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작은 자책이 한 주를 흐리게 만들 때

# 02.

by 슥슥
ep.02.png




이렇게 회고할 줄은 몰랐는데

이곳은 모교 도서관의 4층 열람실. 지난주를 회고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왔다. 장소는 동일한데, 마음가짐은 지난번과 정반대다. 희망에 부풀어 의욕 있게 지난날을 톺아보던 그때와 달리, 지금은 내 속에 냉소적인 언어들이 유유히 떠다니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아무래도 어제의 휴식 탓이 크다. 스스로 부여한 휴일의 대부분을 또다시 릴스로 채우고 말았으니까. 짧고 자극적인 영상에 매번 무너지는 내 모습을 나는 여전히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쉴 때는 더 가열하게 수동적이 되려는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오늘 오전, 눈을 뜨자마자 내가 여전히 그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자책이 올라왔다.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그토록 원했던 행위(조용히 글로 회고하기)를 하고 있음에도 굳은 표정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사실 릴스 좀 봤다고 이렇게 계속 나를 탓하기엔 약간 억울한 면도 있다. 어제를 제외하면 나머지 날들은 계획했던 일을 무리 없이 마무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글에 공표(?) 한대로 나의 첫 로고와 명함을 무사히 만들었고, 잔뜩 설레는 마음으로 새 로고를 블로그에 반영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유일한 생계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 외주 포스팅 7건도 이틀 만에 후루룩 마무리했다.

분명 무력보다는 활력이 더 많았던 한 주였는데... 단지 주말의 마지막 장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지난 일주일 전체를 볼품없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난주를 다시 떠올려보자

심호흡을 한번 하고, 뭉뚱그린 지난주를 다시 찬찬히 돌이켜보았다. 그러자 자신감이 풀 충전되었던 수요일이 슬그머니 떠올랐다.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 걱정부터 앞섰던 로고 디자인 작업을 생각보다 빠르고 수월하게 마무리했던 바로 그날. 웬만해선 내 디자인 작업물에 만족하지 못하는, 피곤한 완벽주의자인데도 그날만큼은 뻔뻔할 정도로 꽤 흡족해했다.





그때는 단순히 결과물이 취향에 잘 맞아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돌아보니 진짜 기쁨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낯설기만 했던 기술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었다는 사실. 어도비 툴을 거대한 산처럼 올려보던 2년 전과 달리, 지난 수요일의 나는 일러스트 프로그램을 제법 편하게 다루고 있었다. 아직은 아마추어의 세계에 머물러 있지만, 그래도 디자인 툴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점은 어쩐지 마음 한켠을 든든하게 만든다. 10년간 엑셀만 다루던 사람도 시간을 들이면 새로운 기술 하나쯤은 갖출 수 있다는 걸 실감해서일까?





뿐만 아니라 로고 디자인 자체도 내게 좋은 기운을 전달해 주었다. 로고가 완성된 순간, ‘시작의 스위치’가 눌린 느낌이었으니까. 이름만 만들어두고도 여전히 모호했던 [모노그로브]라는 자체 브랜드가 비로소 실체가 생겼다.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며 디자인 작업을 하니 초심을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 있었고, 정돈된 언어로 로고 시스템을 구성하고 나서는 구체적인 정체성이 한 겹 더 쌓인 듯했다.
기분 좋게 출발점에 선 기분. 그 감각이 내 속을 천천히 채웠던 걸 다시금 떠올렸다.








휴식이 나를 갉아먹지 않도록

이렇게 되돌아보니, 내 시야를 흐리게 했던 건 휴식 방식 자체였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릴스를 보는 것 그 자체보다 나를 계속 할퀴게 만드는 휴식 방식을 반복해서 선택했다는 사실이 더 괴로웠던 것 같다. 자극적인 영상에 파묻혀 시간을 보낸 뒤에는 어김없이 자책이 몰려왔고, 그 자책은 한 주 전체를 손쉽게 먹색으로 덮어버렸다.

하지만 분명히 행동했던 날들이 있었다. 로고와 명함을 만들었고, 블로그도 손봤으며, 외주도 마쳤다. “나는 여전히 그대로네”라는 오늘 오전의 생각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걸 잊지 않으려면,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 쉬고 나서 나를 힐난하거나 깎아내리게 되는 휴식은 내게 도움이 되는 쉼이 아니다. 이런 수동적인 휴식에서 점차 멀어지기로 다짐했다. 이를 위해 우선, 인스타그램 앱을 지웠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휴대폰을 거실에 두기로 했다.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면 유혹 자체를 눈앞에서 치우는 수밖에 없다.

다음 주엔 완성한 로고를 노션 포트폴리오에 반영하고, 작은 영업도 시도해 볼 예정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목표는 자책 없는 휴일을 보내는 것이겠지. 다음 주엔 부디 웃으면서 회고할 수 있기를.






만족감에 취해 후루룩 기록한 로고 작업 후기

스크린샷 2025-11-12 194403.png 로고시스템도 후딱 만들었다


keyword
이전 01화퇴사 후 1년,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