에게 필요한 일이었다. 독립적이라 생각했던 경험들에 스토리를 부여하자 개별적인 이력들이 묘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홈쇼핑 업계에서 제품의 소구 포인트를 잡던 습관은 블로그 포스팅을 구성할 때 도움이 되었고, 완전한 창작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디자인은 블로그 섬네일을 만들 때도, 개인 포트폴리오의 미감을 위해서도 필요한 실용적인 감각이었다.

나의 언어로 경험을 정리하는 작업의 진짜 가치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흩어져 있던 여러 개의 점들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을 또렷이 기억하고,

다음 주에도 이곳에 무사히 생존 신고를 해봐야지.




덧. 나의 첫 노션 포트폴리오

Monogrove’s Portfol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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