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슥슥 Dec 14. 2022

백수는 이렇게 해야 움직이더라고요,



새벽 5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각. 방안의 적막을 깨우는 알람 소리에 놀라고 만다. 고된 순간이다. 졸음이 온몸에 붙어 있어 몸은 천근만근이고, 더 자고 싶은 유혹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알람을 꺼버리고 따뜻한 이불 안에 머무는 나를 잠시 상상한다. 시에 린저스 앱에 걸어둔 보증금이 차감되는 모습도 같이 떠오른다. 여기서 보증금이란, 의지 충만했던 과거의 내가 습관 형성 어플에 미리 걸어둔 예치금이다. 잠을 선택하면 그 돈들은 벌금 처리되어 야금야금 사라지고 말 것이다. 아, 잠결에도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어 진다. 벌떡 일어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역시 나에게는 '장치'가 필요하구나. 기어코 하게 만드는 장치.







돈을 걸어둔 과거의 나를 살짝 원망하며 떠밀려 루를 시작한다. 헤롱 대며 모닝 페이지 노트를 펼친다. 실눈을 뜨고 한 글자씩 뭐라도 끄적이다 보면 조금씩 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작동이 느린 기계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서서히 기억이 빨라진다. 어느새 머릿속 가득한 생각을 끄적이느라 손 혼자서 분주해진다. 아무 말 대잔치의 모닝 페이지를 두 쪽 쓰고 나면, 나와 제일 가까이에 있는 책을 펼친다. 이제는 문장을 주워 담을 시간이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하품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들며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진다. 그제야 아침을 실감한다. 뭘 해보려 하는 나를 자각한다.







의욕이 사라지기 전 서둘러 투 두 리스트를 적는다. 나의 빈약한 체력과 허술한 의지와 한정된 시간을 고려해 목록은 다섯 줄을 넘기지 않는다.

'하루에 딱 5가지' 이건 리스트가 길어질수록 할 일로부터 도망간 전적이 많아 만들어진 타협의 숫자다. 그 안에 거의 매일 똑같이 적어 어는 '글쓰기'. 이때의 쓰기는 어나자마자 했던 모닝 페이지와는 다르다. 마구잡이 낙서가 아니라 전하고 싶은 내용을 최대한 정리'공개하는 쓰기'를 말한다. 굳이 글쓰기를 '할 일'로 취급 이유는 지금 바로 혼자 할 수 있는 행동이자, 추후에 '나의 일'로 만들고 싶은 작업이기 때문이다. 청탁받지 않아도 기에 정성을 다해보는 연습인 셈이다.


  





그 연습을 위해 아침마다 나갈 채비를 한다. 8시면 어김없이 학교로 향한다. 굳이 학교냐고? 글쓰기에 필요한 보조도구가 학교 도서관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엔 읽고 싶은 책이 무궁무진하고, 나의 소유물 중 가장 오래되고 값비싼 노트북 놓여있다. 그것도 지하 1층 유료 사물함 안에.

실은 이것도 나를 위한 장치다. 나를 집 밖으로 꺼내기 위한 사소한 장치. 집에서 에너지를 얻는 집순이가 애써 밖을 나간 이유는 과거의 나를 잘 알아서다.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쓸 필요 없는 6평 방 안에선 쉽게 침대로 향하게 되니까. 그 위에서 짓에 열을 올리거나 금세 잠이 들곤 하까.  자유를 통제하지 못해 자책과 후회에 빠지니까.

다시 말해, 학교 향하는 건 어두운 감정이 들러붙지 않게 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게다가 가는 도중의 햇볕이 내 정신건강에 유익할 거란 믿음이 있기도 하고.







이렇게 작은 규칙들로 시작하는 하루의 보람은 다름 아닌 것이다. 시간의 속도에 놀라는 것

이 놀라움은 잡념 없이 지금이란 시간에 깊이 빠져있을 때 가능한 감정이다. 하루의 무게에만 신경을 쓰느라 시간의 흐름을 뒤늦게 알아차린 걸 테니 말이다.

재빠른 속도에 매일 놀라워하며 잠자리에 들 때면 어떤 기운이 슬며시 다가온다. 그건 나를 위한 행위로 하루를 꽉 채우고 있다는 만족이기도 하고, 캄캄한 미래가 무서워 얼굴을 감추고 싶은 불안이기도 하고, 5가지 나와의 약속을 완료하고 얻은 긍지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질 땐 이따금 어지러운 마음 든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해진다. 

머물지 않고 어딘가로 유영하고 있다는 감각 말이다







밤 1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나는 그렇게 일하지 않는데도 작은 전진을 느끼며

매일 까무룩 잠이 .

작가의 이전글 역시 계획대로 되면 재미없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