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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슥슥 Dec 30. 2022

22년도 연말 회고 : 음악 편



D-1

22년도가 하루 남았다. 언제나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가장 크게 놀라고 만다. 지금은 앞보다 뒤를 돌아보는 게 당연한 때. 시작의 설렘은 잠시 잊고 지나온 해를 갈무리해 보려 한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연말 회고-음악 편을 기록해 보았다.



1) 무엇을 읽었나?(독서)

2) 얼마나 들었나?(음악)

3) 꾸준히 행했나?(루틴)




처음엔 음악에 관해 내가 할 말이 있을까 좀 의문스러웠다. 그냥 취향대로 가볍게 들었던 것뿐이라 돌이켜볼 만한 게 과연 있을까 싶었는데 멜론에서 [뮤직 라이프 결산]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아, 유튜브 플리가 대세인 요즘에 무슨 멜론이냐며 놀라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튜브 프리미엄을 구독하지 않는 나는 추억의 매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022년 최다 감상곡

너무나 의외였다. 클래식이란 장르에 문외한인 내가 올해 제일 많이 찾았던 음악은 바로 이 곡이었다.

Debussy의 clair de lune(달빛)


무려 402회의 재생 수를 기록한 곡. 계절별로 확인해 보았을 때도 가장 상위 랭크된 곡은 어김없이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clair de lune(달빛)'이었다.

참고로 클로드 드비쉬가 1890년대 작곡한 이 음악은 굉장히 다양한 버전으로 편곡되었는데, 나는 조성진 피아니스트의 연주만을 고수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가장 차분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클래식 문외한이

클래식을 가장 많이 들은 이유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이 클래식만 들어야 했던 이유를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불쑥 짠해졌다. 이 곡을 찾았던 시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거의 매번 '퇴근 후'였다.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과 소통한 날이면 버스에 올라 시체 같은 얼굴로 눈을 감고 이 음악만 들었다. 외부의 자극을 차단하고 산소 호흡기처럼 하나의 곡에 전적으로 의지했던 순간이 선명히 그려지자 아주 복잡한 얼굴이 되어버렸다.


음악은 다양한 효과가 있다. 분위기를 한층 더 고조시키기도 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며 공통된 취향을 통해 상호 교감이 가능하기도 하다. 이번 해에 음악은 나에게 어떻게 기능했을까.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이 단서가 되었다. 그건 치유를 넘어 필사적인 '정화'에 가까웠다. 시끄러워진 내면을 가라앉히기 위해, 몸 안에 가득 쌓인 불필요한 언어를 밀어내기 위해 2022년은 유독 하나의 피아노 연주곡에 매달린 해였다.








나의 상태를 말해주는 음악

사람의 심리 상태를 잘 반영하고 있는 수단 중 하나가 개인적으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멜론에서 올해의 월간 순위를 보고 이 말을 더 적극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5월 ~ 7월
8월 ~ 9월

월 별로 가장 많이 들은 곡은 멜론을 다시 구독한 5월부터 10월까지 변함없이 Clair de lune(달빛)이었다. 9월 딱 한 달만 제외하고.

놀랍게도 이 흐름은 당시의 내 감정 상태를 말해주고 있었다. 내내 흐리다 9월에 반짝 맑았던 이유. 그건 그 달에 있었던 작은 사건에서 비롯된다.








9월만 다른 이유

여름휴가가 있었던 9월, 휴가지로 찾은 곳은 13년 전 졸업한 나의 모교 도서관이었다. 어쩐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아 가 본 그곳에서 일주일 내내 고요를 누리자 무언가 차오르는 걸 느꼈다. 죽은 세포가 살아난 것처럼 몸에 생기가 돌았다. 드뷔시가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었다.



찰리 푸스의 <That's Hilarious>는 당시 학교를 향할 때 랜덤으로 재생한 플레이리스트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이었다. 제목이나 노래의 가사나 내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감정을 가라앉힐 목적이 아니라 기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음악을 반복해 듣고 있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덕분에 9월은 잊고 있던 삶의 활력을 찾은 달이었다. 일상으로 돌아온 10월부터 다시 드뷔시의 음악을 찾아야 했지만...










달라진 나의 플레이리스트

불행인지, 다행인지 드뷔시의 음악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행위는 11월로 종료된다. 퇴사를 했기 때문이다. 불안의 한가운데로 나가는 행위라는 걸 알아도 나를 완전히 소진시키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회사를 나와도 여러 외부 요인들에 의해 종종 마음에 부상을 입곤 하지만 놀랍게도 지난 수개월간 한 몸과 같았던 '그 곡'만은 찾지 않는다. 퇴사를 한 이후인 11월의 곡 순위가 이를 말해준다.



단지 음악일 뿐인데 변화가 의외로 노골적이라 새삼 놀랍다. 그럼에도 함부로 확신하진 않는다. 해보고 싶은 리스트를 깨알같이 적고 1년 예상 경비를 계산해 통장에 넣어놔도 모든 일은 계획대로 되지 않기에 앞으로 '달빛'을 찾지 않을 거라곤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직장인으로서 소진되는 대신 자유인의 불안을 선택했는데도 도리어 치유의 필요를 잊었다면 이것이 날 이해하는 작은 신호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유쾌한 음악을 들을 뿐이다.










그럼에도 나의 TOP 아티스트는

많이 들었던 곡과는 별개로 이번 해 기억하고 싶은 아티스트는 따로 있다.

'UMI'와 'FKJ'

마치 짠 것처럼 동일하게 세 음절인데, 이들의 음악은 '평화로우면서 매혹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두 개의 형용사가 조화롭진 않은데 정말이지 그런 매력이 있다. 잔잔하게 중독되는 맛이랄까. 어떻게 설정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카톡 프로필 뮤직도 이 둘 때문에 처음 시도해 보았을 정도로 팬임을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은 뮤지션이기도 하다.



멜론에서 친절히 분석해 준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을 살펴보았다.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곡들이다. 이걸 보니 나다운 결과란 생각도 든다. 뮤지션에 빠지더라도 그의 전곡을 경험하기보다 좋아하는 몇 곡만 되풀이하는 경향 그리고 최신 가요 TOP10을 들으며 종종 춤을 추다가도 결국 '좋아요'를 누른 선호곡으로 회귀하는 버릇이 합쳐진 결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반복 안에 탐구의 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다.










멋모르고 시작한 '플레이 리스트 회고'였는데 생각보다 길어졌다. 멜론 앱에서 손가락으로 가볍게 넘기고 잊어버렸을 내용을 이렇게 나열하고 설명하고 파헤치고 있다니. 할 말이 과연 있을까 하며 써 나갔는데 할 말이 너무 많아 놀란 기록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2023년도는

'달빛'을 찾을 일이 가능한 적기를 바란다.







※ 31일 날은 22년도 행한 루틴에 대해 리뷰할 예정

1) 무엇을 읽었나?(독서)

2) 얼마나 들었나?(음악)

3) 꾸준히 행했나?(루틴)







※ 언급된 음악

단, 조용하고 잔잔한 음악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



Debussy- Claire de lune / 조성진





Remember me / UMI





Ylang Ylang/ FK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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