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이 회의를 소집했다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리지 않고

by 슥슥
잠깐 좀 모이자.


금요일 오전부터 팀 회의가 있는 경우는 없었는데, 의외였다. 어제 그룹웨어에 게시된 연봉 공지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걸까. 인상폭이 적어 사기가 떨어져 있을 팀원들을 독려하고자? 아니면 또 그새 폭탄 같은 구조조정 소식이 업데이트된 걸까. 6층 회의실로 향하는 내내 궁금증이 커졌다. 마치 짠 것처럼 미심쩍은 눈초리를 한 팀원 6명이 타원형 책상에 둘러앉았다. 그리고 정적을 깨는 팀장님의 한 마디.






"얘들아, 내가 회사를 다음 주까지 다니게 될 것 같아."


귀를 의심했다. 가늘게 뜬 12개의 눈이 순식간에 동그란 토끼눈으로 변했다. 이런 결심을 하게 된 이유에 대해 팀장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래 고민했고, 회사의 방향성과 결이 맞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었다면서. 후회나 미련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초연함이 더 아찔했다. 두 명의 자녀가 있는 분이셨다. 병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가 계셔 종종 휴가를 쓰시던 분이기도 했다. 그런데도 퇴사라는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 이건 구조조정보다 더 위협적인 일로 느껴졌다. 어깨에 책임을 얹은 가장조차 버틸 희망이 없다는 건 난파 위기에 직면한 신호처럼 보였으니까.







생각이 많아졌다. 잔뜩 흐린 날씨보다 낯빛이 더 그늘지고 있었다. 속 안에 말과 감정이 가득 찼다. 누구에게든 토로하고 싶었다. 그 순간 학창 시절 절친들이 떠올랐다. 서로의 집안 사정까지 훤히 아는 고등학교 친구들. 이상을 꿈꾸는 극 내향형인 나와는 달리, 사람 좋아하는 현실주의자들이라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데 오랜 기간 애를 먹은 사이지만, 정반대이기에 오히려 늘 다른 시각의 해결책을 제안해준 친구들이었다. 역시나 그들은 내 사고 범위를 벗어나는 현실적 조언을 했다. 요약하면 이랬다.

도전을 위한 퇴사는 응원하지만 심란한 마음 때문에 도망치는 퇴사는 피할 것.

자발적 퇴사이더라도 실업급여 수급 조건을 만들 것.








실업급여라니. 나에겐 해당되지 않기에 고려조차 하지 않은 대안이었다. 실제 인사팀인 친구는 자발적 퇴사여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캡처해 내게 보내왔다. 통근거리가 멀어졌다거나 본인이나 가족이 질병에 걸려 요양과 간호가 필요할 때. 읽어보니 나와는 무관한, 피치 못할 사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자 그 친구가 과감한 방법 하나를 제시했다. 정규직을 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것. 계약 만료로 퇴사하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순간 얼이 빠졌다. 현재 직무나 쌓아온 커리어에 대해 미련 없다는 나의 말을 철썩 같이 믿은 친구는 '실업급여 퇴사 조건'에만 주목해 그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친구의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두렵다'였다. 프리랜서에 도전했다 실패하고 다시 재취업을 할 때 계약직의 신분이 혹여나 불리할까 봐 걱정이 앞선 것이다. 그 주저함이, 그 망설임이 문득 비겁해 보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그게 나였다. 무엇을 시도하기 전에 안될 일부터 떠올리는 사람. 돌고 돌아 플랜 B까지 걱정하는 사람. 확실하지 않으면 내 결정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사람. 예기치 않게 내 민낯이 드러나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회사를 오래된 옷처럼 대하고 있었다. 충분히 해졌지만 익숙해서 차마 버리지 못하고 언제든 입을 수 있게 나의 근처 가까이에 둔 낡은 옷. 그런 빛바랜 편안함에 취해 있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오래 지속했는데도 다시 원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이 스쳤다.





불안정을 감당할 용기가 없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까?






벽에 붙인 대형 캘린더에 자연스레 시선이 갔다. 오늘, 그러니까 4월 22일은 지나온 날보다 남아있는 날이 많은 지점이다. 천천히 밑으로 눈을 돌렸다. 가장 아래에 있는 12월 그리고 우측 끝에 있는 31일 칸에 두 글자를 써넣었다.

[퇴사]

'준비가 되면 퇴사한다'라는 식의 모호한 다짐을 이제는 내뱉을 수 없다. 첫 자취를 시작했을 때 1년이란 기간을 두고 목표한 3천만 원을 모았던 것처럼, 그때의 간절한 초심처럼, 이제는 데드라인을 분명히 할 때다. 지난 해 12월 호기롭게 정한 다짐도 다시 떠올렸다.

올해까지 1억을 모으고 부수입 수단 1가지를 마련하는 것.




쓰다보니 정리가 된다. 심란한 마음은 거두고, 험난한 부수입 세계로 다시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라는 것을.


지금껏 그래 왔듯 12월 31일까지 마음껏 실패하기.

당장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란 생각이 든다.



start-g363cb2898_640.jpg Image by Siggy Nowak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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