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후, 소리를 피해 달아난 곳

by 슥슥

독서하기 좋은 의외의 장소




으. 시끄러워....



결국 불만을 내뱉고 말았다. 도저히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유별나다고 욕을 해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주말 오후 한적하게 책을 읽고 싶었을 뿐인데, 식구가 많은 본가에선 그 바람을 실현할 수 없었다. 거실 식탁에 앉아있는 내게 서라운드로 다양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주 앉아있는 엄마가 계산기를 두드리는 소리, 아빠가 보는 예능 프로그램 소리, (원래 내가 쓰던) 작은 방에서는 동생이 게임하는 소리, 오빠가 거실로 들락날락 이동하는 소리, 불규칙적으로 창밖에서 누군가를 호명하는 소리까지. 모든 게 뒤엉켜 내게 들려왔다. 아니 내 귀로 쏟아졌다.








작은 소음들에 이렇게까지 민감해진 건 아무래도 TV 없는 원룸 생활에 꽤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퇴근을 하면 음소거 버튼을 누른 듯 자진해서 정적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잠들기 전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을 때는 특히 더 적극적으로 잡음을 차단했다. 신경이 쇠약해진 것도 아닌데 그래야 기운이 났다. 때때로 아무것도 안 한 채로 침묵 속에서 멍 때리는 버릇까지 생기다 보니 갑작스레 마주하는 소리들이 종종 힘에 부쳤다. 데시벨이 크지 않아도 그랬다. 자취로 인해 예민 보스 꿈나무가 될 줄 몰랐는데 요 근래 소리 때문에 자주 미간이 찌푸려졌던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오랜만에 찾은 본가였고 가족과 함께 있는 게 반가우면서도 나도 모르게 볼멘소리가 툭 나왔다. 시끄럽다는 나의 말에 엄마가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그리고선 가볍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옥상으로 올라가 봐.









옥상은 엄마의 공간이었다. 애정 하는 식물들이 가득한 엄마의 정원이었다. 생각도 못한 장소였다. 카페를 갈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엄마의 입에서 의외의 대피처가 나온 것이다. 그 초대에 바로 마음이 동했다. 거기라면 지금의 소음들과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고민 없이 옥상으로 향했다.







역시나 그곳은 기대만큼 깔끔했다. 볕이 잘 드는 커다란 원형 테이블 위에는 예쁘게 물든 다육이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옆에는 이름 모를, 그러나 충분히 사랑받아 싱그러운 화초들이 제 빛깔을 뽐내고 있었다. 한눈에 들어오는 초록빛에 순간 마음이 환해졌다. 딱히 식물에 애정이 없으면서도 이렇게나 금세 기분이 풀어지는 건 아무래도 엄마가 매만지고 보듬은 시간들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장소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가 쏟는 정성에 볼 때마다 더 깔끔해지고 더 근사 해지던 곳이니까.








옥상엔 어느새 테이블과 의자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방석 여러 개를 겹친 의자에 앉으니 여기가 엄마의 지정석이란 걸 단번에 알아챘다. 알맞게 그늘지는 거며, 햇빛 쬐는 다육이의 옆모습을 보기에 딱 좋은 거리며, 주변의 모든 것들이 예쁘게 눈에 담기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멍해졌다. 고개를 조금 올려다보니 널어놓은 이불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뒤로 청량한 하늘도 보였다. 그게 뭐라고, 밤송이 같던 뾰족한 감정이 이내 흐물흐물해지면서 벗겨졌다. 단지 몇 걸음만 옮겨 이곳에 왔을 뿐인데 마음이 알밤처럼 반질반질해졌다.








그날은 근래 들어 책에 가장 집중이 잘 되었던 날로 기억한다. 더불어 한 가지 사실도 알았다.






아주 작은 움직임만으로도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