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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Nov 26. 2022

백수가 언제 좋으냐면요,



1.

여행을 떠났다. 장소는 개운산 둘레길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 사실 집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동네 산이다. 이 짧은 산책을 굳이 여행이라 이름 붙인 이유는 처음 가본 장소를 호기심 가득하게 구경했기 때문이다. 외지를 유람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기분이었다.


오르막길에 이어 꽤 많은 계단을 오르니 시야가 트이는 둥근 공터가 보였다. 가장자리에는 운동 기구들이 빙 둘러져 있었고 그 사이사이마다 작은 벤치가 놓여있었다. 뒤돌아 올라온 방향을 바라보니 아파트와 주택이 빼곡한 시가지가 멀찍이 보였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빼곡히 에워싸고 있어서 그런지 시야가 완전히 트여있진 않아도 속이 시원했다.



공터를 시작으로 주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아담하지만 주민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꽤나 알찼다. 화장실은 물론이고 인조 잔디가 깔려있는 축구장 겸 운동장이 있었고 숲 체험장이나 테니스장, 북 카페까지 갖춰져 있었다. 더구나 그 경로 중간에는 성북구 의회와 스포츠 센터 건물까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렇게 몰랐던 새 공간을 발견할 때면 눈동자가 휘둥그레 떠질 정도로 흥미롭다. 게다가 그 장소가 마음에 들 때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내쉬며 이곳에 다시 올 날을 서둘러 가늠해 본다. 아마 멀지 않은 때일 것이다.  



개운산 둘레길 산책로
마로니에 공원










2.

개운산에서 내려오니 허기가 졌다. 딱히 목적지를 정해두고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걷다가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하면 별생각 없이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평지에 도착해 제일 먼저 발견한 곳은 식당이 아니라 '카페'였다. 그것도 꽤나 감각적으로 보이는 힙한 카페. 순간, 샌드위치와 따뜻한 라떼가 머릿속을 스쳤다. 구미가 당겼다. 어쩐지 음료 가격이 합리적이지 않을 거라 예상되었으나 그래도 출입문을 열었다. 평소보다 고민을 오래 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개운산 둘레길에서 얻은 기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처음 보는 장소가 만족스러울 때 느끼는 짜릿한 감각말이다.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2층의 구옥을 리모델링한 그곳은 아늑하고 세련된 공간이었다. 모던한 간접 등과 흰색의 우드 테이블이 잘 어울리는 장소. 게다가 나를 제일 안심시켰던 건 그곳을 찾는 손님이었다. 수다를 떨기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라 개인 작업이나 공부를 하러 홀로 온 학생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조금의 음성도 없이 틀어놓은 팝 음악만 잔잔하게 울리는 '조용한' 카페를 얼마 만에 본 것인지. 2층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이곳에 반하고 말았다. 그러면서 동네를 여행할 수 있는 시간 부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사뭇 감격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은 때에 할 수 있는 삶이라니. 이를 위해 치뤄야 할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오래 고민했는데 욕심을 버리고 비용을 받아들이자 드디어 '오늘의 행복'이 보였다.


산책하기 딱 좋은 장소와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를 발견한 오늘.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책 읽기 딱 좋은 장소. 심지어 음악 플레이리스트까지 취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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