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먹고 같은 실수를 하다가

답장이 늦었습니다.

by 슥슥




버스 기사분들의 손짓이 아른아른 떠오르던 윤슬님의 글은 지난주에 읽어보았는데요. 민망하게도 이제야 답장을 합니다. 회신하기까지 5일이나 걸린 이유는 사실 '삐뚠 마음'과 '정돈의 강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고백하자면, 지난주는 아주 작은 균열들이 모여 위태 위태한 심리 상태가 이어지던 시기였어요. 특히 주 후반에는 체력까지 바닥나 노트북을 열 의욕조차 없었죠. 그래서 조심스러웠어요. 혹시나 섣부른 표현들로 어두운 분위기만 풍기고 제 감정을 전염시키는 건 아닐까 우려스러웠죠.






게다가 전하고 싶은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오르는데 더 나은 표현을 찾고 싶은 욕심이 제 발목을 붙잡더군요. 이왕이면 깔끔하게, 웬만하면 정리된 글을 쓰고 싶다는 서툰 욕망이 흰 페이지 앞에서 자꾸 피어난 거죠. 결국, '흐린 마음'과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절 주저하게 만들었어요. 이렇게 글쓰기 앞에서 유독 망설여질 때면 제가 얼마나 '완벽'에 집착하는 사람인지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요. 최고의 컨디션으로 최선의 쓰기를 이어가고 싶은 욕구. 이건 불가능한 욕심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리석게도 자주 까먹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네요.






다행히 주말에 했던 산책 덕분에 지금은 마음에 낀 안개도 많이 걷혔고 완벽에 대한 강박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올해는 실의에 빠졌다 다시 헤엄쳐 나오는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 문장이 떠오르더군요. '우울함과 불안함이 들 땐 그 순간을 당신이 종결해야 한다'

조금 냉정한 말일 수도 있지만 무기력에 취해있다가 작은 동작 하나로 감정이 변화하는 걸 느낀 후 저 문장을 믿기로 했죠. 예전의 저라면 기분이 나아질 때까지 수동적으로 시간을 흘려보냈을 텐데 요즘의 저는 의도적으로라도 몸을 움직이려 하고 있어요. 바닥을 쓴다거나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본가로 불쑥 가서 가족과 한바탕 수다를 떠는 방식으로요.






자취를 한 후로 뭐든 혼자 하려 했는데 감정의 정화가 필요할 땐 '홀로 방에 있기'보다 '밖에서 함께 있기'가 낫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어요. 그래서 이번 주말은 가족과 함께 열심히 걷고 또 걸었죠. 둘쑥날쑥 요동치던 마음의 파동도 결국 잦아드는 걸 보면 산책은 저와 궁합이 잘 맞는 자가 치유제 같단 생각도 드네요.



쓰다 보니 궁금합니다. 살면서 어두운 터널과 만났을 때 윤슬님은 어떤 방법으로 회복하는 편인가요?

어쩐지 10월에 떠나는 여행이 치유의 시간이 될 것 같은 예감인데 어떠신가요?

글벗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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