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0개, 경력 미달인 내게 입금 알람이 울렸다

by 슥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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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0개인 나에게도 첫 고객이

놀랍게도 이번 주는 일감을 확보하며 한 주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주 당근 앱에 비즈프로필을 올렸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배너 디자인 의뢰를 받은 덕분이다. 짧은 소식글 하나와 공짜로 받은 광고 캐시로 겨우 이틀간 홍보한 결과였다. 솔직히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쉽게 일을 수주해도 되나' 싶었으니까. 온라인 세계에서는 생면부지의 관계에서도 거래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부담 없는 가격 덕분일 수도 있겠지만, 리뷰 하나 쌓이지 않은 내게 디자인을 맡겨준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첫 거래 성사의 기쁨은 찰나였다. 고객의 요청사항을 기억해 일러스트레이터의 빈 페이지 위에 정리해두고 나면 어김없이 아찔해지곤 한다. 앞으로 이 하얀 여백을 어떻게 채울지는 철저히 혼자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간단한 이벤트 배너였음에도 마땅한 콘셉트가 떠오르지 않아 꽤 오랜 시간 진전이 없었다. 시안을 당일 전달하기로 약속했음에도 빈 페이지가 계속되자 걱정과 불안이 엄습했다. 점심 메뉴였던 김밥 한 줄을 채 다 먹지 못하고 디자인에 온 신경을 쏟아야 했다. 결국, 저녁 6시가 다 되어서야 1차 시안을 보낼 수 있었다. 간신히 약속은 지켰으나 스스로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배너 2종을 작업하는 데 5시간이 넘게 걸렸다는 사실이 내 부족한 역량을 증명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업물을 보내면서도 고객이 불평을 쏟아낼까 봐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었다.






재방문 고객이 내게 준 것

내 걱정과 달리 고객은 일러스트 일부와 문구를 수정하는 것 외에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그렇게 또다시 어안이 벙벙한 채로 새 플랫폼에서의 첫 작업을 마무리했다. 더욱 놀라운 건 이 당혹스러움이 가시기도 전에 또 다른 작업을 수주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재방문' 고객이었다. 지난달 '숨고'를 통해 4단 리플릿 디자인을 의뢰했던 고객이 이번엔 책 표지 디자인으로 나를 다시 찾아준 것이다. 표지 디자인 경험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았음에도, 상담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입금 알람이 울렸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얼떨떨함이 놀라움으로 변했던 순간이. 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얼마나 벅찬 것인지 격하게 체감하며 일러스트 툴을 매만졌다.






감동의 효과였을까. 1차 시안 마감일까지 나흘의 여유가 있었음에도 등에 불이라도 난 듯 서둘렀고, 의뢰받은 당일 바로 시안을 전달했다. 그것도 꽤나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이다. 단 며칠 차이였을 뿐인데, 당근에서 만난 고객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였다. 별안간 자신감을 충전할 수 있었던 건 아무래도 고객이 보여준 신뢰의 힘 덕분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만큼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부담도 공존하지만, 그 무게는 어떻게든 견뎌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다. 잠시 거만했던(?) 나를 꾸짖듯 전달한 시안은 단번에 확정되지 못했다. 하지만 실망감은 재빨리 지우고 수정에 공을 들였다. 아마 다음 주면 결과가 나오겠지. 두 번의 거래가 세 번의 거래로 이어질 수 있게 총력을 다할 생각이다.






조금씩 진입하고 있는 거겠지?

디자인 요청이 거짓말처럼 이어졌던 12월 셋째 주. 불안과 감격, 아찔함과 놀라움이 쉴 새 없이 교차했지만, 프리랜서라는 세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가장 실감한 한 주였다. 그럼에도 띄엄띄엄 이어지는 일감에 아직 안정감을 느끼긴 어렵다. 하지만 '애매한 사람'도 두드리면 열리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견딜 힘이 생겼다.

이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응원도 큰 힘이 됐다. 공유오피스 계약이 종료되는 내년 2월이 프리랜서 도전의 데드라인이라고 가족들에게 선언했는데, 안전지향적 성향이 가장 강한 엄마가 오히려 "좀 더 길게 보고 도전해 보라"며 독려하는 게 아닌가. "이제 막 물꼬가 트이는 것 같은데 포기하긴 아깝다"는 엄마의 말은 그 어떤 위로보다 든든했다.




든든한 지원군도 있고 일감도 슬슬 들어오니 미래를 낙관하고 싶지만, 사실 그러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1인 근무자의 삶에선 눈앞이 캄캄한 순간이 언제든 다시 닥칠 거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질 그 순간을 상쇄하기 위해, 이번 주처럼 고무적이었던 사건들을 열심히 수집해 둘 생각이다. 여느 때처럼 기록의 힘을 빌려.




다음 주 일요일에도 이곳에 무사히 생존 신고를 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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