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
9년 가까이 다닌 회사를 나왔다. 직장인 정체성이 사라지자 살 길이 막막했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내가 가진 경험을 나열해 보았다.
첫째, 데이터 홈쇼핑에서의 상품 영업(MD) 경험.
둘째, 포기했다 재개했다를 반복해 온 블로그 운영 경험.
셋째, 주말에 조금씩 이어온 디자인 학습 경험.....
적고 나니 새삼 부끄러웠다.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데 뭐 하나 깊게 파고든 것도, 확실히 내 것이라 할 만한 기술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 어딘가 애매하고, 하나로 엮어 활용하기에도 어색했다. 한마디로, 그저 ‘흩어진 기술들’
그럼에도 다시 회사로 돌아갈 마음은 들지 않았다. 결국, 나는 이 모호한 능력들로 살 길을 찾기로 다짐한다. 과연 이토록 애매한 경험을 지닌 사람도 회사밖에서 밥벌이를 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매주 일요일, 흩어진 기술을 엮어 나만의 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주간 회고록이자, 기술과 정체성이 아직 결합되지 않은 애매한 사람의 현재 진행형 생존 기록이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저절로 눈이 떠졌다. 8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리기 한 시간 전이었다. 충분히 숙면해 에너지도 만족스럽게 채워진 상태. 직장인이었다면 뜻밖의 여유에 곧장 휴대폰을 켰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출근해야 할 회사가 없었다. 24시간을 온전히 내 선택으로 채울 수 있는 퇴사자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늦잠을 자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첫 단추가 틀어지면 쉽게 망했다고 생각해 버리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에게 늦은 기상은 포기를 부르는 덫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오늘도 나에겐 여느 때처럼 약 17시간이 던져졌다. 내가 여기서 굳이 ‘던져졌다’라는 표현을 쓴 건 정말로 누군가 내게 큼직한 공을 건넨 것처럼 묵직한 무게가 매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힘은, 다른 말로 하면 아마 ‘불안’ 일 것이다. 퇴사한 지 11개월이 지났는데도 막연한 자유는 여전히 무겁고 낯설다. 이른 아침, 한 주의 시작점에서 그 무게를 다시 실감하니 불안장애를 앓은 적 있던 내 심장은 어느새 또 빠르게 뛰었다. 어쩔 수 없이 누운 상태 그대로 왼손은 심장 위에, 오른손을 명치 위에 올려두고 심호흡을 했다. 스읍 후우. 스읍 후우. 크게 숨을 고르면서 동시에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안전하다. 나는 안전하다..’
이렇게 오늘 아침도 나는 내 심장부터 다독여야 했다. 어쩌면 이 긴장감은 어제 플래너에 적어둔 할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요일이었던 바로 어제, 나의 프리랜서 생존기를, 운영 중인 블로그와 연재 브런치북에 올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그걸 실행하는 첫날이었다. 기록과 글쓰기를 애정해서 꽤 오래 이어왔지만 이렇게 공개된 글쓰기, 특히 특정 주제의 이야기를 지속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길 땐 쓰기 앞에서 쉽게 경직되곤 했다. 스스로 만든 부담 때문에 또 무너질까 봐 이번만큼은 그저 지난주에 한 실천을 가볍게 회고하자고 다짐했는데….. HSP(Highly Sensitive Person) 인간의 심장은 여전히 민감했다.
다행히 호흡 덕분인지 가슴의 박동은 어느새 잠잠해졌고, 그제야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었다.
지난주에 나 뭐 했지?
스치듯 두 가지가 떠올랐다. 하나는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완성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평소 선망하던 콘텐츠 크리에이터 단단님의 커뮤니티를 신청했다는 것. 적어보니 어쩐지 조금 초라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실 이 사건은 두 가지 측면에서 나에게 의미가 있었다. 포트폴리오 완성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분명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커뮤니티 신청은 혼자 버티던 작업 환경에서 벗어나, 함께 가는 변화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사실, 지난주 완료한 그 포트폴리오는 재취업을 위한 것이었다. 루틴이 무너지고 자꾸 늘어지려는 스스로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어 ‘다시 나가서 돈이나 벌자’는 자포자기 심정으로 시작했던 일. 하지만 몇 주에 걸쳐 완성하고 난 후 처음 든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었다. ‘회사로 돌아가기 싫다.’
모아둔 돈이 아직 바닥난 것도 아니고, 누가 취업하라고 채근하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는 불안과 몇 주간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마음을 흔들었을 뿐이었다.
게다가 일상의 루틴을 회복했다는 점도 회사 복귀에 대한 저항감을 높였다. ‘재취업용 포트폴리오 완성’이라는 목표가 분명해지자, 나는 다시 플래너에 할 일을 기록하고 실천하는 의욕적인 백수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쯤 되니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다.
어차피 취업용 포트폴리오는 완성해 두었으니, 최후의 보험은 마련해 둔 셈 아닌가. 차라리 이걸 안전망 삼아 한번 더 시도해 보자.
그렇게 경로를 틀어 처음으로 한 일이 바로 프리워커 지망생들이 모여 자신의 콘텐츠 발행을 독려해 주는 유료 커뮤니티 가입이었다. 11개월 동안 혼자 애썼는데도 성과가 미미하다면, 이제는 강제성이 있는 환경으로 몸을 옮겨볼 때라고 생각했다. 아직 멤버 선정 결과가 나지 않아 합류 여부는 모르지만, 낯선 조건에서 받는 자극이야말로 마감이 없는 이 생활을 지속하게 해 줄 것 같기도 했다. 물론, 알고 있다. 무사히 그 모임에 합류된다고 해도 상황을 바꾸는 건 프로그램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스스로 분투해야 할 나’라는 걸. 그래서 그때를 대비해 미리 내 콘텐츠부터 만들고자 이번 브런치북 연재도 시작했는데……과연 미래의 나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애매하긴 하지만 내가 가진 기술로 혼자 일할 거야’라고 결심한 지 어느덧 11개월. 이렇게나 진전이 느릴 줄은 몰라서… 이게 정말 내 길이 맞나 의심이 짙어졌는데…. 때 마침 노트에 기록해 둔 문장이 오늘따라 가슴에 쿡 박힌다.
나의 욕망이 사회적으로 각인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도달해야 알아요. 도달했을 때 타인의 것이라면 ‘끝’의 느낌이, 내가 원하는 곳에 제대로 갔다면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 어떤 꿈이 생긴다면 반드시 얻으려고 하셔야 돼요. 얻은 다음에 버리거나 말든가 하는 거예요.
얻었을 때 ‘이건 내 것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아요.
(...) 의심하는 이유가 뭔지 아세요? 대개 거길 가기가 힘들 것 같으니까.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서 의심한다고요.
(...)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의 소망, 우리의 욕망은 해봤을 때 뜨겁게 알 수 있어요. 내 것인지 아닌지. 여러분의 몸으로 알아야 해요. 그러면서 하나씩 여러분 자신을 살아가는 거예요.
ㅡ 강신주의 다 상담 (일, 정치, 졸지 마 편)
그래, 저 문장대로라면 나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 부끄럽게도 여전히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했으니까. 독립 노동이라는 세계에 제대로 도달했다는 실감은, 돈으로 거래하고 싶은 가치를 누군가에게 제공했을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나의 첫 번째 도달 지점은 분명하다. ‘일/감/수/주’
이를 위해 플래너에 적어둔 다음 주 할 일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그중에 가장 먼저 힘을 쏟고 싶은 작업은 나 자신의 로고와 명함을 만드는 일. 무를 썰기는커녕 아직 칼을 제대로 뽑지도 못한 프리랜서 지망생이라 언급한 저 일이 당장 돈이 되어 돌아오진 않겠지만,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아직은 끝보다는 시작의 느낌이 들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