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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Nov 28. 2022

역시 계획대로 되면 재미없지


녹록지 않은 하루였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 6평 방 책상에만 앉아 있었는데도 그랬다. 아침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알람 소리보다 일찍 깬 덕에 긍정의 단어들만 골라내어 일기를 썼고 건강을 위해 과일까지 챙겨 먹었다. 아침도 거르지 않았고 완성은 못했지만 이번 주 브런치에 올릴 글도 편안하게 끄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은 후로부터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등록하기로 한 운동 프로그램은 신청 하루 만에 이미 마감된 상태였고 순전히 나의 착오로 소중한 퇴직금이... 받았던 세금 혜택을 고대로 토해내야 하는 계좌로 들어왔음을 깨달았다. 운동 등록 실패에 대한 실망감은 내비칠 겨를도 없었다. 대신 퇴직금 출금 문제 때문에 오후 내내 전화기를 붙들어야 했다. 결국 뾰족한 해결을 하지 못한 채 해당 금융사는 5시에 칼같이 업무를 마감해버렸고 나는 책상 앞에서 마치 야근을 한 것 같은 몰골이 되고 말았다.



시선을 돌리니 다이어리가 보였다. 할 일이 깨알같이 적힌 포스트잇이 오늘 날짜 아래에 얌전히 붙어 있었다. 속에서 심드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구나.' 씩씩한 얼굴로 힘을 짜내 투두리스트를 쓰던 오전의 나를 시험하듯 하루의 운명은 문젯거리들을 가볍게 던져주고 간다. 얄궂다. 인생 참 얄궂다.

운명의 장난으로 지난 주말에 구체화한 경비 계획은 완전히 틀어졌지만 아직은 희망적이다. 공모주 때문에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던 금액을 합치니 그래도 나름 합당한 액수가 나왔기 때문이다. 다행히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적금도 이어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역시 백수에게는 돈이 든든한 뒷배다.



여차저차 일단락은 지었는데 사실 개운치는 못하다. 어쩐지 이건 시작에 불과할 거란 기묘한 예감이 들어서다. 새로운 항해에 파도가 적을 리 없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상황이 오고야 말겠지. 그래도 잊지는 말자.




그럼에도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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