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인 날이었다. 알람소리도 듣지 못하고 10시에 일어나 버렸고, 정오가 지나도록 엉덩이를 침대에서 떼지 못해 남은 오전 시간마저 허망하게 흘려버리고 말았다. 첫 단추가 틀어지면 그날 하루를 무계획으로 보내는 이상한 버릇이 다시 시작된 건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이 무력함은 어제저녁부터 시작되었으니 말이다. 원인은 역시 유튜브. 문제의 발단은 언제나 이 공간에서 시작한다.
사실, 제어하지 못할 걸 알고 있었다. 한 번의 클릭으로 끝나지 않고 시간을 물처럼 쓸 걸 예상했었다. 그럼에도 빨간 네모 박스 앱을 누르고야 말았다. 목적은 없었다. 그저 떠다니고 싶었다. 주말의 읽기와 쓰기를 마쳤으니 뻔뻔하게 보상이라 여긴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마음으로 수십 개의 영상을 엄지 손가락 하나로 유영하며 놀았다. 홀린 듯 시선을 뺏기면서도 문득 영상 콘텐츠의 특징이 뭘까 생각했다.
‘사라진다’
우습게도 제일 먼저 떠오른 건 이거였다. 따로 기록하지 않는 이상, 보고 나면 기억에서 금방 사라진다는 점. 나는 이걸 알면서도 내리 4시간을 그 안에서 머물렀다. 충혈된 눈으로 이제 더는 졸음을 참을 수 없는 시점까지 유튜브 세계에 머문 것이다. 안간힘을 쓰며 온라인에 남으려 했던 건 역시 도피가 목적이었다. 내일 해야 할 일, 내일 봐야 할 책, 내일 하기로 한 글쓰기. 내일 직면해야 할 현생을 가장 어리석은 방식으로 외면하고 있었던 셈이다.
도망자 신세로 유튜브 바다를 유영한 밤. 그 기억을 안고 맞이한 아침이 바로 오늘이었다. 햇빛도 반기지 못한 채 생각보다 더 묵직한 자책감에 가슴이 짓눌리며 일어난 월요일말이다. 잊는 게 차라리 나았을 날을 구태여 이렇게 상세히 기록하는 이유는 처음과 끝이 달라져서다. 오전에는 침대에 누워 비관의 말들을 곱씹어야 했지만 하루를 마무리하는 현재의 감정은 놀랍게도 ‘안도’에 가깝기 때문에.
이게 가능했던 건 가까스로라도 움직였기 때문이다. 나에게 실망했지만 그 낙담을 꼭 쥔 채 팔다리를 썼기 때문에. 오후 2시 즈음 느지막이 모닝페이지를 썼고, 미뤄둔 집안일도 얼렁뚱땅 해치웠다. 딱 한 페이지만 읽어보려 고른 책은 시간을 잊어버린 채 빠져들었고 딱 한 줄만 쓰자고 다짐한 글쓰기도 어느덧 마지막 문단을 앞두고 있다. 역시 이럴 때면 어김없이 이 문구가 떠오른다.
자잘한 침체는 그냥 무시하는 편이 낫다.
아침의 어두운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은 채 일단 코 앞의 일부터 시작한 오늘과 썩 어울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