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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Nov 18. 2022

기억하고 싶은 오늘의 단면


1.

늦잠을 자고 문을 여니 더운 열기가 느껴졌다. 갓 지은 밥과 봄동으로 만든 국의 뜨끈한 기운이었다. 뒤이어 엄마의 뒷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니 엄마는 김이 모락 모락 나는 두툼한 계란말이를 비스듬히 썰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빨간 양념이 잘 배어 있는 두부조림과 막 데친 양배추 쌈이 올려져 있었다. 침이 꼴깍 넘어갔다. 수저를 놓고 다른 가족들을 불렀다.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들 재빠르게 음식을 삼켰다. '맛있다'라는 감탄사를 내뱉는 것도 잊지 않았다.한참을 먹다가 밥그릇을 비워갈 때쯤 문득 황정민 배우의 수상 소감이 떠올랐다. 스태프들이 차려 놓은 멋진 밥상을 맛있게 먹기만 해서 죄송스럽다는 그의 말.

나 또한 마찬가지 아닌가. 엄마의 아침 노고를 숟가락 하나로 손쉽게 삼킨 거나 다름없으니까. 허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2.

몰랐는데 엄마는 알록달록 여러 색이 겹쳐있는 단풍을 좋아했다. 빨강과 초록, 노랑의 단풍잎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는 나무를 발견하면 어김없이 발 길을 멈췄다. 그리고선 놓칠 수 없다는 듯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나는 이 순간이 참 좋다. 자연의 색감에 힘주어 감탄하는 엄마는 언제 보아도 사랑스럽고 귀엽다. 엄마 덕분에 이번 가을은 천천히 관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3.

산책로에 마련된 흔들의자에서 엄마와 함께 발을 굴렸다. 바닥의 한 지점을 지지대처럼 누르면서 반동을 주니 의자가 그네처럼 움직였다. 그게 뭐라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일정하게 흔들리는 의자 위에서 계속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네의 움직임에 신이 난 건지, 아니면 서로의 표정에 신이 난 건지 한동안 멈출 수 없었던 우리의 발 동작.






4.

처음으로 코스모스의 씨앗을 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씨앗들'이었다. 부끄럽지만 나는 여태 하나의 꽃에는 하나의 종자만 생겨나는 줄 알았다. 다른 식물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코스모스는 그렇지 않았다.

엄마의 설명에 따르면, 코스모스는 꽃이 지고 작은 봉오리가 생기는데 그게 무르익으면 안에 씨앗들이 통통히 찬다고 했다. 정말 그랬다. 내가 본 봉오리 안에는 초승달 모양의 작고 검은 씨앗이 빼곡히 차있었다. 손으로 비비자 잘게 부스러지며 힘없이 흘러나왔다.

가을이면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코스모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아이들도 시작은 참 작고 연약하구나.






* 오늘의 산책 사진

1. 사탕같이 알록달록한 단풍들







2. 산책 후에 당 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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