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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Nov 16. 2022

이 고요와 한적을 무엇에 비기리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 다녀왔다. 흐리고 불쑥 비가 오던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어디를 가도 완벽한 날씨였다. 말간 햇빛이 쏟아지는 정오의 시각. 가족과 함께 사찰로 가는 길이 무척 좋았다. 옆에 앉은 엄마도 신이 났는지 틀어놓은 음악에 손 리듬을 탔고 '예쁘다'라는 감탄사를 아낌없이 쏟아냈다. 




길상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언덕 위에 자리한 그곳은 늦가을의 깨끗한 냄새가 났다. 수수하고 아담한 입구와 다르게 내부는 탐스러운 단풍이 빼곡했다. 낮은 경사의 오르막길을 꽉 채운 붉음과 푸름. 그 빛깔이 황홀했다. 햇빛을 조명으로 해서 더 반짝거렸다.

바람이 풀잎을 스치면서 내는 소리를 가만 들어보았다. 마스크를 내리고 깊은숨도 쉬어보았다. 평화로웠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고요한 호수 같았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곳이었다. 천천히 걸었는데도 어느새 입구였다. 하지만 이미 보았던 지점도 계속 눈길이 갔다. 사찰의 주변을 가득 메운 단풍은 보고 또 봐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붉게 타오른 잎도, 이미 수명이 다해 떨어진 잎도 멋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 계절을 만끽하는 기분이었다.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곳이다.​


법정 스님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는 진영각에서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홀로 있는 내 자리를 되찾았다.
이 고요와 한적을 무엇에 비기리.
절대로 간소하게 살 것,
날마다 버릴 것.







+덧. 

알고 보니 이 길상사는 시인 백석의 전 연인 김영한이라는 사람이 7천여 평의 대지를 시주하여 설립된 사찰이었다. 게다가 이 부지는 밀실 정치로 유명했던 대원각을 그녀가 직접 운영했던 곳이고. 

길상사의 과거 모습이 술집이었다는 게 왜 이리 낯선지...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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